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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닌 그녀들의 이야기, 영화 '허스토리'

중앙일보 2018.07.14 11:00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38) 영화 '허스토리'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를 풍미한 뉴욕 양키즈의 위대한 포수 요기 베라. 1973년 그가 뉴욕 메츠 감독 시절 내셔널 리그 동부 디비전에서 꼴찌를 하고 있을 때 한 기자가 “사실상 이번 시즌은 끝난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이때 나온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언이 있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실제로 메츠는 기적적으로 동부 디비전 1위를 차지했고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하는 기적을 보여주죠.  
 
뜬금없이 왠 야구 얘긴가 싶으실텐데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닌’ 사건을 다룬 오늘의 영화 이야기를 하기 위함입니다. 관부재판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나요? 1992년부터 최종 판결을 받은 1998년까지 6년 동안 23회에 걸쳐 시모노세키(하)와 산을 오가며 일본 정부를 상태로 법정 투쟁을 벌인 재판을 말합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부 인정을 한 기록이 남아있는 유일한 재판이기도 하죠.
 
영화 '허스토리'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문정숙 사장(맨 오른쪽)이 재판을 위해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하관)로 향하고 있다. [사진 NEW]

영화 '허스토리'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문정숙 사장(맨 오른쪽)이 재판을 위해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하관)로 향하고 있다. [사진 NEW]

 
2주 전 토요일, 이 관부재판을 다룬 영화 ‘허스토리’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개봉일이 불과 3일 지났는데 상영 회차가 많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영화관에 찾아주길 바랐거든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 이야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이 등장해 극을 이끌어 나갑니다. 김희애,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연기경력 도합 200년인 이들의 연기력은 논할 필요도 없고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신 사장 역에 김선영, 여행사 직원 류선영 역에 이유영까지 여성 캐릭터들이 압도적입니다. 
 
특히 문정숙 역을 맡은 김희애는 소위 '걸크러쉬' 매력을 보여줍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김문숙 회장을 실제 모델로 한 문정숙은 웬만한 사내대장부보다 당차고 여느 사업가 못지않게 배포가 큽니다. 
 
택시를 타고 가다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고백에 대한 라디오 뉴스를 듣고 택시기사가 주책없다느니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자 "당신 어머니라도 그런 소리 할낍니까?" 하며 택시를 박차고 나온 장면이나, 왜 이렇게 할머니들에게 신경을 쓰느냐는 신 사장의 물음에 "내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게  부끄러버서"라고 답하는 장면들은 마치 관객들에게 던지는 물음인 양 가슴을 찌릅니다.
 
영화 '허스토리'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김문숙 회장을 실제 모델로 한 문정숙 역을 맡은 김희애. [중앙포토]

영화 '허스토리'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김문숙 회장을 실제 모델로 한 문정숙 역을 맡은 김희애. [중앙포토]

 
또 일본에서 이루어진 재판에서 재판관들과 일본 측 변호인들에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통역하며 변호하는 장면에서는 영화 속에 빠져든 관객에게 통쾌함을 맛보게 하죠. 첫 시작은 선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녀가 할머니들을 위해 한 행동은 진심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영화를 찍은 민규동 감독은 문정숙 역의 김희애에 대해 “캐스팅하면서 굉장히 욕심이 많았다. 기존의 김희애라는 배우로부터 연상하지 못했던 많은 요소를 이번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고, 함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재미도 있었다”고 전하며 아낌없는 칭찬을 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고통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보면 그때 당시의 피해를 재연함으로써 영화가 자극적으로 비치는 경우가 더러 있죠. 그런 부분만 교묘히 편집해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영화는 과거의 고통을 재연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합니다. 아직도 그 고통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죠.
 
거듭되는 재판 과정에서 관객들은 온몸에 새겨진 물리적인 상처와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까지 더해져 고통의 한가운데에 직면해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배정길 할머니 역을 맡은 김해숙 배우는 재판 장면을 앞두고 더욱 진심을 담은 연기를 하기 위해 심적으로 많은 괴로움을 겪고 몸살까지 앓았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촬영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나를 내 본래 모습으로 돌리도. 당장 17살 때 그때 그 모습으로 돌리도!"라고 말하는 재판 장면을 찍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감독은 물론 지켜보던 스태프들까지 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죠.
 
영화 '허스토리' 촬영 현장에서 민규동 감독과 김해숙. [사진 NEW]

영화 '허스토리' 촬영 현장에서 민규동 감독과 김해숙. [사진 NEW]

 
김해숙 외에도 박순녀 할머니 역의 예수정과 서귀순 역의 문숙, 이옥주 역 이용녀는 각 캐릭터에 맞게 연기할 수 있도록 고민을 거듭한 흔적이 장면마다 돋보입니다. 
 
사과의 의미 
얼마 전 TV에서 하는 강연프로그램을 보다 ‘사과’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반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은 이 아이는 밤마다 심한 악몽에 시달리는 등의 고통을 겪고 있었죠. 하지만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친구들과 선생님 때문에 두 번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아이는 사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과는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거야. 진심이 아닌 사죄는 사과가 아니야! 사과는 내가 풀릴 때까지 용서를 구하는 거야.”
 
프리미엄 특강쇼 어쩌다 어른 손경이 강사편 중에서. [사진 tvN 어쩌다 어른 화면 캡쳐]

프리미엄 특강쇼 어쩌다 어른 손경이 강사편 중에서. [사진 tvN 어쩌다 어른 화면 캡쳐]

 
초등학생조차 알고 있는 '사과'의 의미를 그들이라고 모르지 않을 텐데 왜 아직도 진실한 사과는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요? 더 늦지 않게 할머니들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풀릴 만큼의 '사과'가 하루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허스토리
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감독: 민규동
각본: 민규동, 서혜림, 정겨운
출연: 김희애,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김선영, 김준한
촬영: 박정훈
음악: 임준성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21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2018년 6월 27일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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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예슬 현예슬 더,오래 팀 필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살자'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어른이(어른아이). 더오래팀에서 주로 기사 편집을 하고 있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가 어쩌다 보니 글도 쓴다(영화 리뷰 '만만한 리뷰' 연재중). 노후 준비가 필요하다는 건 더오래팀을 통해 배웠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걷고 뛸 수 있을 때까지 자라는 게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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