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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아빠가 아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앙일보 2018.07.18 07:01 종합 20면 지면보기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13)
프랑스는 오래된 석조 건물이 많다. 이곳도 오래된 성당 옆에 현대식 건물을 지어 지하로 연결한 통로이다. 본 건물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둥근 계단의 곡선과 바닥의 무늬가 사진을 찍는 여인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나를 향해 사진을 찍는 모습을 역으로 잡아 보았다. 누군가도 나를 이렇게 살펴볼 것이다. [사진 윤경재]

프랑스는 오래된 석조 건물이 많다. 이곳도 오래된 성당 옆에 현대식 건물을 지어 지하로 연결한 통로이다. 본 건물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둥근 계단의 곡선과 바닥의 무늬가 사진을 찍는 여인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나를 향해 사진을 찍는 모습을 역으로 잡아 보았다. 누군가도 나를 이렇게 살펴볼 것이다. [사진 윤경재]

 
어떤 삽화 (프랑스 여행)
 
카메라를 메고 다닐 때
나는 천수답이 되는 거였다
 
빛이 비처럼 쏟아져도
나의 감광지는
찰나를 한 줌 받아들일 뿐
더 움켜쥐려 할수록 하얘졌다
 
그와 나 사이의 구도에서
없는 걸 꾸며 넣는 게 아니라
허기가 져도
사진의 바깥으로
아쉬움을 덜어내어야만 했다
마침 그때 그곳에 자리 잡았을 따름
 
돌아와 초록빛 여행을 정리하면서
겨우 한두 삽화만 건지고도
그때의 향기와 마음과 차마 이별하지 못해
두 번째 방에다 몰아넣지 않는가
언젠가 꺼내 볼 요량으로
 
빛의 진심은 다 보여주는 데 있지 않고
한 꺼풀 감추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해설] 눈 내리는 날, 아빠가 아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프랑스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한다는 관광도시인 안시이다.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 잡아 알프스 빙하가 녹은 물이 커다란 호수를 이루어 사시사철 옥빛 물이 넘치는 곳이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노천카페에 손님이 없다. 녹색과 밝은 적색의 보색 대비가 청명하고 푸른 하늘과 어울린다. 마침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관광객의 손과 돌다리가 생동감을 더한다. [사진 윤경재]

프랑스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한다는 관광도시인 안시이다.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 잡아 알프스 빙하가 녹은 물이 커다란 호수를 이루어 사시사철 옥빛 물이 넘치는 곳이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노천카페에 손님이 없다. 녹색과 밝은 적색의 보색 대비가 청명하고 푸른 하늘과 어울린다. 마침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관광객의 손과 돌다리가 생동감을 더한다. [사진 윤경재]

 
어느 눈 내리는 날 저녁에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학교운동장에 눈 구경하러 나갔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운동장을 아빠와 나오니 어린 아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두 사람은 흰 눈 위에 자기가 남긴 발자국을 보면서 운동장을 커다란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집도 배도 그렸다. 사과도 엄마 얼굴도 그렸다. 눈 위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이런 제안을 했다. 이 운동장에 곧고 바른 직선을 누가 더 잘 그리는지 내기할까? 어린 아들은 자신 있다며 흔쾌히 수락했다.
 
아이는 곧은 선을 그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잠시 생각하더니 곧바로 조그마한 발을 포개기로 했다. 왼발 끝에 오른발 뿌리를 갖다 대면서 걸었다. 그러느냐 머리를 숙이고 흰 눈이 내린 운동장을 내려다보면서 걸었다. 아주 열심히 걸었다. 눈이 내리는 날씨에도 등에서 땀방울이 촉촉이 배어나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아빠와 아이는 이쪽 구석에서 운동장 저쪽으로 도착했다. 아이는 자신 있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아이는 깜짝 놀랐다. 자기의  발자국은 삐뚤빼뚤 한데 아빠 발자국은 아주 곧게 직선으로 뻗어나 있었다. 실망하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빠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말이야, 먼저 저쪽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목표를 정했단다. 그리고 그 중간에도 작은 목표점을 몇 군데 마음속에 그렸지. 그러고 나서는 웬만한 것들은 무시하고 걸었단다. 그런데 너는 어땠니? 네 왼발과 오른발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지 집중하다보니 네 눈을 흰 눈밭에서 떼지 못했지. 목표를 확인하는 것은 다 잊어버린 채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몰랐던 거야. 이제 알겠지?”  
 
야경사진은 중부 프랑스 리용 근처의 아주 작은 시골마을인 파르 모니알. 인구가 몇 천 정도밖에 안 되는 마을이지만, 오래된 수도원을 관광자원으로 꾸미기 위해 온 마을을 멋진 조명으로 장식하였다. 주민들이 잠자는데 눈이 부시지 않게 적당한 조도와 간접조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마을 어디에다 렌즈를 대어도 멋진 사진이 나왔다. [사진 윤경재]

야경사진은 중부 프랑스 리용 근처의 아주 작은 시골마을인 파르 모니알. 인구가 몇 천 정도밖에 안 되는 마을이지만, 오래된 수도원을 관광자원으로 꾸미기 위해 온 마을을 멋진 조명으로 장식하였다. 주민들이 잠자는데 눈이 부시지 않게 적당한 조도와 간접조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마을 어디에다 렌즈를 대어도 멋진 사진이 나왔다. [사진 윤경재]

 
내기에 져서 풀이 죽은듯했던 아이가 아빠 말을 듣고 무엇인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이 아빠는 전혀 의기양양하지 않았다. 한마디 덧붙이고 싶었다.    
 
