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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작은 방’을 ‘나왔다’

중앙선데이 2018.07.21 02:00 593호 20면 지면보기
석영중의 맵핑 도스토옙스키 <28>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첫 문장
독일 삽화가 프리츠 아이헨베르그가 그린 라스콜리니코프의 방. 제대로 일어설 수 조차 없는, ‘관’ 같은 공간이다.

독일 삽화가 프리츠 아이헨베르그가 그린 라스콜리니코프의 방. 제대로 일어설 수 조차 없는, ‘관’ 같은 공간이다.

작가들은 대체로 첫 문장에 소설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믿는다. 도스토옙스키 역시 수백 번 고쳐 쓴 끝에 『죄와 벌』의 첫 문장을 완성했다. 평론가들이 최고라 손꼽는 문장이다.  
 
찌는 듯이 무더운 7월 초의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하숙집에 살고 있는 한 청년이 자신의 작은 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K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려운 단어도 없고, 현란한 비유도 없고, 주술의 뒤틀림도 없다. 철저하게 ‘육하원칙’을 따르고 있어 작가의 저널리스트적인 면면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그러나 각각 다른 차원의 의미가 켜켜이 쌓여 있어 문장은 몹시 ‘무겁다’. 이 한 문장으로 소설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과감한 주장도 있다.  
 
픽션과 리얼리티를 절묘하게 섞다
첫 문장은 우선 픽션과 리얼리티의 경계를 허문다. 당대 러시아 독자에게 도입부는 현실 그 자체다. “찌는 듯이 무더운 7월”은 특히 1865년 여름을 넘긴 독자에겐 생생한 악몽으로 다가온다. 1865년 7월 18일자 ‘상트페테르부르크 뉴스’는 “열기, 참을 수 없는 무더위! 그늘에서조차 수은주는 24, 25, 26도로 쭉쭉 올라간다! 바람이라고는 한 점도 불지 않는다! 밤 한 시, 두 시가 되면 거의 숨도 쉬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짜의 유력 일간지 ‘목소리’도 “땡볕 아래 최고 기온은 40도를 기록했다”며 흥분했다.  
 
S(스톨랴르니) 골목과 K(코쿠슈킨) 다리는 현재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보예도프(당시 이름은 예카테리나) 운하 근처에 남아있는 지명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을 쓸 당시 스톨랴르니 골목 끝자락의 셋집에 살았기에 근방 지리를 샅샅이 알고 있었다.  
 
운하 인근은 수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조밀한 악명 높은 슬럼이었다. 시민들은 운하를 아예 “도랑” 혹은 “시궁창”이라 불렀다. 닥지닥지 붙은 셋집 입주자들이 운하로 흐르는 폰탄카 샛강에 쓰레기와 오물을 마구 투척했고, 신문은 연일 “폰탄카에서 풍기는 악취”를 규탄했다. 대기오염과 식수 부족과 악취는 실업과 함께 수도의 고질적인 병폐였다. 1848년과 1866년 두 차례나 콜레라가 창궐한 것은 당시의 위생 상태가 어땠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알코올 문제도 가세했다. 스톨랴르니 골목에만 약 20개나 되는 술집이 있었다. “이 지역에 특히 많은 선술집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와 대낮인데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취객들이 거리의 모습을 더욱 혐오스럽고 음울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숨 쉬기 조차 어려운” 환경이었다.  
 
러시아어 ‘죄’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는다는 의미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톨랴르니 골목에 있는 건물.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이라고 새겨진 표석과 저자의 부조가 붙어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톨랴르니 골목에 있는 건물.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이라고 새겨진 표석과 저자의 부조가 붙어있다.

현실과 밀착된 시공간 덕분에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소설의 경계를 뚫고 나온다. 후대의 열혈 연구자들은 스톨랴르니 골목과 스레드나야 메시찬스카야 거리가 만나는 지점의 한 건물을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이라 지명했다. 도스토옙스키 ‘순례자’들이 반드시 들렀다가는 곳이다. 건물 외벽에는 도스토옙스키 부조가 붙어있고, 표석에는 “이 지역 거주민의 비극적인 운명은 도스토옙스키에게 공동선을 향한 열정적인 가르침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라는 상당히 거창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허구의 인물과 그의 하숙집이 버젓이 역사성을 획득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전당포 노파의 집도 특정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작은 방에서 나와 코쿠슈킨 다리를 건너 “730 걸음”을 걸어가 노파의 셋집에 도착한다. “한쪽 벽면은 시궁창을 향해, 다른 벽면은 거리를 향해 나 있는 아주 큰 건물”의 현재 주소는 ‘그리보예도프 제방길 104번지’다.  
 
호기심에서 2015년 어느 더운 여름날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에서부터 ‘노파의 집’까지 걸어가 보았다. 1000 걸음 넘게 걸어가도 건물이 안 나오기에 세는 것을 포기했다. 소설과는 달리 평일 오후의 제방길은 햇살만 뜨거울 뿐 한산하고 괴괴했다.  
 
첫 문장의 의미는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현실을 훌쩍 뛰어넘는다. 주인공이 하숙집에서 나와 다리를 향해 걸어가는 것은 살인을 위한 사전 답사라는 것이 곧 밝혀진다. 이 때부터 그의 움직임은 ‘죄와 벌’에 저자가 심어놓은 심오한 철학과 맞물린다. 첫 문장의 제 2, 제 3의 의미가 서서히 그러나 집요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러시아 단어 ‘죄(prestuplenie)’는 ‘넘어가다(prestupit’)’라는 말에서 파생됐다. 넘어서는 안 되는 어떤 선을 넘어가는 게 죄란 뜻이다. 주인공은 문지방을 “넘어갔고”, 다리를 “건너갔다.” 그의 물리적인 “넘어감”은 도덕적인 “넘어감”을 예고한다. 그가 도끼로 노파의 정수리를 내리쳤을 때 그는 선을 넘어갔다.  
 
