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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한국인의 잦은 눈물, 통치 전략의 결과였네"

중앙일보 2018.07.19 10:12
 
대통령과 젱치인의 눈물. 권력자의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 정치적 맥락에서 읽힐 수밖에 없다. 문화연구가 이호걸씨는 새 책 『눈물과 정치』에서 한국인이 유독 많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정치와 연관지어, 정치가 그런 개인을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포토]

대통령과 젱치인의 눈물. 권력자의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 정치적 맥락에서 읽힐 수밖에 없다. 문화연구가 이호걸씨는 새 책 『눈물과 정치』에서 한국인이 유독 많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정치와 연관지어, 정치가 그런 개인을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포토]

눈물과 정치 
이호걸 지음, 따비 
 
박상수 시인·문학평론가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수련회를 간 적이 있다. 수련원은 유사병영이나 다름없었다. 힘든 일정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날 캠프파이어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감상적이고 구슬픈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상한 건 일정 내내 해병대 모자를 쓰고 그렇게 무서웠던 수련원 선생님이 나긋하고 서정적인 목소리로 ‘엄마’를 외치도록 분위기를 잡았을 때,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기는 하였지만 주변 모든 아이들(남고였으니 모두 남자들)이 울고 있으니 나 또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렇게 엄마를 부르며 울고 나니 어쩐지 친구들과 조금 더 끈끈해진 것도 같고, 지난 며칠의 고된 일정이 용서도 되고, 또 집에 가서 엄마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야 인식하게 된 것이지만 그때 눈물은 군대와 학교를 가족주의 안에서 봉합하는 효과적인 배치의 기술이었다.    
 
 
 ‘눈물’도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아리랑〉에서 〈하얀 거탑〉까지, 대중문화로 탐구하는 감정의 한국학’이라는 부제를 단 책 『눈물과 정치』는 영화를 중심으로 소설, 드라마, 수기, 대중가요, 풍속과 정치적 사건을 능숙하게 넘나들며 이에 대한 매우 성실하고 흥미로운 대답을 선보이는 책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왜 그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물이 많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고난의 근현대사이기 때문이면서 정치가 그런 개인을 만들어낸 면도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설명이다.  
 
 신파(新派)적 대중 서사물로 알려진 『장한몽』이 있다. 우리에게는 '이수일과 심순애'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작품은 돈에 치이고 사랑에 속아 눈물을 쏟아내는 단순 애정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장한몽』(…) 여기에는 자유주의적 개인의 두 가지 주요한 과제가 동시에 걸려 있다. 하나는 친밀성의 사적 영역으로서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에서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다.”(270쪽) 즉 조선의 봉건제 전통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사회 전 부문을 재구성하는 주된 동력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자유주의’였다.  
 
 신분질서에서 놓여난 개인에게 세계는 경쟁과 적자생존의 투쟁지가 된다. 게다가 식민지 조선이라는 특수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는 바로 ‘가부장제적 가족’이었다. “가족의 위기와 그것의 극복을 위한 실천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 결과 신파가 형성”(64·65쪽)됐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가부장제의 성정치가 가동되는데 저자에 따르면 수일은 집 밖에서 뭔가 열심히 하면서 울고, 순애는 집 안에서 꿋꿋이 참고 기다리며 운다.  
 
 1부에서 눈물의 역사를 폭넓게 관통하던 저자는 2부로 넘어가면서 민족주의, 파시즘,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정치 이념이 어떻게 눈물을 증폭하여 이끌어내고 그것을 매개로 개인과 접속하는지 다양하게 펼쳐놓는다. 이 책의 참신함과 매력은 2부에서 구체성을 얻는다. 민주주의의 억압으로 인한 고통의 눈물은 분단된 약소국의 민족적 눈물과 만난다. 가족의 은유를 국가 통치에 깊숙이 끌어들인 박정희 정권은 가장 효과적인 지지기반으로 대중의 눈물을 활용한다.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정치적 관계를 가족적으로 규정하여 “‘생명의 은인’인 수령에게 ‘효도’해야 했고, 수령은 어버이로서 인덕을 베풀어야 했다”(231쪽)고 설명하는 대목, 게다가 학생운동의 NL 진영 역시 민중의 아픔을 가족처럼 느끼는 ‘어머니다운 품성’을 요청받았다는 데에까지 읽다보면 표면적 양상은 서로 다르지만 ‘가족적 눈물’이 어떻게 우리 역사의 심층에서 끈질기게 정치화되어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눈물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점이다. 개인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눈물은 세계에 굴복한 증거가 아니라 생존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며 능동적인 참여의 측면도 있다. 저자는 책이 진행되는 내내 눈물의 역능(力能)과 탈주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이 대목은 기만적 환영인 동시에 전복성을 내포한, 영화라는 대중문화를 연구하면서 저자가 견지하는 인상적인 태도로 보인다.  
 
박상수.

박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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