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중앙선데이 2018.07.21 02:00 593호 32면 지면보기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 
저자: 이승연 출판사: 스리체어스 가격: 1만2000원

저자: 이승연 출판사: 스리체어스 가격: 1만2000원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지만 요즘은 안 하고 후회하려는 이들이 많다. 우선 취업이 힘들고, 직장을 얻는다한들, 집 한 채 마련하기까지 아끼고 또 아끼고 살아도 답이 안 나온다. 여자는 더 말해 무엇하랴. 집안 일과 육아는 물론 시댁 문화를 좇아 모든 걸 내려놓는 ‘며느라기’까지 어느 하나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결혼의 거부가 비혼 밖에 없을까. 책은 부부가 아니면서도 가족을 이루는 남녀관계가 성립될 수 있음을, 그리고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거창한 사회 이론과 학문적 배경을 내세우는 건 아니다. 온전한 저자의 경험담이다. 미국으로 유학, 대학 졸업 후 프랑스로 건너온 그는 현지 남자와 사귄 지 5년, 동거한 지 3년 만에 ‘팍스’를 맺고 살고 있다.  
 
‘팍스(PACS: Pacte Civil de Solidarit<00E9>)’는 번역하자면 ‘시민 연대 계약’이다. 1999년 프랑스에서 동성 커플의 결혼 합법화 이전 대안으로 나온 제도인데, 이제는 결혼보다 간소한 결합 방식을 원하는 이성 커플에게 인기가 높단다. 팍스로 파트너가 되면 배우자로서 법적 권리를 가지며 세금 공제나 건강보험료 등의 혜택을 누릴 수도 있지만, 결혼과 달리 간단한 서류 제출로 관계를 맺을 수도 끊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이 파기를 원할 땐 바로 효력이 상실된다니 말이다. 흥미로운 건 결혼한 부부 3분의 1이 이혼을 결정하지만, 팍스를 해지하는 비율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식도 없이 서류 한 장으로 맺은 계약 관계라지만, 우리에게는 상상이 힘들만큼 이상적이다.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한 철저한 분담은 물론이고, 파트너 부모 집에 가서 설거지 기계가 되는 일도 없다. 4가지 코스 요리를 온 가족이 함께 준비해 만든 식탁에서는 부부의 피임 방식이 서슴없이 화제에 오른다.  
 
본론은 이제부터다. 팍스라는 제도가 자리 잡기까지의 그 이면이다. ‘평등한 시민 간의 계약’을 위해서는 가족을 꾸린 뒤에도 누구나 독립적 개인으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만드는 건 사회의 문화와 국가 시스템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프랑스 사회 문화가 한몫을 한다.  
 
하지만 더 눈여겨볼 건 국가의 정책, 특히 파트너의 경제력에 종속되기 쉬운 여성에 대한 배려다. 출산 6개월부터 시작되는 각종 지원에서 ‘아빠가 누구인지’ 따지지 않는다. 출산 후 6개월 뒤부터 국가가 보장하는 보육기관에 아이를 맡길 수 있고, 남자와 헤어지더라도 양육비 청구를 국가가 나서서 해준다니 말이다. 이쯤이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생길 만하지 않나. 실제로 2017년 프랑스 전체 출생아 중 팍스나 동거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전체 출생아의 59%나 됐다고 한다.
 
“정부야 아무리 나대봐라, 내가 결혼하나. 고양이랑 살지.” 얼마 전 한 여성단체가 저출산 대책을 비난하며 내세운 시위 문구다. 우리는 여전히 다양한 개인이 존재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올 수 있음을 배제한 채 ‘결혼=출산’이라는 단 하나의 정답지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개인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는 글귀에 밑줄을 긋는다. ●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