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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보기관 대신 푸틴 편든 트럼프, 의회 ‘내각 사퇴 요구’ 역풍

중앙일보 2018.07.17 16:2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이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이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에 대해 미 정보기관 대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편을 들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여당인 공화당과 폭스뉴스 등 지지 기반에서 “수치스러운 행동”“구역질이 난다”는 비판이 나왔다. 소련과 냉전 이후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러시아에 저자세로 굴복했다며 의회에선 주요 내각 및 백악관 고위 보좌관의 사퇴 요구까지 나왔다.  
 

트럼프 "푸틴, 대선 개입할 이유 없어" 옹호
"뮬러 특검 수사 재앙이자 웃기는 짓" 비판
매케인 "가장 수치스러운 미 대통령 행동"
트럼프 화법 김정은 만났을 때와 유사
척 슈머 "안보팀 출석시켜 청문회 열겠다"

16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정상회담 직후 푸틴 대통령과 공동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작부터 2016년 대선 승리 정당성부터 강조했다. “깨끗한 선거였고 나는 힐러리 클린턴을 쉽게 이겼다”고 하면서다. “선거인단 득표수에서 306대 223이라는 큰 표차이로 승리했기 때문에, 다시 말하지만 공모는 없었다”고도 했다.
 
문제의 발언은 이어 AP통신 기자가 “‘러시아 대선 개입에 증거가 있다’는 미 정보기관의 말과 ‘없다’는 푸틴 대통령 중 누구 말을 믿느냐”는 답변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보기관) 사람들은 러시아가 했다고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아니라고 한다”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러시아가 개입할 어떤 이유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자신의 정보기관보다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더 두둔한 셈이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이 매우 확고하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선거 개입 재발 방지를 요구하란 제안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발언은 “러시아와 대선 공모는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대선 개입 자체가 없었다”로 더 나간 것이다. 이는 미 국가정보국(DNI), 중앙정보국(CIA)와 국가안보국(NSA) 등 미 정보기관이 러시아가 2016년 대선 기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해 불법대선 개입을 했다는 정보 판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난 13일 미 법무부가 클린턴 대선 캠프와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서버를 해킹한 러시아 정보 요원 12명을 기소했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그들은 선거와 아무 관련이 없고 관여한 사람들도 아니다”고 부정했다.  
닐 카부토 폭스비즈니스 진행자가 1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 발언을 중계하던 중 "역겹다"고 말했다.[트위터 캡처]

닐 카부토 폭스비즈니스 진행자가 1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 발언을 중계하던 중 "역겹다"고 말했다.[트위터 캡처]

 
미 정보기관보다 푸틴 대통령에 의지하는 듯한 무리수까지 보인 건 로버트 뮬러 특검의 수사가 점점 조여오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트럼프의 선거전략 참모였던 로저 스톤이 클린턴 e메일을 해킹한 러시아 비밀요원과 접촉해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하도록 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도 수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뮬러 수사는 우리나라에 재앙”이라며 “우리를 멀어지게 하고 분열시켰다“고 특검 자체를 강력 비판했다. 그러면서 ”수사와 관련해 진행되는 것들은 웃기는 짓“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특검수사 방어를 위해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인 데 정보기관은 물론 공화당과 보수 매체마저 등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은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2016년 대선에 개입했으며 계속해서 우리 민주주의를 훼손하려고 침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공화당 일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우리의 선거에 개입했고 우리 민주주의를 훼손하려고 하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암 투병 중인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도 이날 “오늘 헬싱키 회견은 가장 수치스러운 미국 대통령의 행동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어떤 전임 대통령도 폭군 앞에서 더 비굴하게 저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매케인 의원은 “오늘 회견은 미 대통령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애국적이고 유능한 보좌팀을 동반한 상태에서 항복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은 더욱 이해할 수 없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며 보좌진 책임론도 거론했다.
 
이와 관련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 데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댄 코츠 국장 및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국가안보 참모들에 대해 의회에서 사퇴요구가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은 기자회견을 열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보다 러시아의 이익을 우선시했다”며 “대선개입 의혹을 부인하는 푸틴 대통령을 감싼 것과 관련해 백악관 안보팀의 청문회 출석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길 에어포스원에서 트윗으로 “내 정보 요원들에게 큰 신뢰를 갖고 있다”며 “더 밝은 미래를 만들려면 과거에만 집중할 수는 없다. 우리는 세계 최대 핵강국으로서 서로 잘 지내야 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돌아오는 기내에서 비판적 반응이 전해지면서 대통령의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보좌진들도 화풀이 대상이 되는 걸 피하려고 기내 앞칸으로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미·러 두 정상은 회담 전후로 북핵 문제와 관련해 주요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와 핵무기 감축 문제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컨센서스(의견일치)에 도달했다”며 “북한에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데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전 미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 이행 속도를 묻는 질문에 “이것은 수십 년 간 계속돼 온 것이지만 나는 정말로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막후에서 아주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뒤 폭스뉴스에는 “우리가 북한과 잘하고 있어서 아직 시간이 있다. 수년 간 계속된 일인 만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와 푸틴의 이날 공동기자회견이 지난달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뒤 열었던 기자회견에서의 화법과 묘하게 닮아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예민한 문제는 묻어두고 ▶관계 개선에 대한 자신의 공을 과시하고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트럼프 스타일의 화법이 닮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나는 미국 정보기관에 큰 확신을 갖고 있지만 푸틴 대통령이 오늘 매우 강하게 부인했다. 그리고 그는 함께 조사하자는 매우 훌륭한 제안을 해왔다. 됐지 않느냐(Okay)?”고 말했다.  
 
회담 성과로 양국과의 관계 개선을 강조하며 자신의 공을 과시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ㆍ러 관계가 지금보다 나빴던 적이 없지만 4시간 전부터 달라졌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뒤 자신의 트위터에도 “더 밝은 미래를 만들려면 과거에만 집중할 수는 없다”, “생산적인 대화는 세계에도 좋다”고 언급했다.  
 
앞서 김 위원장과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도 “김 위원장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조치를 가능한 한 빨리 이행하는 데 동의했다. 이는 과거 어느 행정부도 이뤄내지 못한 일”이라고 자평했다. 회담 후 트위터에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집권한 날보다 지금 더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을 것”, “누구나 전쟁은 할 수 있지만 오직 용감한 자만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며 자화자찬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ㆍ미 정상회담 후 북한의 미군 유해송환 약속과 미사일 시험장 폐기 약속을 공개했고, 김 위원장에 대해 “훌륭한 협상가”, “재능 있는 사람” 등으로 치켜세웠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박유미ㆍ김지아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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