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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노동자만 국민인가

중앙일보 2018.07.19 01:4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자영업자들의 집단행동에 정부·여당이 뜨끔하긴 한 모양이다. 당장 가맹 본사 조사에 나서고 신용카드 수수료와 임대료를 낮추는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여당 대표는 “최저임금보다 임대료와 가맹 본사의 갑질이 더 문제”라고 열변을 토했다.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 을과 을의 투쟁으로 번진 최저임금 이슈를 자영업자와 건물주·대기업의 갑을 갈등으로 바꾸고 싶다는 의지가 읽힌다. 단골 처방인 세금 풀기도 다시 등장했다. 근로장려세제(EITC)와 일자리안정기금 증액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부·여당의 생각과 대책이 고작 이 정도라면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자영업자들이 뿔난 진짜 이유를 모른다는 얘기다.
 

영세 자영업자 몰락 땐
소득주도 성장 불가능

한국의 자영업은 세계 최악이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용인구의 25.5%(무급 가족종사자 포함)가 자영업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8%)보다 훨씬 높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음식점은 특히 더하다. 인구 1000명당 음식점 수가 미국은 0.6개인데 한국은 10.8개다. 하나만 있어도 될 음식점이 서넛, 심지어 10곳 넘게 몰려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운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장사도 안 된다.
 
그러니 형편이 말이 아니다. 자영업자 가구 소득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월 300만원 안팎이다. 반면 비슷했던 근로자 가구 소득은 올 1분기 월 558만4000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빚은 더 많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가구당 빚은 1억1300만원(2016년 기준)으로 상용 근로자 가구(7700만원)의 1.5배였다. 벌이는 적고 빚이 많으면 결론은 하나다. 망한다. 자영업의 3년 후 생존율은 37%다. 3명 중 2명이 돈 잃고 몸 상하는 것이다.
 
이런 고통은 주로 350만 명의 영세 자영업자, 흔히 소상공인(업종별로 직원 5~10명 미만)이라 불리는 이들의 몫이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올 1분기 영세 자영업자(하위 50%)의 월 소득은 241만원으로 지난해보다(243만원) 1% 줄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했던 바로 그 자리에 350만 영세 자영업자가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은 그야말로 배부른 소리다. “내 월급 빼서 알바생 주자는 거냐” “근로자만 국민이냐”부터 “최저임금은 자영업자 구조조정용”이란 소리까지 나오는 이유다.
 
자영업의 몰락은 소득주도 성장에도 직격탄이다. 최저임금이 올라 가게 문을 닫으면 영세 자영업자와 취업자 모두 소득이 사라진다. 한화투자증권은 16일 ‘가계소득이 늘어나지 못한 진짜 이유’로 ‘자영업의 쇠퇴’를 꼽았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60세 정년 연장으로 늦춰졌던 베이비부머(1958~63년생)의 퇴직이 본격화한다. 올해 58년생 73만 명, 내년 59년생 74만 명이 쏟아진다. 가진 재주, 기술 없는 상당수가 또 자영업으로 내몰릴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은커녕 소득 쇠퇴의 불길한 전주곡이 울리고 있다.
 
해답은 누구나 안다. 일자리다. 일자리를 어떻게 늘리는지도 누구나 안다. 기업을 뛰게 하면 된다. 기업은 기가 살아야 뛴다. 대통령이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말이 아니라 진짜 기업을 ‘업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당 원내대표가 “삼성의 성공은 협력업체를 쥐어짠 결과”라고 말할 때 가만있을 게 아니라 “경을 칠 소리”라며 말려주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기업에 특혜’라며 규제 철폐를 반대하는 여당과 청와대 강골들을 ‘그러지 말라’고 다독이면 진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은 하지 않고 정부·여당이 허구한 날 기업을 조이고 비틀고 혼내주기 급급하니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아직도 모른다면 삼류 좌파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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