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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없다고 이곳을 안 오랴

중앙선데이 2018.07.21 02:00 593호 34면 지면보기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통영놀이 
 ‘하늘엔 케이블카, 땅에는 루지’  
 
통영으로 들어오는 길목 광고판에 커다랗게 쓰여 있다. 케이블카는 한 해 140만 명, 바퀴 달린 썰매를 타고 1.5㎞ 길이의 언덕 코스를 내려오는 루지는 180만 명이 찾으니 내세울 법도 하다. 이런 인기(?)가 부러웠는지 주변 도시들도 따라하기 바쁘다. 양산에는 신불산 자락을 깎아 통영보다 500m나 더 길게 만든 루지 트랙이 지난 1일 개통됐다. 부산ㆍ양산ㆍ울산ㆍ대구 사람들은 이제 루지 타러 통영까지 안 가도 된다고 홍보한다. 사천에는 바다케이블카가 운행을 시작했는데 역시 통영보다 길다. 개통 100일 만에 누적 탑승객 37만 5천 명을 돌파했다고 자랑한다.  
 
이것뿐인가. 창원에서는 음지도와 소쿠리 섬을 잇는 ‘짚트랙’(해상 공중 하강레저시설)을 올 하반기에 개장한다. 현수막과 전단지로 무장한 창원시 홍보단은 통영과 사천 케이블카, 양산 루지 탑승장까지 깊숙이 침투해 통영ㆍ사천ㆍ양산에 없는 짚트랙을 알리며 게릴라 홍보전을 펼친다. 이에 질세라 케이블카와 루지의 원조 통영에서는 미륵산 자락을 또 깎아 두 번째 트랙을 개장한다며 열을 올린다.  
 
케이블카 인기는 시장 선거에서도 식을 줄 몰랐다. ㄱ 후보는 현재 케이블카 외에 남망산과 도남동을 잇는 케이블카와 한산도와 미륵도를 잇는 해상케이블카 두 곳을 더 개통하겠다고 밝혔다. ㄴ 후보는 케이블카만으로는 약하다며 아예 통영 입구부터 시내까지 친환경 하늘전차 스카이트램을 세워 교통난을 해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ㄷ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새로운 탈것을 개발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며 정말 케이블카와 루지를 타러 통영에 오는지, 한번 타 본 사람이 또 타려고 얼마나 다시 찾는지 궁금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나 내 주변 사람들은 조금 다른 이유로 통영을 찾거나 다시 찾았다.  
 
며칠 전 봉수골에 흑백사진관이 생겨 인사나 할 겸 찾아갔다. 오래된 2층 주택을 고쳐 1층은 사진관과 캘리그래피 작업실로, 2층은 사는 집으로 꾸몄다. 어딘가 낯이 익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몇 년 전 서울 인근 카페에서 만난 주인장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물으니 대뜸 “밥장 때문에 왔지요”라며 껄껄 웃었다.  
 
부부는 5년 넘게 운영한 카페를 지난해 그만두었다. 차곡차곡 쌓인 피로와 돈‘독’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여행 삼아 통영 왔다가 미수동에 아파트를 빌려 눌러앉았다. 1년 동안 이곳저곳 다니며 쉬다가 지난 4월 이 집을 사서 직접 고친 뒤 사진관을 열었다. 예약을 받아 사진을 찍고 저녁 먹기 전에 문을 닫아서 뭘 해야할지 모를 만큼 시간이 남는다며 활짝 웃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그는 적어도 케이블카나 루지를 타려고 자리 잡은 건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통영은 살아볼수록 조금씩 알게 되는 것들로 차고 넘친다. 꿀빵과 충무김밥, 회 한 접시를 후딱 해치우고 바삐 떠나는 1박 2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문득 아테네에서 만난 그리스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팔 수만 있다면 그리스 하늘은 최고의 수출품이라고. 그리스에 다시 간다면 그저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며 질리도록 파란 하늘을 온몸에 묻히고 싶다. 그래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통영 역시 팔 수 없는 귀한 것들로 이미 가득하다. 애써 볼 것과 탈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도 괜찮다. ●
 
작가ㆍ일러스트레이터ㆍ여행가. 회사원을 때려치우고 그림으로 먹고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호주 40일』『밤의 인문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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