“그런데 말이야. 아들아! 다시 한 번 네 발자국을 돌아봐라. 네 발자국은 뚜렷하게 찍혔지. 눈발이 흩날리지만, 아직도 발자국이 남아 있지. 그에 비해서 아빠 발자국은 어떠냐? 듬성듬성하고 흐릿해서 벌써 안보이기 시작하지? 아마 뒤 따라오는 사람이 있다면 아빠 발자국보다 네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마찬가지란다. 무엇인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어. 또 막상 잃은 것 같아도 다른 면에서 도움이 되기도 하는 거란다. 무조건 실망하긴 이르지.”    
 
아이는 머리를 들어 아빠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 미소 띤 아빠 얼굴이 그렇게 환하게 빛나 보이긴 처음이었다. 눈 내리는 뿌연 밤하늘에 숨어 있던 별들이 아빠와 아이 두 눈 속으로 몽땅 내려앉아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 아빠는 우선 아이가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보기를 바랐다. 그뿐만 아니라 객관화한 그 지점도 상대화할 수 있기를 바랐다. 언젠가는 깨달을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그나마 미리 맛이라도 보아야 세심하게 느낄 것이 아닌가.  
 
낯선 나라로 여행은 늘 가벼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외국이 주는 이질적인 풍경과 문화는 호기심을 일으켜 진심으로 한 걸음 다가가게 한다. 그러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뜻밖의 사실들이 비로소 이해되는 계기가 된다.  
 
이번 프랑스 여행은 처음이라 무척 기대가 되었다. 다만 한국인이 흔히 찾는 유명 여행지가 아니라서 어떨는지 몰랐다. 중부프랑스 리용 근처 옛 수도원들과 프랑스 알프스산맥에 자리 잡은 ‘안시’라는 휴양도시 그리고 프랑스 국립공원 내의 ‘라 살레트’가 목적지였다. 이태리로 넘어가는 길목이기에 그렇게 계획을 잡았다.
 
라 살레트 산에서 새벽에 동이 트는 모습. 프랑스 여름은 백야현상으로 밤낮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밖은 이미 훤하지만 멀리 알프스 산맥 자락에 붉은 기운이 서리는 걸 보면 이제 해가 떠오르는 것 같다. 일행이 일출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을 나는 멀리 뒤편 산 중턱에서 스마트 폰으로 잡았다. 안개가 잔뜩 낀 하늘에 살며시 얼굴을 내미는 산이마가 붉게 물들어 전율을 일으킨다. 나는 그 순간 천상의 화음을 듣는 듯했다. [사진 윤경재]

라 살레트 산에서 새벽에 동이 트는 모습. 프랑스 여름은 백야현상으로 밤낮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밖은 이미 훤하지만 멀리 알프스 산맥 자락에 붉은 기운이 서리는 걸 보면 이제 해가 떠오르는 것 같다. 일행이 일출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을 나는 멀리 뒤편 산 중턱에서 스마트 폰으로 잡았다. 안개가 잔뜩 낀 하늘에 살며시 얼굴을 내미는 산이마가 붉게 물들어 전율을 일으킨다. 나는 그 순간 천상의 화음을 듣는 듯했다. [사진 윤경재]

 
프랑스 유월의 초록빛은 여행 내내 우리 눈을 편하게 해주었다. 미세먼지에 찌들어 뿌옇고 잿빛 서울 하늘에서 벗어나 맑고 푸른 하늘이 주는 충만한 빛은 부러움이었다. 중부프랑스의 비옥한 옥토는 밀과 초지에 덮여 한 줌도 흙색을 보여주지 않는다.  

 
수백 년 된 석조건물과 교회를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며 현대인들에 알맞게 구조 변경하는 지혜는 부러웠다. 폐허가 된 수도원이라도 관광자원으로 삼아 야간조명을 비추어 동화의 마을로 꾸몄다. 수천 명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지만, 수면을 방해하지 않고도 골목 곳곳이 은은한 간접조명으로 밤을 잊은 관광객을 들뜨게 한다.    
 
안시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살고픈 도시라고 한다. 알프스 산자락에서 흘러내려온 눈 녹은 물이 커다란 호수를 이루고 있다. 사철 옥빛 빙하수가 흐르고 무공해의 푸른 하늘이 뭉게구름을 품는 도시이다.    
 
나는 안시에서 러시아 태생인 샤갈이 그린 ‘나와 마을’의 색채가 떠올랐다. 샤갈은 프랑스 표현주의를 빛내주었다. 그의 그림은 색채의 마법으로 관람객을 신비로 이끈다. 붉은색과 초록의 보색대비를 화면 가득히 깔고, 삼각 지붕인 마을과 남녀 농부를 뒤집어 그렸다. 또 사람 눈을 지닌 소와 눈동자가 없는 초록빛 남자는 아이러니를 말한다. X자 구도와 둥근 원, 올리브 나무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시인 김춘수는 샤갈의 그림에서 우중충한 잿빛 러시아를 읽어내었다. 그래서 춘삼월에도 눈이 내린다고 읊은 것이다. 나는 우연히 빛이 충만한 프랑스 휴양도시에서 샤갈과 김춘수를 조우한 것이었다. 사진 모서리의 조그만 돌멩이와 손은 내 분신이다.  
 
1900고지인 ‘라 살레트’에서 맞은 일출은 또 감동이었다. 백야가 시작된 프랑스는 새벽이라 해도 어둠과 빛의 구분이 없다. 이방인인 나는 언제 동이 텄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멀리 솟아오른 알프스 산이마에 서린 붉은 기운이 일출을 알려주고 있었다. 꼭두새벽부터 설친 덕분에 황홀하게 일출을 바라보는 일행과 또 그 장면 전부를 담아내는 영광을 맛보았다.  
 
해외여행은 이렇게 우연하게 마주치는 풍광을 통해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또 상대화하는 기회를 준다.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바로 이런 점이 여행의 매력일 것이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whata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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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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