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간의 몸은 하나의 픽셀이다”

중앙선데이 2018.07.21 02:00 593호 8면 지면보기
제17회 동강국제사진제 동강사진상 수상자 황규태
올해 동강사진상 수상자인 사진작가 황규태의 1969~72년작 ‘무제(Untitled)’. 사진 동강국제사진제

올해 동강사진상 수상자인 사진작가 황규태의 1969~72년작 ‘무제(Untitled)’. 사진 동강국제사진제

산 깊고 물 맑은 강원도 영월에서 2002년 시작된 동강국제사진제(DIPF)가 열일곱 번째 행사를 시작했다(6월 14일~9월 21일). 2005년 7월 개관한 국내 최초의 공립사진박물관인 동강사진박물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행사는 2001년 사진마을 선언을 한 영월이 국제적 지명도를 쌓아가며 사진의 고장으로 거듭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올해 국제공모전에 55개국에서 3370점의 작품이 접수된 것은 동강국제사진제의 단단해져 가는 명성을 방증한다.  
 
동강국제사진제는 매년 한 명의 사진가를 선정해 ‘동강사진상’을 수여하고 있는데, 1회 때 최광호 작가를 비롯해 이갑철·김기찬·최민식·성남훈·김아타·강홍구·이상일·강용석·오형근·노순택·이정진·구본창·정주하·김옥선·정동석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올해의 주인공은 황규태 작가다. 우리 나이로 여든하나, 역대 최고령이다.  
 
1963년 경향신문 사진기자로 시작해 6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필름 태우기·이중 노출·콜라주·몽타주 등의 기법을 활용하는 실험적 작품 활동을 지금까지 왕성하게 해오고 있는 ‘젊은’ 작가다. 이번 수상 작가전의 주제는 ‘묵시록, 그 이후’. ‘묵시록’은 세계의 종말과 최후의 심판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신약 성서의 마지막 권이다. 그는 왜 이 주제를 선택한 것일까. 중앙SUNDAY S매거진이 황 작가와 신수진 동강국제사진제 예술감독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태양을 찍은 필름을 태워 만든 작품 ‘녹는 태양(Melting the Sun)’ 앞에 서 있는 황규태 작가를 이중 노출 기법으로 찍었다.

태양을 찍은 필름을 태워 만든 작품 ‘녹는 태양(Melting the Sun)’ 앞에 서 있는 황규태 작가를 이중 노출 기법으로 찍었다.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어느 범위를 넘으면 사진이 아니라고 할까. 사진은 사진이어야만 되는 것일까. 그 시절의 의문들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DNA 분자들이다.” (『황규태』중, 열화당, 2005)  
 
작가 황규태의 사진 인생 60년을 관통하는 단어는 ‘실험’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장난을 좀 쳤다.” 필름 자체를 신성시하던 시절, 그는 필름을 태워보는 ‘도발’을 했다. 다른 사진이나 그림을 합성하기도 했다. 포토샵이 없던 시절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림으로만 가능했던 환상의 세계를 사진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하고 연구했던 거죠. 도저히 한 장의 사진으로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세계를 처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진이론가인 박상우 중부대 교수는 “외부보다 자신의 내부 세계를, 현실보다 초현실을, 객관적 세계보다 주관적 세계를 더 심도있게 모색하는 작가”라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추구해온 환상의 세계에서 미래 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풀어낸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명 복제나 쓰레기, 핵전쟁 등 과학 기술과 문명 발전의 어두운 측면, 멸망과 그 이후에 대해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들로 골랐다”는 것이 신수진 예술감독의 설명이다. “내 컴퓨터 속 휴지통까지 뒤졌다. 쓰레기통에서 장미찾기였다”는 황 작가의 말에 신 감독은 “보물섬에서 보석을 발굴하는 느낌이었다”라고 답했다.  
 
CCTV의 감시를 받는 미래 사회를 픽셀 작업으로 구현한 ‘픽셀, 빅 브라더(Pixel: Big Brother)’. 전시장 한 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대작이다.

