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소문 포럼] 혁신성장이 왜 안 되는지 정말 모르나

중앙일보 2018.07.20 01:19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 때가 기업하기 참 좋았다. 첫째, 기업에 돈 달라고 손 벌리지 않았다. 둘째, 투자하겠다면 막힌 곳을 열심히 뚫어줬다.”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했던 말이다. 비슷한 얘기를 하는 기업인이 적지 않다.  
 

경제는 심리인데 기업가 정신 죽이는 자책골 속출
기업의 ‘야수적 본능’ 북돋워야 일자리 많이 생겨

그런데 ‘노무현 정신’을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기업하기 힘들다”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의 몫인) 혁신성장이 왜 안되는지 답답하다”고 말한다. 뭔가 잔뜩 꼬여있다.
 
혁신성장이란 게 뭔가. 기업의 신기술 투자와 벤처·창업 등을 통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도모한다는 정책 방향이다. 사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은 혁신적일 수밖에 없다. 혁신 없이 현실에 안주했다가는 결국 죽는다.
 
혁신성장이 잘 되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업이 돈을 벌고자 하는 탐욕, 그 ‘야수적 본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면 된다. 물론 그 멍석 위에서 힘의 논리를 앞세운 불공정거래나 갑질이 일어나지 않도록 게임의 룰을 잘 갖추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노무현 정부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과 파주 LG디스플레이 단지 조성,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 등은 혁신성장의 좋은 사례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여러모로 비슷하다. 하지만 기업과 시장을 향한 인식과 소통 방식은 달라 보인다.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진보적 정책을 쓰면서도 기업과 대화하며 시장을 키우려 노력했다. 또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자제했다. 노 대통령은 경제정책을 놓고 관료와 운동권 출신 간에 끊임없이 논쟁을 붙이며 나름의 로직을 만들어갔다. 한·미 FTA 등 운동권에서 반대하는 정책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에 비해 문 정부의 운동권 출신 실세들은 ‘타협 없는 개혁’을 밀고 나간다. 관료와 기업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참여정부의 개혁이 실패했다는 판단에서다. 그 결과 우리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약자들이 더욱 살기 힘든 세상이 됐다고 본다.
 
문 정부의 주요 정책에서 관료패싱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혁신성장 정책을 이끄는 것으로 돼 있지만, 기업과 시장의 생각은 다르다. 세금을 잘 걷고 예산을 확대 편성하는 게 그의 주된 역할이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의 장관이 기업인과 자주 만나고는 있다. 하지만 기업인들은 “아무리 말해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벽창호와 대화한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직간접으로 청와대 실세들의 생각을 접한 기업인들은 “답답함을 넘어 절망스럽다”고 말한다. 재벌을 필두로 한 대기업의 착취구조 때문에 경제가 계속 어려워진다는 게 기본 인식이라고 한다. 문 정부에서 사회의 갈등을 중재·조절하기보다는 노동계의 주장에 일방적으로 호응하는 정책이 잇따르는 배경으로 풀이된다.
 
대한항공 갑질사건에서 보듯 재벌개혁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재벌과 대기업을 ‘악의 축’인 양 몰아가서는 곤란하다. 요즘 기업인들을 만나면 대기업·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국세청이나 공정위, 검찰·경찰 등의 조사·수사를 받고 있다고 털어놓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사소한 민원이나 엉뚱한 제보에도 관계 기관에서 들이닥치기 일쑤라고 한다.
 
뭔가 기획된 의도가 깔려있는 건 아닌지, 우발적인 충성 경쟁인지 알 순 없다. 물론 청와대는 ‘의도된 기업 옥죄기는 있을 수 없다’고 항변할 것이다. 하지만 당하는 쪽에서 그렇게 받아들이고 실제 국내에 투자할 의욕을 상실한다면 집권 세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세계 주요국들은 지금 치열한 혁신성장 경쟁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만 자중지란이다. 그 영향으로 심해진 게 일자리 절벽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게 아니다. 모든 경제 주체가 손을 잡고 힘을 모을 수 있게 하는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