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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4만보씩 강행군 … 골목길 꿰어 관광 보물 만들다

중앙선데이 2018.07.21 00:02 593호 12면 지면보기
서울 중구 도보관광 살린 세 공무원 
서울 중구청 임은영·이경숙·백은정 주무관(왼쪽부터)이 탤런트 최불암씨의 어머니인 故 이명숙 여사가 1950년대 운영했던 은성주점을 재현한 명동 백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인섭 기자]

서울 중구청 임은영·이경숙·백은정 주무관(왼쪽부터)이 탤런트 최불암씨의 어머니인 故 이명숙 여사가 1950년대 운영했던 은성주점을 재현한 명동 백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인섭 기자]

서울 중구. 서울의 한복판에 위치한 자치구(區)다. 명동의 화려함이 중구의 앞모습이라면 공동화로 쇠락해 가는 도심 주거지는 중구의 그늘이다. 지난해 말 중구의 인구는 12만 5709명으로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가장 적다. 하지만 중구의 낡고 좁은 골목들을 묶어 내놓은 도보관광코스가 인기를 얻으며 구도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도보관광코스는 현재 총 9개. 이 코스들에는 올 상반기에만 5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중구청은 보고 있다. 17일 중앙SUNDAY가 골목길을 관광상품으로 이어낸 중구청 공무원들을 만났다.
 

‘을지유람’ 이경숙 주무관
빈 건물에 청년공방 내 볼거리로
상인들 설득해 유람 코스 개발

‘광희문 달빛로드’ 백은정 주무관
벼룩시장 개설, 택견 등 마을 축제
‘시체 나가는 문’ 이미지 뛰어넘어

‘남산, 기억로’ 임은영 주무관
조선신궁 터, 통감부 터 등 엮어
학생들 찾는 다크 투어리즘 명소로

서울 중구청 이경숙(49) 문화관광과 주무관은 동료들 사이에서 ‘공무원 같지 않은 공무원’으로 통한다.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 주무관은 2016년 4월 운영을 시작한 ‘을지유람’ 코스의 산파다. 을지유람은 이름대로 을지로 곳곳의 골목을 누비는 코스. 2016년 서울시 창의행정 우수사례로 선정되고, 지금까지 전국의 공무원과 대학원생이 40여 차례에 걸쳐 성공 비결을 배우고자 찾아왔다.  
 
시작은 ‘한국엔 왜 뉴욕의 브루클린 같은 거리가 없을까’ 란 호기심이었다. 남편을 따라 미국 뉴욕 근교에서 3년 가량 살다 돌아온 그였다. 실태 파악을 위해 2014년 9월 을지로 골목길 내 건물의 공실률을 조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이 일대 건물 81동 중 1층 상점이 50% 이상 빈 건물은 52동(건물 중 64%)에 달했다. 일일이 건물주를 확인해 2015년 10월 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에선 고성이 오갔다. “쓸데없는 짓 말고 재개발이나 빨리 하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건물주 중 5명이 구청의 생각에 동의했다. 중구는 이들에게서 저렴한 값에 점포를 임대하고 여기에 청년공방을 유치했다. 최소한의 임대료만 받고,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했다. 청년들에겐 활동 공간이면서 관광객에게는 볼거리가 됐다.  
 
 
먹거리·볼거리 등 적당한 간격 배치가 원칙
 
명동백작의 내부. [신인섭 기자]

명동백작의 내부. [신인섭 기자]

현재 이곳엔 8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꿈을 키우고 있다. 일반 상인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2015년 말, 이 일대 400여 상인을 대표하는 업종별 협의체 회장들을 만났다. ‘볼게 뭐 있냐’는 그들에게 일단 관광객이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상인들도 조금씩 달라졌다. 때마침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열풍이 불면서 ‘우리도 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협조 약속을 받은 그는 을지유람 코스를 짜기 위해 하루에도 서너 시간 씩 골목을 누볐다. 반년 가까이 하루 4만보 이상 걷는 날들이 이어졌다. ‘공무원 같지 않은 공무원’이란 별명도 이때 얻었다. 이 주무관은 “중구의 산업과 거리를 지루하지 않게 소개하되, 먹거리와 볼거리를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한다는 게 나름의 원칙이었다”고 말했다. 힘든 순간이었지만 을지유람이 시작된 직후부터는 거리가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이제는 자기 가게 주변을 소개해 달라는 청탁 아닌 청탁을 받기도 한다.
 