CCTV의 감시를 받는 미래 사회를 픽셀 작업으로 구현한 ‘픽셀, 빅 브라더(Pixel: Big Brother)’. 전시장 한 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대작이다.

전시장에서 처음 관람객을 맞는 작품은 빨간색 스포츠카를 몰고 있는 부엉이다(표지사진). 1969~73년에 만든 작품이다. 부엉이의 표정이 화가 나 있는 것 같기도, 조급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 자동차가 별로 없던 시절에 미국으로 갔는데, 거기는 차가 아주 넘쳐나더라고. 사고도 많이 나고. 무작정 달리는 기술 문명에 대한 불안함, 두려움 같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암실에서 다중인화 기법으로 만든 작품이에요.”(황)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자유분방한 터치로 풀어냈죠. 미국의 세계적인 사진잡지 ‘파퓰러 포토그래피(Popular Photography)’에서 선생님 작품을 특집으로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작품입니다.”(신)  
황규태 작가가 ‘에볼루션, 픽셀(Evolution-Pixel)’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인간이 곧 픽셀“이라는 맥락이다.

황규태 작가가 ‘에볼루션, 픽셀(Evolution-Pixel)’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인간이 곧 픽셀“이라는 맥락이다.

 
행사 현수막에는 양의 머리를 가진 인간의 사진을 썼습니다.  
“이제 인간은 신(神)이 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신을 초월해 있어요. DNA 조작을 통해 생명을 만들어내는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죠. 인간이 창조한 제3의 종은, 겉으로 보기엔 야하고 섹시하지만, 동물화되고 있는 인간을 표현한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이 자유롭게 결합하는 ‘믹시즘(Mixism)’ 사회가 도래하는 거죠.”  
 
미래가 불안한가요?  
“난 불안하지 않아요. 다만 불안함을 표현할 뿐이죠. ‘바벨’이라는 작품은 한강 둔치에서 모아 태운 깡통 쓰레기 더미를 다른 풍경과 합성한 것인데, 인간의 욕심이 무한하다는 것과 환경 오염에 대한 경고를 함께 담았죠.”  
 
태양이 녹아내리는 듯한 작품 ‘멜팅 더 선’도 암울한 느낌인데.  
“그건 태양을 찍은 사진의 필름을 촛불에 태운 겁니다. 뭐가 어떻게 나올지 저도 몰라요. 그걸 기다리고 기대하는 재미가 있죠.”  
 
첨단 생명공학 기술이 생산해낸 복제 생명체들이 공장에서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세상을 그린 ‘리프로덕션(Reproduction)’

첨단 생명공학 기술이 생산해낸 복제 생명체들이 공장에서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세상을 그린 ‘리프로덕션(Reproduction)’

여섯 장의 초상화에서는 눈만 보입니다.  
“모나리자나 인형에 내가 찍은 가짜 눈을 크게 붙여 합성한 것이죠. 가짜 눈은 만들어진 생명을 상징합니다.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도 일종의 창조론이죠.”  
 
