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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후배 아들이 축구왕 된 사연

중앙일보 2018.07.17 01:16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유럽을 오가며 사업하는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니다 최근 국내로 전학한 아들이 놀랍게도 축구에 재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놀랍다고 한 건 아들이 프랑스에서 축구할 때 그다지 잘하는 축에 끼이진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 들어오니 일약 스타 플레이어로 발돋움하더라는 것이다. 월드컵을 거머쥔 프랑스 축구와 16강이면 감지덕지한 우리 축구의 수준 차이 탓만은 아니었다. 후배는 여전히 아들이 축구에 소질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도 그런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거다. 그럼에도 자신이 ‘골잡이’가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더란다. “한국에서는 축구할 때 아이들이 공만 쫓아 우르르 몰려다니더라고요. 나는 내 포지션을 지키고 있는데…. 그러다 공이 내 근처로 날아오면 나는 쉽게 골을 넣을 수 있는 거죠.”
 

할 일은 않고 권력만 좇는 무리들
공복답게 일하라 일갈해야 지도자

후배 이야기를 듣고 시원하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런 모습이 꼭 학교 운동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까닭이다. 자기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출세와 영달을 위해 오로지 권력의 그림자만 좇는 군상들이 이 사회 곳곳에 포진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민간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참견할 수는 없을 터다. 하지만 공공부문에서조차 자기 자리를 지키는 대신 공만 쫓아다니는 일이 비일비재 벌어지고 있다.
 
주권자 아닌 현실 권력자 앞에 줄서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안 그런 이들이 오히려 낯설 만큼 익숙한 풍경이 됐다. 권력자가 누구냐에 따라 목소리 큰 자들이 바뀔 뿐이다. 비박과 탈박을 구분해 내고 원박과 진박, 종박 등으로 분화했던 친박은 주인을 잃고 당을 말아먹고도 여전히 제 살길만 좇고 있다. 그런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권력 가까이서 친문이 나오고 비문을 걸러내며 범문과 진문, 뼈문 등으로 분화하는 전철을 밟는다.
 
정권에 따라 춤추는 정책 앞에서 영혼을 버리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공무원들도 역시 익숙한 풍경이다. 대규모 유통업법 개정안 정도는 말할 것도 없고, 4대 강이나 원전 문제처럼 국가의 틀을 바꿀 대형 국책사업도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입장을 바꾼다. 처음부터 국가는 보이지도 않았고 책임이란 안중에 없었으며 오직 ‘먹고사니즘’만이 삶의 방향지시등이었던 거다.
 
정말 가관인 건 자기 임무를 망각한 채 권력자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던 일부 군인들이다. 국가안보보다 정권안보, 궁극적으로는 자기안보에만 관심이 있는 정치군인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군사기밀을 지키는 게 임무인 기무사가 세월호 인양을 비효율적으로 느끼는 여론을 확대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할 이유가 없다. ‘대국민 담화 간 대통령 이미지 제고 방안’이란 문건을 만들어 감성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더욱 웃을 수 없던 이유는 흔히 현실은 후배 아들의 축구와 다른 결과를 낳기 때문이었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임무를 다하는 사람보다 공만 쫓아 뛰는 사람들이 더 자주 기용되고,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죽자 사자 공만 보는 거고, 그래서 구태가 반복되는 거고, 그 사이 국가는 골병이 드는 것이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미생’에서 오 차장이 천 과장한테 한 말이 떠오른다. “회사에 왔으면 일을 해! 게임하지 말고.” 컴퓨터 게임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대신 공만 쫓는, 자기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대신 윗사람 눈길 바라기만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자기 앞에서 딸랑거리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절실한 시기다. “공복이 됐으면 네 일을 해!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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