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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옥탑방 박원순

중앙일보 2018.07.17 01:11 종합 31면 지면보기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2002년 5월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옥탑방을 아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귀족 후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가락시장에서 배추를 나르는 등 서민 행보를 이어가던 중에 악재가 터진 것이다. 민주당은 ‘위장 서민’이라고 이 후보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다음날 노무현 민주당 후보도 방송 인터뷰에서 “옥탑방 생활형태에 대해서는 얘기를 들어봤지만 용어 자체는 몰랐다”고 진솔하게 대답해 버렸다. 민주당 선거캠프는 호재를 놓쳤지만 노 후보의 이런 솔직함은 나름대로 평가를 받았다.
 
1999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박상우의 단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에서 주인공 민수는 옥탑방이란 말에서 “인간들이 북적대는 지상으로부터 아득하게 유배된 공간, 요컨대 공간 자체에 이미 깊은 절망과 고뇌가 배어 있는 것처럼” 느낀다. 여주인공 주희는 옥탑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저 가련한 고난의 세계, 저곳이 아무리 미물스럽고 속물스럽다고 해도…그래도 저곳으로 내려가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옥탑방은 힘들게 버텨내는 삶일 뿐이다.
 
서민의 고단한 삶을 상징하는 옥탑방이 드라마에선 로맨스의 무대가 됐다. ‘옥탑방 고양이’의 인기는 소설에서 드라마로, 다시 연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옥탑방 왕세자’ ‘넝쿨째 굴러온 당신’ ‘쌈 마이웨이’ 같은 드라마도 옥탑방에서 찍었다. 드라마 속의 옥탑방은 전망 좋고 쾌적해 보이지만 실제론 무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하고 불법 건물인 경우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정부는 1980년 이후 5차례에 걸쳐 특별법을 만들어 일부 옥탑방을 양성화했다.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결코 서민이라고 할 수 없는 건물주의 위법을 사후적으로 인정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옥탑방 5만3832가구 중 절반(2만8894가구)이 서울에 있다. 김지혜 국토연구원 박사는 “서울의 주택 임대수요가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30㎡(9평) 옥탑방에서 한 달간 거주하는 ‘시민과 함께 살기 동고동락’ 체험을 한다. 주거 환경이 열악한 동네에서 그것도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여서 고생 좀 하겠다. “옥탑방에 꼭 살아봐야 서민 힘든 걸 아느냐”(이원종 전 정무수석)는 뜨악한 반응도 있지만 현장 행정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분명한 건 앞으로 박 시장은 ‘옥탑방도 모르는 정치인’ 소리는 안 들어도 될 것 같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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