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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 아버지 덕에 한국 관객과 잘 통하나봐요"

중앙일보 2018.07.16 16:27
뮤지컬 '웃는 남자'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2004년 '지킬 앤 하이드'부터 이번 '웃는 남자'까지 내가 작곡한 뮤지컬로 한국 무대에 오른 작품은 모두 13편"이라고 정확하게 꼽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뮤지컬 '웃는 남자'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2004년 '지킬 앤 하이드'부터 이번 '웃는 남자'까지 내가 작곡한 뮤지컬로 한국 무대에 오른 작품은 모두 13편"이라고 정확하게 꼽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뮤지컬 ‘웃는 남자’ 작곡 와일드혼
준비 5년, 175억원 들인 창작무대
프랑스 문호 위고 원작 가다듬어
“세계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

빅토르 위고 원작, 준비 기간 5년, 제작비 175억원. 말 그대로 ‘대작’의 위용을 모두 갖춘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가 지난 10일 개막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웃는 남자’는 웅장하고 정교한 무대, 가슴을 파고드는 음악, 박효신ㆍ신영숙 등 배우들의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객석을 꽉 채운 2000여 명의 관객으로부터 기립 박수를 끌어냈다. 평면적인 스토리 전개가 아쉽긴 했지만 초연 무대인 점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의 수작이다. 개막 다음 날 만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59)은 전날 밤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연신 “놀랍다(Amazing)”면서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를 비롯,  ‘마타하리’ ‘데스노트’ ‘더 라스트 키스’ 등의 작품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작곡가다. 대표곡 ‘지금 이 순간’처럼 이른바 ‘지르는’ 넘버들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지만 이번 작품 ‘웃는 남자’에선 감미롭고 서정적인 선율을 앞세웠다.
 
 
30곡의 넘버 중 ‘나무 위의 천사(Angels in the Trees)’ ‘무너져 내릴 마음(Fragile is the Heart)’  등 부드러운 곡들이 강한 여운을 남겼다.
“그동안의 작품에서는 ‘샤우팅’이 큰 노래를 많이 만들었다. 극 중 인물들이 맞닥뜨린 인생의 위기가 너무나 광대해서, 그걸 뛰어넘는 캐릭터로 그리려다 보니 마치 올림픽 대회라도 나간 듯 소리를 내지르는 노래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웃는 남자’의 인물들에 대해 내가 느낀 공통점은 그들이 사실은 연약하다는 것이다. 감정적ㆍ정신적으로, 혹은 물리적ㆍ신체적으로 연약한 각 인물들의 상황을 노래 속에 담아내고 싶었다. ‘나무 위의 천사’와 ‘무너져 내릴 마음’은 인간의 연약한 마음을 표현한 대표적인 노래들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 장면.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 장면.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웃는 남자’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69년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적인 괴물로 만들어 귀족들의 놀잇감으로 팔던 인신 매매단 ‘콤프라치코스’를 등장시켰다. 주제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다.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입이 찢기는 바람에 평생을 웃는 광대로 살아가야 하는 그윈플렌( 박효신ㆍ박강현ㆍ수호)과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정성화ㆍ양준모),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 데아(민경아ㆍ이수빈) 등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며 사회 정의와 인간성이 무너진 세태를 비판한다.  
와일드혼은 “그 어떤 시대보다 바로 지금이 ‘웃는 남자’의 주제에 잘 들어맞는 때”라고 말했다. 그가 살고 있는 미국을 예로 들어 “상위 1%가 전체 나라를 다 지배하고 있는 구조 아니냐”면서 “‘웃는 남자’는 세계 공연 시장에서도 통할 작품”이라고 장담했다. 또 “정치적인 이슈뿐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무엇인가’ 등 현대인에게 중요한 생각거리를 던진다”고 말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 장면.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 장면.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웃는 남자’는 바이올리니스트가 공연 도중 직접 무대 위에 올라와 연주를 하는 등 음악적인 특징이 많다. 작곡 과정도 특별했나.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황태자 루돌프’ 등을 함께 작업했던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의 제안을 받고 2012년 가을부터 곡을 만들었다. 프랑스 영화 ‘웃는 남자’를 음소거 상태에서 화면만 여섯 번 정도 보면서 작곡을 시작했다. 제일 처음 만든 곡이 ‘웃는 남자’ 테마곡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친구 앙투안 실버맨(Antoine Silverman)에게 뉴욕 작업실로 잠깐만 와달라고 해 작곡한 곡을 연주해 달라고 부탁했다. 앙투안이 바이올린을, 나는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면서 ‘웃는 남자’의 음악적 세계가 열렸다. 작품 속에 유럽적인 집시 감성을 담고 싶었는데, 바이올린 소리가 제격이었다. 나는 음악교육을 정식으로 받지 않았다. 대학 전공은 역사다. 내게 있어 작곡은 감을 통해 하는 일이다. 마치 낚시를 하듯 내 안에 있는 멜로디를 낚아내려고 한다. 다른 음악의 영향을 받아 쓴 곡도 있다. 우르수스가 부르는 ‘무너져 내릴 마음’은 19세기 작곡가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  
 
 한국 관객들에게 ‘프랭크 와일드혼’이란 이름은 2004년 ‘지킬 앤 하이드’의 한국 초연을 계기로 알려졌다. 이번 ‘웃는 남자’뿐 아니라  ‘천국의 눈물’ (2011), ‘마타하리’(2016) 등 한국 창작뮤지컬도 여럿 작곡했다. 한국 관객들의 감성과 잘 통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조금 로맨틱하게 생각해 본다면,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가’란 분석도 가능하겠다. 아버지는 참전 때 세운 공로로 훈장도 받으셨다. 내가 한국에 올 때마다 아버지의 존재감이 따라온다고 느낀다.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이다. 좀 더 실용적으로 설명하자면, 나는 극장 뮤지컬이 아닌 대중음악 분야에서 작곡을 시작했다. 한 곡 한 곡 만들어 내 노래를 불러줄 가수들에게 팔아야 했다. ‘누구라도 내 노래를 부르고 싶게끔 작곡을 해야겠구나’란 생각을 하면서 작곡자로 성장한 것이다."
 
그는 또 "한국 배우들과 함께 작업할 기회가 많았다는 것이 작곡자로서 큰 행운"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뮤지컬 배우들은 노래를 정말 잘한다. 전세계에서 최고다. 어떻게 이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이 많을 수 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다. 브로드웨이 등 다른 세계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면서 "내 머리 속에 각인돼 있는 한국 배우들의 목소리가 작곡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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