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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심줄 면발에 냉·온 육수, 화끈한 맛 속초 함흥냉면 … 실향민 달래준 ‘노동 음식’

중앙선데이 2018.07.21 00:02 593호 21면 지면보기
 박찬일의 음식만행(飮食萬行) 속초 함흥냉면  
강원도 속초 '함흥냉면옥'의 함흥냉면. 원 냉면에 찬 육수를 넣은 물냉면처럼 먹는다. 김경빈 기자

강원도 속초 '함흥냉면옥'의 함흥냉면. 원 냉면에 찬 육수를 넣은 물냉면처럼 먹는다. 김경빈 기자

평양냉면 붐이 서울을 휩쓸고 있다. 두어 해 전부터의 일이다. 남북정상회담 바람을 타고 더 유명해졌다. 매년 여름 장사진을 이루는 장안의 냉면집은 아예 인산인해다. 한 가지 의문. 냉면 하면 평양과 함흥이 아닌가. 함흥냉면은 취재 안 해줍니까. 서울 오장동의 함흥냉면 집보다 더 오래된 집이 속초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냉큼 달려갔다.  
 

67년 이어온 속초시 ‘함흥냉면옥’
오장동보다 이른 ‘농마국수’ 원조

가자미 대신 명태 얹은 냉면 개발
평양냉면처럼 남한 음식으로 정착

가위로 잘라도, 맘대로 양념 쳐도
면스플레인 없는 어부들의 해장식

강원도 속초시 원도심에 있는 ‘함흥냉면옥’. 지역 언론인 엄경선(52·설악닷컴 대표)씨를 만났다. 그는 이 집의 역사를 기록한 『속초음식생활사』의 저자다. 
 
“1951년이 이 집의 시작입니다. 7번 국도변에 움막을 짓고 탁자를 놓아 냉면을 뽑았더랬죠.“ 
 
속초 '함흥냉면옥'의 창업주 고 이섭봉씨 사진. 자전거를 타고 냉면을 배달하는 장면이다. 김경빈 기자

속초 '함흥냉면옥'의 창업주 고 이섭봉씨 사진. 자전거를 타고 냉면을 배달하는 장면이다. 김경빈 기자

고(故) 이섭봉(1919~92)씨가 주인공이다. 함흥의 유명한 체육인이면서 회사원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최고 직장이었을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에 다녔다. 이씨는 1·4 후퇴로 부산까지 내려왔다가 고향이 가까운 속초에 정착해 냉면집 주인이 됐다. 오장동의 냉면집들이 1952, 53년에 시작했으니 이 집이 1년 이른 셈이다. 사이클 선수 경력을 살려 배달도 도맡았다. 그가 건장한 몸으로 자전거를 끌고, 육수 주전자와 냉면 사발을 담은 목판을 한손에 들고 배달하는 사진이 남아 있다. 당시 배달 시스템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속초 '함흥냉면옥'의 함흥냉면과 육수, 그리고 명태 회 고명.육수를 부은 물냉면의 모습이다. 김경빈 기자

속초 '함흥냉면옥'의 함흥냉면과 육수, 그리고 명태 회 고명.육수를 부은 물냉면의 모습이다. 김경빈 기자

 
함흥냉면옥은 몇 번 부침을 거듭하다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여름에는 400∼500그릇이 거뜬할 정도로 영업이 잘된다. 이른바 원조다. 특히 명태를 얹은 냉면은 80년대 이 집에서 개발됐다. 함흥냉면은 본디 함흥 것이지만, 남한에서 새 음식이 되었다. 당대 옥류관과 서울 냉면집의 차이처럼.
 
함흥냉면은 본래 ‘농마국수’라고 불렀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그렇게 일컫는다. 남한에서 평양냉면이 유명해지자 함흥식 국수도 ‘냉면’의 관(冠)을 쓰게 된다. 
 
“속초는 냉면의 메카입니다. 강원도인데도 막국수보다 함흥식 냉면이 대세예요. 인구는 많지 않은데 냉면집만 쉰 곳이 넘어요.” 
 
엄씨는 대학 시절, 고향 속초에 놀러 온 동급생에게 냉면을 대접했다. 속초사람에게 최고의 외식이 냉면이었으니까. 속초는 1963년 시가 되었지만, 전에는 아주 한적한 어항이었다. 명태잡이가 활발해지면서 규모가 커졌고, 실향민이 몰려오면서 시끌벅적한 도시가 되었다. 실향민은 한때 속초 인구의 70%나 차지했다. 
 
