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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가' 해석이 성희롱? 어느 고교의 황당 미투

중앙일보 2018.07.16 20:16
푸른바다거북이(왼쪽)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중앙포토]

푸른바다거북이(왼쪽)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중앙포토]

인천의 한 여고 교사가 고전문학 수업 중 작품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성적표현이 성희롱으로 간주돼 수업에서 배제됐다. 성적표현은 해당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학설 중 하나라는 게 교사의 입장이지만, 학교는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수업 배제 조처했다.
 

인천 한 국어교사 "구지가 속 거북머리는 남근 상징…"
학교 학부모들, "교사가 수업시간 성희롱" 민원
학교선 해당 교사 수업 배제키로
교사 "고전문학 속 표현 수업이 성희롱 둔갑" 반박
일선 교사들 "은유적 표현", 수업배제에 반발
시 교육청 "현재 감사를 위한 자료 수집 단계"

반면, 교사는 "교권을 침해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일부 국어교사들도 과도한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16일 인천시교육청과 해당 학교 등에 따르면 인천 동구에 있는 한 여고 학부모들이 “A 교사가 지난 3일 수업 중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 민원을 제기했다. A 교사가 지난달 말 문학 수업 시간에 남자의 성기를 언급했다는 내용이다. 
 
A 씨는 당시 수업시간에 고대 가요 '구지가'(龜旨歌)에 나오는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란 대목에서 거북이 머리가 왕이나 우두머리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학설 중에는 남성의 성기인 ‘남근’으로도 해석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영신군가(迎神君歌)’ 또는 ‘구지봉영신가(龜旨峰迎神歌)’라고도 불리는 ‘구지가’는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강림신화에 곁들여 전해오고 있다. 4구체 한문(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으로 『삼국유사』의 가락국 기조에 기록돼 있다.
 
학교 측은 지난 5일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고 해당 학급의 국어교사를 교체하기로 했다. 학폭위가 당시 수업을 들은 학생 26명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학생들이 교사 교체를 원했다. 성희롱 대상이 학생이면 학폭위에서 우선적으로 논의한다. 학폭위에는 교사와 학부모·경찰 등이 참여한다. 다만 해당 학년 전체가 아닌 문제를 제기한 한 학급에 대해서만 배제 조처를 내렸다. 
빈교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연합뉴스]

빈교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연합뉴스]

 
학교 관계자는 “아이들은 A 교사의 공식 사과와 수업배제 등 여섯 가지를 요구했지만 우선적으로 수업배제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성희롱 여부에 대해서는 학교 내 성고충심의위원회와 시 교육청 등과 협의해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교사는 즉각 반발했다. A 씨는 중앙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교사 생활 30여 년 동안 한 번도 문제 된 적이 없었다”며 “수업 내용을 전달한 것뿐인데 성희롱 교사로 낙인찍혀 당혹스럽고 괴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지가에 나오는 ‘거북의 머리’가 왕과 우두머리 등이라는 다양한 학설을 설명하면서 그 중의 하나로 남근(男根·남자의 성기)으로 보기도 한다는 학설을 설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여러 가지 학설을 설명하면서 아이들에게 ‘오해하지 말라’는 주의와 함께 해당 내용을 전달했다”며 “그럼 미술 시간 다비드상(조각)을 보여줬는데 아이들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것도 성희롱으로 간주할 것이냐”고 말했다. 그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거북이의 머리를 왕 등은 물론 ‘남근’으로도 표현하는 자료들이 많다”고 했다. 실제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생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거북의 머리는 수로(首露)·우두머리·남근·구지봉(龜旨峰)으로 해석된 바 있다’고 적혀 있다.
 
이 같은 내용을 접한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국어교사(42)는 “고전문학에서 성적 담론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이를 제외하면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며 “해당표현을 성적 표현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생명의 탄생, 문명의 발생, 노동력 등의 하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시교육청 전경 [사진 다음로드뷰]

인천시교육청 전경 [사진 다음로드뷰]

 
학교의 수업배제 조치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대유 경기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수업 중 이뤄진 문학작품의 해설 과정에서 (특정 학생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관련 학회나 전문가 등의 의견을 구해 문제 부분에 대한 판단이 우선으로 다뤄져야 한다”며 “하지만 심의 권한이 없는 학교 내 자치기구에서 교사의 성희롱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시 교육청은 A 교사에 대한 조처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학교에서 공식 절차(학교폭력위)에 따라 조처(수업배제)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까지 감사요청이 들어 온 것은 없으며 경찰에서 성희롱으로 판단하면 이후 징계 절차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임명수·김민욱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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