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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파키스탄 샤리프 전 총리 체포, 적폐청산인가 보복인가

중앙선데이 2018.07.21 01:00 593호 29면 지면보기
비리 혐의로 기소된 나와즈 샤리프 전 파키스탄 총리가 지난 13일 영국에서 귀국해 파키스탄 라호르 공항에 도착했다. 마리암은 해외 재산 은닉과 돈세탁 의혹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비리 혐의로 기소된 나와즈 샤리프 전 파키스탄 총리가 지난 13일 영국에서 귀국해 파키스탄 라호르 공항에 도착했다. 마리암은 해외 재산 은닉과 돈세탁 의혹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파키스탄의 나와즈 샤리프(69) 전 총리가 딸 마리암(45)과 함께 지난 13일 체포된 사건은 전 세계 이목을 끌 ‘흥행 요소’로 넘친다. 우선 샤리프 전 총리는 현직에 있던 2016년 국제탐사보도 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조세 회피 자료인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에 딸과 두 아들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조세 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세운 유령회사를 통해 1993년과 95년 영국 런던의 부촌에 고가 아파트를 각각 사들였다는 내용이다. 사실이라면 해외 재산 은닉과 돈세탁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사건 성격상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2016년 재산 해외 도피 의혹 나와
야권 격렬 시위 6개월 만에 사임

“카타르가 빚 갚은 것” 해명 했지만
대법원, 궐석재판서 징역 10년형

30년간 집권·낙마 세 차례 ‘오뚝이’
총선 앞두고 정치 음모설 나와

 
그런 상황에서 야권은 6개월간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마비시킬 정도로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대법원은 2017년 7월 샤리프에게 총리 자격 정지 판결을 내렸다. 그는 즉각 사임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부인이 투병 중인 영국 런던에 머물러왔다. 파키스탄 반부패법원인 국가책임원(NAB)은 사임 1년 뒤인 지난 6일 궐석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해 그에게 징역 10년, 딸 마리암에게 7년, 사위 샤프다르에게 1년을 각각 선고했다. 별도로 샤리프 가족들에게 총 1000만 파운드(약 148억원)의 벌금을 물리고 영국 내 부동산 압류도 명령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판결이 나오자 샤리프는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딸과 함께 지난 13일 고향이자 정치적 근거지인 동북부 펀자브주 주도인 라호르의 공항으로 귀국하다 NAB 수사관들에게 체포됐다. 제2야당인 정의운동(PTI)의 임란 칸(66) 대표는 “샤리프는 그동안 부인의 병을 내세워 국민을 감정적으로 협박해왔다”며 “그를 기다리는 곳은 감옥뿐”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샤리프의 소속정당인 파키스탄 무슬림연맹-나와즈파(PML-N)의 대표인 그의 동생 샤바즈 샤리프는 “명백한 증거도 없이 이뤄진 법원 판결을 거부하며 이는 역사의 어두운 부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해 향후 정치적 투쟁을 예고했다.
 
샤리프 전 총리와 딸 마리암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반부패수사기구 요원들에 의해 연행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샤리프 전 총리와 딸 마리암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반부패수사기구 요원들에 의해 연행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사건이 이목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NAB 판결과 샤리프 귀국이 오는 25일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파키스탄은 총선 결과에 따라 정부가 구성된다. 진보 성향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샤리프는 런던 부동산이 카타르 왕실에서 자신의 선친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제공한 것이라고 해명해왔다”며 “현지 분석가들은 총선을 앞두고 샤리프와 그의 PML-N을 흠집 내려는 더욱 다양한 시도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전했다. 파키스탄에선 샤리프 재판과 수감의 배경을 부패 척결과 정의 구현으로 보기보다 정치적 음모로 보는 시각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현재 파키스탄 하원에선 중도우파·친서방·이슬람보수주의의 PML-N이 전체 의석 342석 중 166석을 차지하며 범야권을 포함하면 과반수 의석을 확보 중이다. 이에 도전하는 제1야당인 좌파 파키스탄 인민당(PPP)은 의석이 42석에 불과하다.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 대표는 29세의 세습 정치인이다. 2007년 암살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아들이자 79년 군사쿠데타 세력에 처형된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의 외손자다. 좌파 정당을 세습 정치인이 이끄는 아이러니다. 35개 의석으로 제2야당 PTI를 이끄는 칸 대표는 영국 옥스퍼드대 우등졸업생으로 이 나라 최고 인기 스포츠인 크리켓 국가대표팀에서 선수로 20년, 주장으로 10년을 활약했다. 92년 크리켓 월드컵에서 파키스탄의 첫 우승을 이끈 국민 스포츠 영웅이지만 정치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미래보다 과거에 의존하는 회고형 정치인 셈이다.
 
사실 철강 기업인 출신인 샤리프는 30년 이상 정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치 오뚜기’다.  3차례 총리를 지내면서 한 번도 임기를 못 채울 정도로 심한 견제를 받아왔다. 62년 설립된 우파정당 파키스탄 무슬림 연맹(PML)이 88년 8월 신헌법을 둘러싸고 분열한 뒤부터 최대 파벌인 PML-N을 이끌어왔다. N은 나와즈파를 의미한다. 샤리프의 정치적 비중을 보여주는 사례다. 샤리프는 90년 처음 정부 수반인 총리에 올랐지만 93년 4월 국가원수인 굴람 이샤크 칸 대통령(88~93년 재임)의 정부 해산 명령으로 물러나야 했다. 다음 달 대법원이 대통령 명령을 권한 남용으로 판단해 무효로 하면서 총리에 복귀했지만 7월 군부 중재로 대통령과 동시에 물러나는 조건으로 사임했다.
 
샤리프는 97년 총선에서 승리해 2차 임기를 시작했다. 재임 중이던 98년 5월 초 인도가 5발을 터뜨리는 핵실험을 하자 샤리프는 그달 말 6발의 핵실험으로 단호하게 맞대응해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럼에도 99년 10월 페르베즈 무샤라프 육군 참모총장의 무혈 쿠데타로 권좌에서 밀려났다. 이 나라 정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그 뒤 무샤라프의 운명이다. 2001년 대통령에 올랐지만 2008년 집권한 좌파 파키스탄 인민당(PPP)의 유사프 라자 길라니 총리가 탄핵을 압박하자 사임했다. 그런 길라니도 자당 소속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와 아시프 자르다니 대통령의 부패 재판에 반대하다 법원으로부터 법정모욕죄로 2012년 유죄 판결을 받고 총리와 하원의원에서 퇴출당했다. 샤리프의 총리 퇴출과 재판도 단순한 부패 척결로만 간주하긴 힘들고 이러한 파키스탄 정치의 ‘어두운 흐름’의 연속 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샤리프는 2013년 총선에서 PPP를 누르고 권좌에 복귀했다. 영국 BBC방송 보도에 따르면 47년 이 나라 독립 이후 유례 없는 3차례 총리 재임이자, 선거로 집권한 정부끼리 정권을 서로 인수·인계한 첫 사례다. 그런데도 샤리프는 대법원 판결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반부패법원 판결로 감옥까지 가게 됐다. 가디언은 샤리프와 함께 실형을 선고받은 딸 마리암이 그의 정치적 후계자로 간주돼 왔음도 지적했다. 이 나라에선 권력에 대한 사법 정의 실천과 정치 보복·음모의 구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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