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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우리 민화를 허접하다 하는가

중앙선데이 2018.07.14 01:00 592호 31면 지면보기
책 속으로 
컬렉션의 맛

컬렉션의 맛

컬렉션의 맛
김세종 지음, 아트북스

민화수집가 김세종씨의 40여년
수많은 시행착오 가감없이 담아

문자도·화조도 등의 크나큰 매력
“민화는 세계에 내놓을 순수회화”

“처절하고 지독하게 모았다” 평가
소장품 전시회도 두 군데서 열려

 
고미술계에서는 그를 ‘불치병에 걸린 사나이’라 부른다. 반평생을 수집에 집착하며 보낸 스스로도 “미에 대한 탐욕은 거의 중병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국립중앙박물관만 천 번 이상 드나들며 독학으로 일군 그의 동물적인 감식안을 지켜본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처절하고 지독하며 집요하다”고 감탄했다. 김세종(62) ‘평창 아트’ 대표는 미술품 수집이라는 화두를 쥐고 살아온 40여 년 세월을 이 책 한 권에 쏟아내며 쓴다.
 
“재력(財力)은 보잘것없으나 미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재벌 부럽지 않아 수집의 지혜를 추구했는지 모른다. (…)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계속 끊임없이 수집의 질서를 세워가는 일이다.” (11쪽)
 
그는 수집을 창작이자 ‘질서 세우기’라 부른다. 컬렉션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였으므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각 수집품이 하나의 관점 속에 서로 충돌하며 다듬어져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책의 1부는 김 대표가 창의적 수집 철학을 모색하며 겪은 희생과 노력의 보고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그는 수집 설계의 원칙과 방법론에 도달했다. ‘종적(縱的) 수집’과 ‘컬렉션의 키질론’이다.
 
“종적 수집은 한 장르에서 목표의 범위를 좁게 설정하여 최고의 가치를 지닌 작품을 모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예술성, 완성도, 희소성, 연대 등에서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70쪽)
 
김 대표는 “컬렉션의 꽃은 종적 수집”이라고 단언한다.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넓게 많이 모으는 ‘횡적 수집’은 개인 소장자나 소규모 개인 박물관에겐 힘에 부친다. 그는 종적 수집으로 민화(民畵)를 모았다. 최고의 민화 작품을 추구하는 혹독한 도전에서 행복의 충격을 맛보면서 민화의 가치를 높여보자는 소명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김세종씨는 박물관의 도록을 뒤져 한 작가의 작품이라 추정되는 민화 30여 점을 찾았다. [사진 아트북스]

김세종씨는 박물관의 도록을 뒤져 한 작가의 작품이라 추정되는 민화 30여 점을 찾았다. [사진 아트북스]

키질은 키로 곡식을 까부르는 일이다. 어린 시절, 깍지나 돌 따위 불순물을 걷어내고 알갱이만 골라내는 어머니의 키질을 보고 자란 김 대표는 컬렉션의 이치를 절묘하게 비유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잡다해진 소장품을 안목(眼目)의 근육을 키워 평생 골라내야 건강하고 아름다운 명품이 된다는 것이 그의 ‘키질론’이다.
 
“비움과 버림을 어떻게 조절하여 지혜롭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컬렉션의 키질이다. (…) 사람은 평생 늘 새롭고 더 높은 미적 경지를 찾아가는 미의 여정 한가운데에 있다.”(126쪽)
 
2부는 자신의 수집 철학을 실천한 민화(民畵) 컬렉션 이야기다. ‘민화는 순수 회화로 세계적이다’라는 신념이 도저하다. 민화 모으기에 수집 인생을 걸었다는 그는 민화를 상징이나 관념이 아닌 회화적인 관점에서 보기를 제안한다. ‘민화=생활 장식화’라는 19세기 시각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며 ‘민화 제자리 찾기’를 외치는 그의 글에는 독기마저 서려 있다.
 
“민화를 수집하면서 전문가들로부터 시류에 뒤떨어진 허접한 것을 수집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아 왔다. 또한 서양화나 현대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의 멸시와 조롱 또한 많이 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오기 아닌 오기가 생겨 수집을 멈출 수 없었고, 언젠가는 꼭 민화가 세계의 문화가 되는 그 날을 위하여 작은 힘이지만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309쪽)
 
그는 30대 초반에 한 원로 서양화가의 집에서 요상한 ‘제주 문자도(文字圖)’를 만나며 민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2000년 6월 서울 평창동에 ‘평창 아트’를 열고 새로운 미의 세계를 수집하기로 결심하면서 민화 수집 병에 발동이 걸렸다. 그때 세운 수집 설계 관점이 ‘민화는 순수 회화다’였다. ‘까치 호랑이’의 재조명을 시작으로 산수화, 화조도, 충주 문자도, 강원도 책거리 문자도, 강원도 화조 책거리 등을 발굴했다. 그 과정에서 ‘아, 이 작품들은 같은 사람이 그렸겠구나’ 싶은 두 명의 걸출한 민화 작가를 찾아내기도 했다. 작가라는 관점의 민화 연구도 숙제로 남게 된 셈이다.
 
김 대표는 국립민화박물관을 세우고 민화의 대표작을 발굴해 세계인과 공유하자고 주장한다. 그의 요청이 타당한 것인가 확인하려면 전시장에서 직접 민화를 대면하면 된다. 다음 달 19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민화, 현대를 만나다’에 김 대표의 소장품이 나와 있다. 오는 18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최되는 ‘김세종 컬렉션-조선민화걸작 내일을 그리다’에는 그가 꿈꿔온 ‘민화의 순수회화 복권’을 증거할 80여 점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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