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강수 논설위원
국정농단 수사로 국정원 특활비·직권남용, 범죄로 부각
수사 만능주의, 과잉 수사로 피로감 팽배 … 절제된 수사 필요
직권 남용의 칼날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주 번뜩인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은 문무일 검찰총장을 직권 남용 당사자로 지목하기까지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거래 의혹 수사의 대표 혐의 역시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직권 남용이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양승태 사법부가 청와대·국회·대한변협 등을 타깃으로 대응 전략을 만들었는데 그 내부 문건들이 무더기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 중엔 특정 대법원 선고를 매개로 청와대와 흥정을 시도한 것처럼 비치는 문서도 있다.
수사가 현재 진행형이라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다. 하지만 검찰이 나선 이상 누군가는 책임을 지게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자발적 의사 표현에 따른 것이라서 검찰을 탓할 명분이 없다.
삼권분립 원칙을 내세우며 머뭇거리던 검찰은 막상 물꼬가 터지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컴퓨터 제출과 최고 법관들의 공용 휴대전화, e메일, 업무추진비 및 관용차량 사용 내역 등 광범위한 자료를 요구했다. 이러다 보니 “알고 보면 검찰을 제일 모르는 게 판사들”이라는 말이 나왔다. 검찰은 의혹이 제기된 대법원 재판들의 최종 결론 도출 과정도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일부 대법관은 “법원행정처가 재판의 독립을 못 지키면 그게 바로 직권 남용인 만큼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질타했단다. 선진국에는 ‘사법 심사 특권’이라는 제도가 있어 재판의 합의 과정과 연구보고서 등은 수사기관에 내주지 않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어딘가에는 꽂혀야 하는 게 세상 이치다. 이번만큼 검찰의 절제된 수사가 필요한 사안도 드물다. 강제 수사는 최소화하고 약점 잡기도 안 된다. 검찰 수사는 재발 방지를 위한 진실 규명과 단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수사 과잉’‘수사 만능주의’에 시달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애초에 내건 검찰 개혁 정신대로라면 정치적 사건에 대한 특수수사 권한이 축소돼야 할 텐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논란이 많은 군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해 대통령이 해외 출장 중에 직접 수사를 지시할 정도다. 대기업 갑질 오너들은 도덕적 지탄을 넘어 난무하는 수사의 칼날에 혼비백산하고 있다. 여기에다 언론의 호기심 충족용 보도도 갈 데까지 가는 분위기다. 조깅하는 전 법원행정처 간부가 취재진을 보고 놀라 질주하는 장면을 버젓이 내보내고선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고 둘러대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인지 의문이다.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