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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사회주의 걱정되면 일본처럼 의결권 민간에 주면 돼

중앙선데이 2018.07.21 01:17 593호 2면 지면보기
[SPECIAL REPORT] 이래서 도입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

2016년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을 처음 추진한 곳은 금융위원회다.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기업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은 구원투수를 찾았다. 바로 조명현(사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은 2002년 설립된 사단법인이다.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상장회사협의회 등이 사원 기관이다. 2012년부터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자문업무도 맡고 있다. 조 원장은 취임 6개월 만인 2016년 12월 스튜어드십 코드 최종안을 완성하고 즉각 시행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52개 기관이 가입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둔 지난 10일, 조 원장을 서울 성북구 고려대 경영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
정권의 국민연금 동원 막으려면
오히려 스튜어드십 코드 필요

코드 따르는 기관투자가는 온건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과 결 달라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간 연금 사회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들이 말하는 연금 사회주의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행태다. 역대 정권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국민연금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고 싶어 했다. 이런 전횡을 막으려면 오히려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정권의 입김보다 수탁자(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재계는 왜 이렇게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가.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주주총회에서 거수기였다. 재벌 입장에선 고마운 존재다. 무조건 찬성만 했으니.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국민연금은 더 이상 거수기가 될 수 없다. 수탁자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 언제나 찬성일 수는 없지 않나. 시가총액 상위 종목 가운데 국민연금이 2대, 심지어 최대주주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지금껏 오너들 전횡에 아무 말을 안했던 게 더 문제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엘리엇 같은 헤지펀드와 손잡고 기업 경영에 간섭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엘리엇 같은 행동주의 펀드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지키지 않는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따르는 기관투자가는 온건하고 경영진과 수시로 대화한다. 5~10년 장기 성과가 중요하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엘리엇 같은 행동주의 펀드와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기업과 같은 편이 돼 행동주의 펀드에 맞설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파트너십 코드다. 그래도 연금 사회주의가 걱정된다면 자본시장법을 고쳐 의결권 자문까지 민간에 넘기면 된다. 일본 연금(GPIF)이 그렇게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했을까.
“그때 국민연금 자문을 맡은 우리도 반대했다. 하지만 기금운용본부가 알아서 최종 결정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찬성과 반대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특히 자문사의 의견과 반대 결정을 내릴 때에는 그 근거가 더 명확해야 한다. 합병에 찬성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면 찬성하지 못했을 것 같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외압 논란이 촉발된 게 지난해 11월 KB금융지주 주주총회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지도 않았는데 정권 ‘코드’에 맞추느라 그랬는지 국민연금만 유일하게 노동이사(근로자 추천 이사)에 대한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의견을 자유롭게 기술하거나 일종의 체크리스트를 점검하는 식이다. 사외이사 선임은 후자다. 예를 들어 범죄 경력이 있는지 등을 확인만 하면 된다. 그래서 국민연금에는 그 항목을 체크해서 줬다. 다만 다른 운용사에는 반대 의견을 냈다고 참고로 알렸다. 노동이사제라는 게 노사가 우호적 관계면 좋은 제도지만 적대적 관계일 때에는 경영 효율성을 저해한다.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건 원래 있던 사외이사 선임 기준에 따른 것뿐이다. 지금 시스템으로는 공산당이 추천한 사외이사라도 국민연금은 찬성할 거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국민연금 주도로 대한항공 경영진을 몰아낼 수 있나.
“없다. 국민연금이 2대 주주로서 할 수 있는 건 공개서한 발송 정도다. 이런 일이 생기면 이사회가 나서서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사회가 한 번도 안 열렸다. 그래서 공개서한을 보낸 거다.”
 
지배구조원의 의결권 결정이 외부 입김에 흔들릴 우려는 없나.
“의결권 심의를 할 때 연구원들이 1차 보고서를 만들고, 그걸 근거로 박사들로 구성된 심의위원들이 결정을 내린다. 중대한 사인일 경우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의결권전문위원회를 열어 최종 결론을 내린다. 우리를 친정부 성향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던데, 그렇다면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갓뚜기’라고 칭찬했던 오뚜기에 지배구조 D등급을 줬겠나.”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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