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피해자 700명 넘는데 응답 없는 국가기관들

중앙일보 2018.07.17 01:22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정연 사회팀 기자

김정연 사회팀 기자

“피해자가 이렇게 많은데 왜 책임자는 없나요.”
 
지난 14일 서울 압구정 A교정치과 앞. 섭씨 30도가 넘는 폭염을 뚫고 긴 줄을 서 있는 환자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광경이다. ‘투명교정을 저렴한 절반 가격(45% 할인)에 해준다’는 광고에 선뜻 진료비 수백만 원을 결제한 환자들은 하염없이 대기만 하고 있다. 호객행위로 몰린 환자들에 대한 진료를 감당하지 못한 치과가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다. 여기에 검증되지 않은 독자적인 투명교정 치료에 대한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까지 줄을 잇고 있다.
 
서울강남경찰서는 지난 11일 A치과 원장 강모(52)씨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만 700여 명. “다른 곳에서라도 치료를 받을 테니 환불해달라”고 피해자들은 요구하고 있지만 그게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언제가 될지 요원하기만 한 상태다.
 
지난달 22일 서울 압구정 A치과 별관 앞에 환자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 공종복씨]

지난달 22일 서울 압구정 A치과 별관 앞에 환자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 공종복씨]

원장 강씨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업무방해’ 등을 언급하며 환자들에게 집단행동을 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진료 승계(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계속 받도록 하는 것)’도 공지했다. 하지만 그 후 이렇다 할 조치는 없는 상태다. 대한치과의사협회에 따르면 치과 기공소 건물 3층에서는 PC가 사라지는 등 증거인멸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런데도 관련 기관들은 “뾰족한 수가 없다”며 발을 빼는 모양새다. 지난 4일 강남구보건소·식약처·복지부가 합동으로 해당 치과의 기공소 현장지도를 나갔다. 식약처는 “의료 기기 무허가 여부 등을 판단할 뿐 기공소와 기공물은 복지부 소관”이라고 했다. 강남구 보건소와 복지부는 “진료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인정하면서도 “폐업 명령을 내릴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들 기관이 서로 미루는 사이 피해자들만 급한 처지가 됐다. 피해자들은 A치과가 폐업을 할 경우 미리 낸 진료비를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한다. 병원장 강씨가 이전에 운영하던 치과에서 이벤트로 고객을 모은 뒤 폐업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만난 피해자들은 대부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군인·취업준비생·학생 등 10~20대였다. 이들은 “분명 피해를 봤는데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복지부·식약처·보건소 등 관계기관은 A치과 앞 긴 줄에 대답을 서둘러야 한다. 대책을 떠넘기는 각 기관 앞으로 그 줄이 옮겨질 수 있다.
 
김정연 사회팀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