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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CEO, 소통 대신 끈기·성취 자꾸 말하면 위험신호

중앙선데이 2018.07.21 00:02 593호 10면 지면보기
국어사전은 오만(傲慢, Hubris)을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위인과 국가가 오만으로 인해 몰락했다. 경영·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유로존 위기를 거치면서 유럽 경영학계에선 조직을 무너뜨리는 원인으로 ‘리더의 오만’을 지목하는 연구자들이 늘고 있다. 포브스코리아의 제1회 ‘휴브리스(오만) 포럼’ 참석차 방한한 유진 새들러 스미스 영국 서리대 경영대학원 교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영국 오만학회의 이사다. 그로부터 왜 회사 경영에서 ‘오만’이 문제인지를 들어봤다.
 

유진 새들러 스미스 영국 오만학회 이사
성공에 취한 리더 과도한 자신감
무모한 결정으로 조직 위기 불러

낮은 직급도 “노” 할 수 있게 하고
직언하는 ‘광대’ 곁에 둬야 예방

일상 대화·농담에도 오만의 징후
SNS·연설 살피면 미리 알 수 있어

 
영국 서리 경영대학원의 유진 새들러 스미스 교수가 지난 1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포브스코리아 오만 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그는 영국 오만학회 이사다. [김현동 기자]

영국 서리 경영대학원의 유진 새들러 스미스 교수가 지난 1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포브스코리아 오만 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그는 영국 오만학회 이사다. [김현동 기자]

칭찬만 받고 견제 없으면 오만해지기 쉬워
 
언제부터 오만에 관한 연구를 해왔나.
“4~5년 됐다. 오만은 경영학계에선 비교적 새로운 화제다. 최근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오만에 대한 연구는 주로 정치인에 대해서 이뤄졌다. 영국 오만학회인 다이달로스 신탁을 설립한 데이비드 오언 전 영국 외무장관이 이 분야의 선구자다. 오언은 마가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의 오만이 그들의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했다. 나는 오언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경영에서의 오만을 연구하고 있다.”
 
오만이 경영과 무슨 관계인가.
“오만은 조직 전반과 깊이 연관돼 있다. 리더로 하여금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무모한 결정을 내리게 만들기 때문에 조직에 아주 해롭고 위험하다. 오만한 리더의 특징은 그들이 모두 자신의 권력과 성공에 취해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자신감과 야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타인의 비판이나 충고를 무시한다. 그 결과 무모한 판단을 내리고 예기치 못한 부정적 결과를 유발한다.”
 
리더가 오만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만을 유발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내적인 요인과 외적인 요인으로 나뉜다. 내적인 요인은 리더의 권력, 최근의 성과, 언론과 추종자의 찬사다. 리더가 자신의 권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고 찬사를 받을 경우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리더를 억제할 외적인 장치가 없을 때도 오만이 발생하는데, 이사회가 약하거나 직언을 해줄 사람이 없는 경우, 또는 규제가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가 그렇다.”
 
비판을 무릅쓰고 신념대로 밀어붙인 기업인이 성공한 사례도 많다.
“관건은 균형이다. 적절한 자신감과 야망은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성공은 오만을 기르는 양분이 되고, 오만은 본래 장점이었던 리더의 특징을 단점으로 바꿔놓는다. 이를테면 리더가 자기 자신과 조직의 목표를 일치시키고 조직의 목표달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키지만, 이 것이 과도해지면 자기 자신과 조직을 완전히 동일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내가 곧 조직’이라고 믿어버리는 거다.”
 
조직은 리더의 오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건 예방이다. 우리 대학 연구진은 리더의 오만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오만방지도구(Anti-hubris Toolkit)를 개발하고 있다. 한 가지 예방법은 고신뢰조직(HRO)이다. HRO는 항공사, 원자력 발전소 등 사소한 실수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조직에서 사용하는 리스크 관리 모델이다. HRO는 신뢰도(relaibility)를 실적과 동등하게 취급하며 실패를 숨기지 않도록 장려한다. 예를 들면 항공사에선 낮은 직급의 승무원에게도 상급자가 내린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설명을 요구할 의무 및 권리를 부여한다. 이 같은 HRO의 원칙 일부를 조직에 도입하면 리더의 오만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CEO의 고립을 해소하라
 
리더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다. 오만한 리더의 주변에는 그 오만을 부추기는 공모자들이 있다. 리더의 오만을 수동적으로 방치하는 사람과 적극적으로 이에 가담하는 사람이 모두 공모자에 해당한다. 반면 리더에게 직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직언을 하는 사람이 적고 공모자가 많을수록 리더가 오만에 빠지기 쉽고, 오만으로부터 헤어나오기는 어려워진다. 따라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은 오만을 예방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장치다.”
 
과거 왕정 시절 왕 곁에서 직언을 하던 광대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만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이 같은 직언자를 조직의 광대(organizational fool)라고 칭했다.”
 
권력자에게 직언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광대들도 많이 사형당한 걸로 안다.
“맞다. CEO는 외로운 직업이다. 조직 내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고립된 채로 생활하면 현실감각을 잃고 오만에 사로잡히기도 쉬워진다. 이를 예방하려면 CEO의 행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주변에서 주의깊게 관찰하고 피드백을 해주면서 그를 현실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CEO의 말이나 행동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변화가 어떤 결과를 불러 일으켰는지, CEO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근원이 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또 CEO가 믿고 의지하면서 조언도 구할 수 있는 친구를 사귀거나 비공식적인 동료 경영자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오만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이다.”
 
오만의 조짐을 사전에 파악하는 방법은 없나.
“리더의 오만은 발생 전부터 희미한 신호로 나타난다. 일상적인 대화나 가벼운 농담에서부터 소셜미디어, 연설에 이르기까지 리더가 하는 말에서 오만의 조짐이 드러난다. 이를 빨리 알아차리기 위해 CEO의 말을 컴퓨터 언어학이나 기계학습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등 연구자들 사이에서 여러가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영국 석유업체 BP가 2010년 멕시코만 석유 유출 사태를 일으켰을 당시 CEO였던 존 브라운의 기존 연설을 분석한 결과 끈기, 공격성, 성취 등의 단어 빈도 수가 평균 이상인 반면 소통, 인간, 관심 등의 단어는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유진 새들러 스미스 교수 영국 서리 경영대학원 교수로 전공은 조직행동학이다. 영국에서 오만 학회를 주관하는 다이달루스 신탁의 자문을 맡고 있다. 학자가 되기 전에는 영국 최대 에너지 기업인 브리티시 가스 인재개발부에서 일했다. 주된 연구 분야는 리더십과 혁신이며 특히 경영자의 직관과 오만에 대해 오래 연구했다.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직관』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신저 『오만한 리더십』이 오는 10월 영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 오만과 경영에 대한 더 자세한 분석은 7월 24일 발행되는 포브스코리아 8월호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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