‘관’만한 방에서 쌓이고 쌓인 자괴감과 분노  
하숙집 계단으로 올라가는 라스콜리니코프. 소비에트 화가 슈마리노프의 일러스트다.

하숙집 계단으로 올라가는 라스콜리니코프. 소비에트 화가 슈마리노프의 일러스트다.

모든 것은 첫 문장의 “작은 방”에서 시작된다. 천정이 너무 낮아 고개를 들 수도 없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작은 방”은 “벽장”, “새장”, 심지어 “관”에 비유되기까지 한다. 머리 좋고, 고상하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사랑하는 잘 생긴 청년에게 이것은 너무나 굴욕적이다. 하숙집 여주인은 물론 하녀까지도 그를 무시한다. 가난에 찌든 작은 방은 수치심과 자괴감과 분노와 모멸감을 그대로 반영하는 심리적인 공간이다. 이 방에서 그는 스스로를 “한 마리 벌레”처럼 느낀다. 자신이 벌레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입증해 보이고 존재감을 회복하려면 방에서 “나가야” 한다.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나폴레옹 3세의 이론이 그를 문지방 너머로 내몬다. “때때로 역사 속에 마치 찬란한 횃불처럼 등장하여 시대의 암흑을 몰아내고 미래를 밝혀주는 비범한 인간”들은 “모든 윤리와 도덕을 초월하며” 살인을 포함하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이론이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하나의 주장, 지식인들이 선술집에 앉아 안주 삼아 입에 올리던 토론 주제였지만 존재감에 눈먼 청년은 곧장 자신에게 이 주장을 적용시킨다.  
 
“진짜 거인은 툴롱을 폐허로 만들고, 파리에서 대학살을 감행하고, 이집트에 대군을 내버려둔 채 잊어버리고, 모스크바 원정에서 50만 대군을 죽게 하고도 빌니우스에서 모든 것을 우스갯소리로 넘겨버렸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진짜 거인인지 아닌지를 빨리 시험해보고 싶다. 그는 도끼를 집어 든다. “어서 알고 싶었어.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이’인가, 아니면 인간인가를 말이야. 내가 선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아니면 넘지 못하는가!”
 
그는 선을 뛰어 넘었지만 존재감은 회복하지 못했다. 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세상으로부터 “도려내어진 것과도 같은” 끔찍한 단절감이 그에게 덮쳐온다. “그는 이제껏 한 번도 이처럼 기이하고도 무서운 감각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불안과 공포에 흔들리는 자신이 죽도록 밉다. 자신이 ‘나폴레옹’이 아니어서 경멸스럽다. 자기혐오가 타인에 대한 증오로 복제되면서 그는 증오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것은 마주치는 모든 것,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끊임없는, 거의 생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혐오감이었다.”  
 
유형지에서 비로소 자유를 찾다  
코쿠슈킨 다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보예도프 운하에 놓인 21개 다리 중 하나로, 길이가 20m도 채 안 되는 짧은 다리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 다리를 건너 노파의 전당포로 간다.

코쿠슈킨 다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보예도프 운하에 놓인 21개 다리 중 하나로, 길이가 20m도 채 안 되는 짧은 다리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 다리를 건너 노파의 전당포로 간다.

존재감에 대한 병적인 갈망, 그로 인한 “넘어섬”은 주인공을 증오와 단절의 “작은 방”으로 되돌려 놓았다. “작은 방”은 “마음의 감옥”이 되었다. 살인에 대한 벌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다시 살고 싶으면 그는 이 감옥에서 나가야 한다. 그에게 유형지 시베리아는 상징적 차원에서 처벌의 공간이 아니라 해방의 공간이 됐다. 첫 문장의 가장 깊이 숨겨진 의미는 에필로그에서 드러난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그가 “작은 방”에서 나온 것은 자유를 향한 첫 걸음이었던 것이다.  
 
“찌는 듯이 무더운” 날의 상징성도 광활한 시베리아와 연결될 때 비로소 밝혀진다. 숨이 탁탁 막히는 도시는 그 자체가 감옥이다. 나중에 예심판사 포르피리가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자수를 종용하며 신선한 공기를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기를 바꿔야 해요. 신선한 공기로!”“사람에게는 공기가 필요합니다. 공기가, 공기가요 그 무엇보다도 말이지요!”  
 
라스콜리니코프가 “작은 방”을 나와 다리를 건너 외곽의 섬으로 가자 공기 자체가 신선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녹음과 신선한 공기는 도시의 먼지와 석회석, 짓누를 듯이 빽빽하게 서 있는 거대한 집들에 익숙해져 있던 그의 피곤한 눈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여기에는 그 어떤 후텁지근함도, 악취도 선술집도 없었다.”  
 
러시아 학자 그로스만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라스콜리니코프 개인 드라마의 분리 될 수 없는 일부라고 지적했다. “거리와 광장과 골목과 운하가 인물의 생각과 행위 속으로 들어간다.”  
 
그 반대도 진실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라스콜리니코프를 도시로 내보냈다. 인물의 생각과 행위는 도시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다. 『죄와 벌』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위한 소설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일부인 소설이다. 첫 문장만 보아도 그렇다. ●
 
고려대 노문과 교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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