도보관광코스에 참여한 시민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신인섭 기자]

도보관광코스에 참여한 시민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신인섭 기자]

한양의 사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중구 광희동 소재) 일대를 걷는 ‘광희문 달빛로드(2개 코스)’ 역시 도심 활성화란 목표 아래 짜여진 코스다. 중구청 백은정(36) 주무관이 이 코스를 빚어냈다. 올 상반기에만 3000여 명(중구청 추정치) 다녀갔다. 을지유람이 상인의 반감을 넘어야 했다면 ‘광희문 달빛로드’는 광희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해야 했다. 광희문은 원래 장례 행렬이 통과하던 문이었다. 그래서 ‘시구문(屍口門·시체가 나가는 문)’으로 더 유명했다. 이런 스토리로는 관광객들에게 다가서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백 주무관은 광희문과 관련한 스토리텔링 소재를 꾸준히 발굴했다. 광희문의 밝은 면을 알리기 위해 ‘광희문 문화마을 축제’를 2016년부터 열었다. 축제에 담을 컨텐츠 개발을 위해 역사적인 고증도 꼼꼼히 했다. 조선시대 궁중화원 유숙(1827~1873)이 광희문을 배경으로 그린 ‘대쾌도(大快圖)’를 참고해 축제 프로그램에 택견 공연을 넣었고, 벼룩시장도 열었다. ‘놀이 교육 선생님’을 초빙해 문화해설사들이 설명을 더 재미나게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방문객이 늘면서 광희문 일대가 밝아지고 있다. 한 예로 광희문과 이어진 한양도성 성곽 뒤(퇴계로 68길)의 경우 총 11채의 주택 중 5곳이 갤러리나 게스트 하우스 등으로 바뀌었다. 백 주무관은 “거리가 밝아진 덕에 주민들 먼저 보기 좋게 잘 살자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전했다.
 
 
코스 찾으려 지도 보자 “부동산 투자” 오해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올 3월 운영을 시작한 ‘남산, 기억로’는 다른 코스들과 달리 도심재생보다 역사성 복원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당초 장충단 일대의 빈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던 것을 중구청 임은영(40) 주무관이 방향을 바꿨다. 그는 남산이 일제 강점기의 아픔이 담겨있는 공간이란 점에 착안했다. 임 주무관은 “산책로에 그쳤던 남산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역사적 참상이나 재난 등을 소재로 한 여행)’의 중심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방향은 정했지만 자료를 구하기엔 만만치 않았다. 서울대 규장각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남산과 그 주변의 역사를 공부하고 코스를 만들었다. ‘남산, 기억로’는 그래서 조선신궁 터(현 안중근기념관 일대)와 통감부 터(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등 9곳을 거치도록 했다. ‘남산, 기억로’의 경우 다른 곳 보다 학생 단위 방문객이 많은 게 특징이다. 올 상반기 문화해설사와 동행한 방문객 수는 564명이었다. 개별 관람객은 이보다 10배 가량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 주무관은 “학생들이 실제로 이 길을 걸으며 조금이나마 우리의 아픈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도보관광코스가 성과를 낳고 있지만 아직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건물주나 상인 등 이해관계자의 도움이 절실하다. 특히 임대료 인상 문제는 도보관광코스 개발에 있어 피하기 힘든 난제다. ‘을지유람’을 통해 사람이 몰리자 일부 건물주들이 구청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는게 대표적이다. 프로그램 자체가 무료로 운영되다보니 문화해설사 동행을 신청해 놓고는 나타나지 않는 관광객도 많다. 지자체 내부의 이해도 필수다. 세 사람은 코스 개발을 위해 PC 등으로 지도를 보는 일이 잦다보니 구청 내외에서 “부동산 투자를 하려고 하느냐”는 핀잔을 듣는 일이 많다고 했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건물주들의 이기심이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을 초래하고 이는 도심관광이 축소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며 "이해 관계자들의 적정한 양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공회대성당·향린교회 엮은 ‘민주화 로드’등 두 곳 추가요~
서울 중구청은 이르면 올해 안에 추가로 2개의 도보관광코스를 신설하려 한다. 기존 도보관광코스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운데다, 아직도 시민들에게 소개할 만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큰 장소가 많이 남았다는 판단에서다.  
 
중구가 가장 역점을 들이는 새 코스는 ‘민주화 로드(가칭)’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서막을 알렸던 6·10 시민대회가 열린 서울주교좌대성당(성공회대성당)을 비롯해 당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설립된 향린교회 등이 중구에 있다. 여기에 독재 정권 당시 체제 수호의 첨병 역할을 하던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남산 북쪽 사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건물들은 리모델링 등을 거쳐 현재는 서울 유스호스텔과 서울시청 남산별관 등으로 쓰인다. 민주화 로드는 이들 민주화와 관련이 깊은 건물과 거리 등을 연계한 코스다. 민주화 로드 조성은 최근 취임한 서양호 중구청장의 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중구는 여기에 을지유람 제2코스를 개발하는 계획도 보탰다. 2016년 4월 시작된 을지유람이 큰 인기를 끌면서 기존 코스에 포함되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제2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중구청 실무진들은 을지로 곳곳을 누비며 코스 개발에 나섰다. 서울 중구청 이상준 공보팀장은 “을지유람 제2코스에는 국내 최대의 종합포장 인쇄타운인 을지로 5가 방산시장과, 대림상가 2층의 청년상인 점포, 을지로 노가리호프 골목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을지유람 코스의 효과를 체험한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가게 주변을 코스에 포함시켜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정도”라고 말했다.
 
새로 만들어지는 코스에는 중구의 기존 문화해설사들이 배치된다. 현재 중구에는 88명의 문화해설사가 활동 중이다. 이 팀장은 “노하우가 많은 해설사 인력풀을 활용해 시민들에게 재미난 정보를 더 효과적으로 제공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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