“땅은 나눠서 경작해 먹자면 몫이 줄어 외부 인구 유입에 배타적입니다. 바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배는 많고, 누구나 어부가 될 수 있었지요. 실향민이 먹고살 수 있는 구조였어요.” 
 
한때 아는 사람만 알던 속초시 청호동의 아바이마을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함흥냉면은 서울식과 속초식으로 나눠도 무리가 없다. 서울식이 과거부터 홍어·가오리 등을 얹어내는 것으로 유지되는 반면 속초식은 변동이 심했다. 
 
“원래는 가자미를 썼어요. 참가자미도 잘 안 잡히고 비싸지니까 뱃사람한테서 짝으로 물까재미(물가자미)를 사서 만들었어요. 갑빠(천막천)를 펼치고 좍 까재미를 부립니다. 밀대로 밀어서 진액을 빼서 씻고 포 뜨고 뼈째 썰고 그랬지요. 소금 간하고 식초 넣어서 하루 절여 짜고 시그렁기(신맛) 빼서 양념해서 만들어 썼어요. 전국의 코다리 넣는 속초 냉면이란 건 아마도 다 우리 집에서 퍼져나간 기술일 겁니다.” 
 
상어와 쥐치도 써봤다. 가자미 대용으로 여러 생선을 테스트하다가 마지막으로 결정된 것이 명태다. 엄밀히 하면 동태다. 80년대 초의 일인데, 우연히 동태를 썼더니 가자미 못지않은 맛이 나오더란다. 값도 좋았다. 싸고 푸짐한 함흥냉면을 유지하는 데 적절한 재료였다. 
속초 '함흥냉면옥'의 이문규 사장. 부친 고 이섭봉씨에 이어 함흥냉면 집을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속초 '함흥냉면옥'의 이문규 사장. 부친 고 이섭봉씨에 이어 함흥냉면 집을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냉면이 마침 나왔다. 가위도 딸려 나온다. 면발이 보통 질기지 않다. 고구마 전분을 쓰고 익반죽해서 삶는다. 이문규(48) 사장의 손바닥이 붉은 것이 그 이유다. 뜨거운 반죽을 만져서다. 그는 부친이 별세한 뒤 가게에 들어와 스무 서너 해째 온전히 일하고 있다. 배달부터 시작해 지금은 주방장을 맡고 있다. 이 집 음식이 듬직한 이유다. 
냉면은 원래 배달음식이었다. 속초 ‘함흥냉면옥’은 아직도 냉면을 배달한다. 김경빈 기자

냉면은 원래 배달음식이었다. 속초 ‘함흥냉면옥’은 아직도 냉면을 배달한다. 김경빈 기자

 
그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냉면 다섯 그릇 배달 주문이다. 왕년에 대한민국 냉면집의 대부분이 그랬듯이 냉면은 유명한 배달음식이었다. 그 흔적이 이 집에 남아 있어 신기했다. 서울 어디서 정통이라고 하는 냉면집에 배달이 남아 있나. 
 
속초 '함흥냉면옥'에서 나오는 육수. 뜨거운 육수와 차가운 간장 육수 두 가지가 나온다. 냉면에 찬 육수를 말아서 먹은 뒤 뜨거운 육수로 행궈 마신다. 김경빈 기자

속초 '함흥냉면옥'에서 나오는 육수. 뜨거운 육수와 차가운 간장 육수 두 가지가 나온다. 냉면에 찬 육수를 말아서 먹은 뒤 뜨거운 육수로 행궈 마신다. 김경빈 기자

속초식 냉면은 먹는 방식이 아주 특이하다. 서울식 냉면은 양념이나 조금 더 하는 게 보통인데, 속초식 냉면은 상당히 복잡하다. 우선 뜨거운 육수다. ‘장국’이라고도 부른다. 소 사골과 고기를 삶은 국물을 노란 양은주전자에 담아 같이 내온다. 먼저 이 뜨거운 육수를 한잔해도 되고 나중에 마셔도 된다. 나중에 먹는 이유가 있다.
 
“워낙 매운 냉면이라 속이 아립니다. 육수를 마셔줘야 속이 좀 편안해지지요.” 
 
