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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고마워" 감춰 뒀던 ‘그 한마디’ 꺼낼 시간

중앙일보 2018.07.20 07:01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27)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개그맨 이영자씨가 진행을 맡은 고민 상담 프로그램의 방송을 보았습니다. 엄한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고민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고민이 많은 자녀에 비해 아버지의 입장은 아주 달랐습니다. 훈육 또한 관심이 있으니 그런 것이고 그 또한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아버지에게 이영자씨는 확실한 목소리로 얘기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표현은 정확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이죠. 그리고 아버지가 그러지 못한다면 어머니라도 그것이 사랑임을 인지할 수 있게 아버지의 말을 자녀들에게 번역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민 내용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영자씨는 5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내용의 표현을 들은 적이 없었답니다. 그 말을 하는 이영자씨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차오릅니다. 아쉽게도 어머니 또한 듣고 싶었던 그 말을 전해주지 않으셨답니다. 그래서 이영자씨의 자매들은 부모에게 받지 못한 부족한 사랑을 채우느라 서로가 더 똘똘 뭉치게 되었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프로그램 속 고민상담녀의 아버지도, 이영자씨의 아버지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부모님은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표현 방식이 달라도 많이 달라 그 마음이 채 전달되지 않은 탓이겠지요.
 
표현 방식이 다르면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크다. 하지만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건 어색하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이런 무뚝뚝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당시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은 그저 TV 앞에 앉았을 때 뿐. 이때도 대화는 없었다.   [사진제공='응답하라 1988' 영상 캡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크다. 하지만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건 어색하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이런 무뚝뚝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당시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은 그저 TV 앞에 앉았을 때 뿐. 이때도 대화는 없었다. [사진제공='응답하라 1988' 영상 캡처]

 
자연스레 제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아버지 세대의 많은 분이 그러하듯 역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나는 사랑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분이십니다.
 
결혼하기 전이었던 어느 날, 진행하고 있던 방송에 도착한 사연을 읽어 내려가는데 그 사연 속 얘기처럼 저도 아버지의 손을 잡아본 기억이 없는 겁니다. 그 후로도 결혼식 날 남편에게 제 손을 건네주던 아버지의 손길 외에는 딱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나도 나이가 들어 버린 지금, 큰일도 아닌 아버지의 손을 잡는 일은 여전히 참 어색합니다. 때로 사랑의 표현은 용기 내지 않으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됩니다.
 
부모, 자식뿐 아니라 부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맺어진 부부 사이라 해도 누군가는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의 표현일 수 있고, 누군가는 말로 자주 표현해주는 것을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나와 상대의 언어가 다를 때는 번역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번역의 과정 없이 긴 시간 익숙해져 온, 상대방은 알아채지 못하는 나만의 사랑의 표현을 고집하고 있진 않은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 지내온 많은 부부는 “우리 사이에 무슨~~!!” 이라던가 "굳이 뭘 그런 걸 말로 해?”라는 말로 사랑 표현의 어색함을 무마합니다.
 
나와 상대의 '언어'가 다르면 '번역'과정이 필요
배우자의 사소한 배려에도 고마움을 표현하면 긍정적인 마음이 생길 확률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10배나 더 증가한다. [사진 freepik]

배우자의 사소한 배려에도 고마움을 표현하면 긍정적인 마음이 생길 확률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10배나 더 증가한다. [사진 freepik]

 
부부 사이 꼭 필요한 또 다른 사랑의 언어인 ‘고마움’의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진이 65쌍의 부부를 관찰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고마움을 얼마나 솔직하게 표현하는지가 부부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배우자의 사소한 배려에도 고마움을 표현하게 되면 긍정적인 마음이 생길 확률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10배나 더 증가했습니다.
 
저는 사랑의 표현을 많이 하고 또 많이 듣고 싶어하는 쪽입니다. 부부 사이가 늘 알콩달콩 좋을 수는 없겠지만 웬만하면 많이 표현하려 노력합니다. “당신이랑 결혼한 건 참 행운인 것 같아.” 같은 말로 함께해주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곤 합니다.
 
반면 남편은 밖으로 드러내는 표현이 익숙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서로 간의 인식 차이가 있으니 '제 입장에서'라는 말이 붙어야 할 것 같습니다.
 
결혼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남편도 종종 얘기해주곤 합니다. “오늘도 정말 고생 많았어”라든가 “당신은 참 대단한 것 같아”라고 말해주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노력해 주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속으로만 오래 감추어 두었던 표현 하나. 이제는 꺼내도 좋을 시간입니다.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대표 voivod70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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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 박혜은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필진

[박혜은의 님과 남] 은퇴 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집에서 자주 함께할 상대는 누구인가요? 그 상대와의 관계는 지금 안녕하신가요? 가장 가까운 듯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 멀어졌을지 모를 나의 남편, 나의 아내와 관계 향상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강의와 코칭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닿을 듯 닿지 않는 서로의 심리적 거리의 간격을 좁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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