수도 없이 많은 아기 사진도 ‘인간의 창조’에 대한 경고 같습니다.  
“제목이 ‘리프로덕션(Reproduction)’이에요. 인간이 창조한 복제인간들이죠. 공장에서 ‘출고’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다리는 생명들. 제 3의 종의 기원을 쿨하게 보여주려 했는데, 외려 두려움을 많이 느끼실 듯 해요. 하지만 작가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림이니까.”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기술에 대한 묵직한 비판
전시장 중간에는 검정 커튼막이 있고, 그 속에 들어가면 별들 가득한 우주가 펼쳐진다. ‘천상열차분야지도’다. 아주 작은 글씨로 지구와 달 표기도 해놓았다. 전자 음향을 음악에 도입한 헝가리의 현대 음악가 죄르지 리게티가 만든 ‘레퀴엠’ 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의 장엄한 소리를 듣다보면 절로 마음이 정화되는 듯하다. 그런데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은하수가 아니다. “사실 먼지를 찍어 컴퓨터로 작업한 것”이라는 게 신 감독의 귀띔이다. ‘먼지와 은하수 사이, 그 어디쯤에 인간이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황 작가는 컴퓨터를 일찍부터 활용했다. 97년 무렵에 처음 구입했다. 외장하드 용량이 80기가에 불과할 때였다. 컴퓨터로 이리저리 작업을 하다가 어느날 사진을 계속해서 확대해보았다. 픽셀이 깨져나갔다. 그런데 그 속에 기묘한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있음을 발견했다. ‘픽셀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이번에도 전시장 절반이 픽셀 프로젝트 작품으로 채워졌다. 한 가운데 설치된 가장 큰 작품이 ‘픽셀, 빅 브라더’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텔레 스크린을 통해 개인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바로 그 눈이다.  
 
작품 속 두 눈에서 뿜어져나오는 파괴력이 대단합니다.  
“기계의 눈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통제 사회를 풍자한 것입니다. 이제 어디에나 ‘눈’이 있죠. 픽셀 하나하나가 다 CCTV를 은유합니다. 파란색은 차가움을 반영하고 있고요. 현대인들은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이 들 때까지 몇 번이나 CCTV에 찍힐까요. 관람객들이 들어오자마자 눈이 서로 딱 마주치도록 한 것이 컨셉트인데, 전시장 입구와 벽면 사이가 좀 멀어요. 아, 눈을 좀 더 크게 뽑았어야 했는데 .”    
 
‘픽셀, 바이오플라스트 맵’은 해골처럼 보이는데.  
“인쇄된 해골 더미를 찍은 것입니다. 하나만 선택해서 확대해서 찍고 다시 확대해서 또 찍다 보니 저런 무늬가 나오더라고요. 나는 이것이 하나의 지도, 지형도라고 생각합니다. 파일 사이즈가 작으면 영상이 깨지는데, 극단적으로 깨지면 픽셀이 보이죠. 그것을 칼라나 형태가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만든 것입니다. 어떤 아름다움이 나타날지 예상을 못하죠. 그래서 픽셀 작업을 하다보면 날 새는 줄 몰라요. 하하.”  
 
모나리자에 가짜 눈을 합성한 ‘무제(Untitled)’(1969~1972)

모나리자에 가짜 눈을 합성한 ‘무제(Untitled)’(1969~1972)

마지막에 설치된 길다란 ‘픽셀, 에볼루션’은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깔로 표현된 사람이 점점 입자화되면서 마침내 하나의 정사각형 점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신 감독은 “인간의 신체에서 물리적인 세포는 존재 양상으로 보았을 때 이미지 안에 들어있는 픽셀과 다를 것이 없다. 픽셀이라는 조각은 곧 DNA”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하나의 픽셀로 환원되는 세상이 황규태의 예술 세계라는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다. 황 작가는 “입자화하면 전송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간과 기계가 그렇게 하나의 맥락을 이룬다. 마지막 빨간 정사각형이 문득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점이 그냥 점이 아닌 것이다.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거의 100년 전에 추상회화를 극단적으로 단순한 형태로 표현했지요. 원과 사각형, 십자가 같은 아주 간결한 형태로. 저의 픽셀 작업은 제가 창조한 게 아닙니다. 기계에서 창조돼 있는 것을 저는 끄집어낼 뿐이죠. 내재된 것을 발견해서 보여주는 게 제 작업입니다.”(황)  
 
“차용하고, 발굴하고, 연결하면 의미가 발생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 의식이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죠. 시대가 바뀌면 창작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기술이 발달하면 생각도 바뀌게 되죠.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를 맞아 선생님의 작품이 또 어떤 신비로운 꽃을 피우게 될 지, 정말 궁금해집니다.”(신) ●
 
영월(강원도)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동강국제사진제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