냉면을 맛있게 먹는 법이라고 벽에 써 붙여놓은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육수를 드셔서 속을 푼다. 식초·겨자·설탕·양념다지기장을 넣는다. 면을 섞을 때 계란노른자를 잘게 빻아 같이 섞어야 면발이 부드러워진다. 냉면을 다 드신 뒤 빈 그릇에 뜨거운 육수를 부어서 마시면 마무리된다.” 
 
이게 다가 아니다. 각종 양념을 넣은 후 차가운 갈색 간장 육수를 잔뜩 부어 먹는다. 막국수에 육수 붓는 식으로 적당히 하거나, 아예 그릇에 찰랑찰랑할 때까지 부어 먹는 이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다 먹고 난 후 뜨거운 육수로 헹궈 마시기다. 이런 방법은 일본 모리오카(盛岡)에서 일본인이 자장면을 먹는 방식과 흡사하다. 면을 다 먹고 난 뒤 날달걀을 깨어 넣고 닭 육수를 부어 계란탕을 만들어 마신다. 우연한 일이지만, 배고픈 시절 알뜰하게 음식을 먹는 방법으로 닮아있다. 
 
찬 육수를 넣은 '함흥냉면옥'의 함흥냉면. 비빔냉면보다는 물냉면에 가깝다. 김경빈 기자

찬 육수를 넣은 '함흥냉면옥'의 함흥냉면. 비빔냉면보다는 물냉면에 가깝다. 김경빈 기자

과연 속초식으로 냉면을 먹고 나니 배가 엄청나게 부르고 매운 기운이 온 내장에 스며든다. 배운 대로 양념을 배합하고 덥고 차가운 두 가지 육수를 섞어서 먹다 보니 ‘버라이어티’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원조집이 특별한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다는 것도 속초 냉면의 특징이다. 매해 냉면집이 사라지고 새로 생긴다. 속초의 냉면집을 엄씨가 줄줄 읊는다. 
 
“단천식당, 단천면옥, 미리내냉면, 청호면옥, 장수면옥, 능라도냉면, 낙천회관, 강원면옥, 온달면옥, 의령식당, 원산면옥, 고려면옥, 대포면옥….”
 
인구당 냉면집이 제일 많다는 속초답다. 동석한 지역의 양조장 대표 오성택씨(49)는 속초 냉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단다. 
 
“일종의 노동 음식이에요, 뱃사람이 고기 내리고 어구 정리하고 해장해야 하잖아요. 부둣가에서 시내가 가까워요. 냉면 한 그릇 시켜서 맵고 뜨겁게 해장을 하는 겁니다. 다른 동네가 생선탕이면 여기는 냉면이 그 몫을 한 거예요. 아주 특이한 거죠. 냉면 해장이라….” 
 
속초말은 같은 강원도에서도 독자적이다. 거진·고성과 함께 이북 함경도 말에 가까운 어조를 가진다. 속초사람은 강릉보다 옛날부터 함경남도 원산으로 유학이나 시집도 더 많이 갔다고 한다. 서울을 가자면, 강릉 대신 원산으로 가서 경원선을 탔다. 양양∼원산을 잇는 2급 도로가 개설된 것도 일찍이 일제강점기였다. 
 
속초 냉면의 맵고 뜨거운 것은 어쩌면 속초를 이루었던 옛 함경도 사람의 성정 같은 것이었을까. 고향 갈 기회는 막막하고, 노동은 거칠고, 그렇게 후끈한 냉면으로 풀어본 것이었을까. 쇠심줄보다 질기다는 면발은 그들의 생활력을 보여주는 것이었을까. 
 
북한에서 만든 조리법 책을 보니 당대 북한 함흥의 냉면은 물냉면과 온화한(?) 비빔냉면 두 가지가 있다. 역시 속초는 독자적인 냉면을 먹고 있는 셈이다. 속초 인구는 이제 실향민 세대가 저물고 다른 남한 지역의 이주민이 주류를 이뤄가고 있다. 그래도 쇠심줄 같은 속초 함흥냉면은 남아 있겠지.
 
박찬일 chanilpark@naver.com   
글 잘 쓰는 요리사. ‘로칸다 몽로’ ‘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음식 관련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본인은 ‘한국 식재료로 서양요리 만드는 붐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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