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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굴 같은 레스토랑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중앙선데이 2018.07.21 02:00 593호 24면 지면보기
파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이시가미 준야 건축전 ‘건축, 자유를 찾다’ 가보니 
ⓒRenaud Monfourny

ⓒRenaud Monfourny

 일본 건축가 이시가미 준야(石上純也·44·사진)의 전시 ‘건축, 자유를 찾다(Freeing Architecture)’가 열리고 있던 2일 파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건물 앞은 한적한 일요일 오전임에도 이미 줄이 길었다. 3월 30일 시작한 전시는 당초 6월 10일 끝날 예정이었으나, 뜨거운 인기에 9월 9일까지 연장 전시에 돌입하게 됐다고 까르띠에 관계자는 말했다.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일본 차세대 대표 건축가의 첫 대규모 개인전이 펼쳐진 전시장은 고즈넉한 일본식 정원을 연상케했다.  
 
철학 내세우지 않는 감각적 디자인으로 어필
네덜란드 투처크에 있는 그루트 비버스부르크 공원의 방문자 센터 렉처홀(2012~2017)

네덜란드 투처크에 있는 그루트 비버스부르크 공원의 방문자 센터 렉처홀(2012~2017)

도쿄 예술대학에서 공부한 이시가미의 건축은 감각적이다. 그림으로 따지자면 정물화보다 추상화에 가깝다. 담을 세우고, 외부와 내부로 구분 짓는 네모 반듯한 건축물을 디자인하지 않는다. 마치 종이를 구겼다 편듯한 모양새를 그대로 따라한 듯 비정형 스타일을 추구한다. 도미이 마사노리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이시가미는 이성보다 감각에 가깝고 기능보다 이미지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그의 건축은 예술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도쿄대 건축학과를 나온 일본 주류 건축가들의 행보, 즉 건축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자세 대신 세련된 이미지로 보여주니 젊은 세대들에게 더 어필하는 것 같다”며 “독특한 이미지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구조 전문가와 협업해 새로운 구조도 많이 개발하고, 연구도 많이 하기로 유명하다”고 덧붙였다.  
 
그가 아시아와 유럽에서 디자인한 20여 개 건축물의 미니어처와 비주얼을 선보인 전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일본 야마구치에 지은 ‘하우스 앤 레스토랑’(2013)의 모형이다. 땅 속 개미굴을 연상시키는 지하 미로 속 레스토랑을 만들기 위해 그는 정교한 계산에 바탕한 굴착 공사를 우선 실시한다. 건물의 기둥 역할을 하는 콘크리트 타설을 위해 파놓은 구멍마다 사람이 들어가 일일이 치수를 재 놓는다. 쏟아부은 콘크리트가 굳으면 이제 그 주변 흙을 일일이 파낸다. 그러면 개미굴 같은 지하 동굴 레스토랑이 완성된다. 미니어처만으로는 얼핏 이해되지 않는 그의 건축물은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아야 비로소 감동이 온전하게 전해진다.  
 
2016년부터 짓고 있다는 중국 리자오의 계곡 예배당도 충격적이다. 얼핏 양 끝이 휘어진 두툼한 종이를 반으로 접어 세워 놓은 듯한 모형을 자세히 보면 새끼 손톱만한 크기의 사람이 보인다. 건물의 스케일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을 생각을 했나 싶을 정도로 획기적이다.  
 
그런가하면 2014년 선보인 덴마크 코펜하겐 평화의 전당 설계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름을 형상화했고, 2015년 중국 산둥에 지은 숲속 유치원은 거인들의 정원에 온 듯한 컨셉트로 화제가 됐다. 까르띠에 관계자는 “전시된 모형들은 건축 이전 단계의 실험용이 아니라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들”이라고 귀띔했다.  
 
치밀한 설계로 만들어내는 ‘공기 같은 건축’
개미굴을 연상시키는 일본 야마구치의 하우스&레스토랑(2013) 조감도

개미굴을 연상시키는 일본 야마구치의 하우스&레스토랑(2013) 조감도

이같은 그의 정교한 설계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2005년 기린아트프로젝트 전시에서 그는 길이 9.5m, 너비 2.6m, 높이 1.1m의 커다란 테이블을 선보였는데, 철판으로 만든 테이블 두께가 3㎜에 불과했다. 테이블 위에 물건을 놓았는데도 휘지 않았다. 소품 위치나 무게까지도 치밀하게 계산한 덕이다. 어찌보면 비현실적인 이 테이블은 지극히 현실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일본 가나가와현에 있는 가나가와 공대 공방도 대표작이다. 2009년 완공된 이 공방은 이시가미의 첫 작품이기도 했다. 캠퍼스 재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학생들을 위해 새로 짓는 스튜디오였다. 단층 건물인데 사면이 유리다. 마치 유리 온실처럼 건물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유리 건물의 구조체는 내부에 서 있는 얇디얇은 하얀 강철 기둥이다. 2000㎡ 규모의 공간에 세운 기둥 수만 305개에 달한다. 어떤 곳에는 기둥이 많고 어떤 곳은 또 적어, 기둥 수에 따라 내부가 훤히 보이기도 시선이 막히기도 한다. 스튜디오를 쓰는 학생들이 함께 있되, 개인 공간에서 따로 작업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디자인했다. 마구잡이로 세운 것 같지만, 기둥 사이 의자와 테이블 배치까지 고려할 정도로 치밀하게 구조 계획을 세웠다. 유리 공간 전체의 크기에 비해 기둥이 얇다 보니, 건물 안팎의 경계가 모호한 느낌을 준다.  
 
일본 가나가와 공대 공방(2009)의 실내 모습

일본 가나가와 공대 공방(2009)의 실내 모습

이시가미는 인터뷰 때마다 “건축을 자유롭게 생각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건축물의 경계를 없애거나 가변적인 구조체 실험 덕분에 그의 작업은 ‘공기의 건축’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는 이토 토요-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지와 류에(SANNA)-이시가미 준야로 이어지는 일본 건축가 3대 계보의 경향이기도 하다. 도미이 교수는 “이시가미 준야의 경우 더 추상적인 건축, 더 극한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2010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본 전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을 때의 전시 주제가 바로 ‘공기와 같은 건축’이었다. 이시가미는 전시에서 0.9mm 짜리 가느다란 탄소 섬유로 가로ㆍ세로 14×4m, 높이 4m의 건축물을 세웠다. 모형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완전한 실제 건축물을 지으려 했는데, 현장에서 작업하던 도중 건물 일부가 무너지고 말았다. 무너진 건축물은 그대로 전시됐고, 제대로 세워진 부분 역시 가까이 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아 화제가 됐다. 이시가미에게 황금사자상을 안긴 심사위원단은 “건축 자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전과 타협하지 않은 결과물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일본 토호쿠의 시니어하우스촌(2012) 모형들

일본 토호쿠의 시니어하우스촌(2012) 모형들

더 자유롭고, 더 가벼운 건축물을 짓기 위해 정교한 실험은 필수다. 그래서 이시가미는 실물 사이즈로 모형 작업을 많이 하는 건축가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 탓에 실제로 지어진 것보다 갤러리에서 전시용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
 
파리 글 정형모 기자, 한은화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00A9> junya.ishigami + associ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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