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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2년 기금본부장 단기 이익에 급급 … 연금은 장기 투자가 필수”

중앙일보 2018.07.19 00:55 종합 8면 지면보기
“주위 분들에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한번 해 보시라’고 권하면 ‘현직에 잘 있는데 왜 하겠느냐. 갈 데 없어지면 그때나 생각해 보겠다’고들 합니다.”
 

기금 운용직 퇴직자들의 쓴소리
“낙하산 본부장들 보은 투자해 문제
수익 높인 운용자 인센티브 줘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운용직으로 일했던 A씨의 말이다. 본지가 접촉한 국민연금 출신 민간 자산운용업계 종사자들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애정과 책임감을 갖고 일하다 좌절한 경우가 많아서인지 기금운용본부가 역량만큼의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이유를 줄줄이 쏟아냈다. 이들이 먼저 지적하는 건 현 시스템하에서 장기 수익률을 제대로 관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A씨는 “짧은 CIO 임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임기가 기본 2년에 1년 연장이 가능한 수준이고, 임기를 마치면 3년간 관련 업종 취직이 안 되니 국민연금 CIO는 사실상 커리어의 끝”이라며 “연금은 장기 투자를 해야 하는데 CIO가 1년이라도 더 일하려면 성과가 있어야 하니 단기 이익을 목표로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요 보직 공백도 국민연금 장기 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국민연금은 지난 5월 ‘2019~2023년 자산배분안’을 발표하면서 중장기적으로 해외주식·채권 및 대체투자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투자 판단을 해야 할 핵심 운용역들이 빠져나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비중은 2016년 11.4%에서 지난해 10.8%로 오히려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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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헤지펀드·부동산투자·원자재투자 등의 대체 투자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주식이나 채권과 달리 개별 운용역의 역량과 고참 간부들의 판단이 필수적인 영역이다. 기금운용본부에서 일하다 사직한 B씨는 “현재 채권실장이 주식실장을 겸직하고 있고, 해외대체실장 대행 체제도 1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선배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후배들한테 제대로 전파되지 않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장기적인 전략에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치적 보은’ 투자도 수익률 제고의 적이다. C씨는 “정치권의 신세를 지고 오는 CIO들은 보은을 해야 한다. 이들이 외부의 청을 하나하나 들어주다 보면 포트폴리오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 전체 조직과 기금운용본부 간 이질감이 운용직에 부담이 된다는 말도 나왔다. D씨는 “공단에서 운용직을 지원해 준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오히려 불이익을 더 많이 줬다”며 “기금운용본부에서는 공단으로부터 경고장을 많이 받을수록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는 자조적 인식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민간 운용업계에서도 이런 상황을 우려한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국민연금 CIO 임기가 5~10년이면 장기적인 전략을 세울 텐데, 그렇지 않으니 기존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금액만 늘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위탁 운용사들도 국민연금이 설정한 기준들과 비슷하게 수익률이 나오도록 소극적인 ‘패시브 투자’만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연금 운용자들에게 충분한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운용직이 연 1%포인트 정도만 수익률을 높여도 엄청나게 잘한 것이다. 500조원의 1%는 5조원에 이른다. 이 정도 성과를 내면 CIO와 운용자들에게 최소한 50억원은 성과급으로 지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운용사의 펀드매니저는 “국민연금 운용자들이 운용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명감을 갖고 연금 운용 같은 큰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운용 인력들이 책임 추궁을 당하는 걸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며 “투자 결정이 정치·사회적 논란으로 비화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와 정부 차원에서 시스템을 개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정종훈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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