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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같은 은여우, 어떤 일이 있었기에 …

중앙선데이 2018.07.21 01:00 593호 32면 지면보기
책 속으로
은여우 길들이기

은여우 길들이기

은여우 길들이기

50년대 가격 폭등하자 대량사육
순한 개체만 반복 교배해 가축화
유전자·호르몬 등 호기심 북돋워

리 앨런 듀가킨·
류드밀라 트루트 지음
서민아 옮김, 필로소픽
 
거실 깊숙이 ‘야생’을 들여놓는 사람들이 많다. 개·고양이 말이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감탄과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존재들이지만 그들의 습성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다. 때로는 늑대로 보이고, 어떨 때는 작은 호랑이·사자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왜 야생의 개와 고양이를 현재의 개와 고양이로 가축화한 것일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뭔가 주고받는 게 있었으니 가축화가 이뤄졌을 거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에 초점을 맞춘 게 이 책이다. 개·고양이 말고 다른 야생 동물을 길들여 반려동물처럼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수 만 년 전 인류 조상들의 고뇌와 지혜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은여우를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해보자. 그런 발상에 따라 수십 년간 구소련(지금은 러시아이지만) 과학자들이 벌인 무지막지한 실험을 충실하게, 그러면서도 극적으로 정리했다.
 
20세기 초중반 세계의 상인들은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는 은여우 모피에 매혹됐다고 한다. ‘실버 러시’ 현상이 벌어져 곳곳에서 대량 사육이 이뤄지면서 산업화된다. 러시아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책의 영웅적인 주인공인 드미트리 벨랴예프는 그 틈바구니에서 과학적 야망을 추구한다. 야생동물 가축화의 비밀을 푸는 일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해 돌연변이 유전형질이 정착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면 가축화는 수백, 수천 년이 걸려야 마땅하겠지만 그보다 훨씬 짧은 수십 년에 걸쳐 가축화에 근접한다면 진화론의 거대 성채에 흠집을 내는 놀라운 성과가 될 수도 있다.
 
늑대는 언제부터 가축화돼 개가 된 걸까. 은여우 가축화 실험이 그 비밀을 밝혀줄지 모른다. [사진 Zefram]

늑대는 언제부터 가축화돼 개가 된 걸까. 은여우 가축화 실험이 그 비밀을 밝혀줄지 모른다. [사진 Zefram]

195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실험의 구조는 간단하다. 수백 마리의 사육 은여우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사나운 소수 개체를 선별해 이들 간에 반복 교배를 통해 보다 온순하고 사람에게 충성스러운 은여우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실험은 성공한다. 강아지 비슷한 은여우들을 얻는다. 책의 마지막 장에 반려동물화한 은여우를 입양해 삶의 만족감이 크게 올라간 사례를 여럿 소개한다.
 
‘압축 가축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은여우가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거나 보다 귀여운 표정으로 외모가 변하게 된 건 유전자 돌연변이라기보다는 잠복해 있던 유전 형질이 반영된 결과라는 게 드미트리 등의 발견이다. 외부 위협이 사라진 상황은 거칠게 살도록 프로그램된 야생의 여우에게는 오히려 불안정한 상태다. 이때 가축성을 발현하는 잠복 유전자가 작동해 호르몬 이상 분비로 이어진다는 거다. 개와 사람이 서로 쳐다보기만 해도 수치가 올라가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옥시토신 같은 호르몬 말이다. ‘불안정 선택’ 이론이다.
 
드미트리의 모험은 과학계 주변에 꽤나 알려진 얘기다. 그 전모를 밝힌 책이 지난해 출간됐다. 그 책의 국내판이다.  
 
뉴욕타임스가 “스파이 스릴러 같기도, 러시아 동화 같기도 한 과학 논픽션”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그 평가 그대로다. 재밌으면서도 뭔가 남는다. 개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과학적 근거들이 흥미롭다. 개도 인간도, 앞으로 우리 곁을 지키게 될지 모르는 은여우도 대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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