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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미국 베테랑 외교관들이 직(職)을 던지는 이유

중앙일보 2018.07.13 01:30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수정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외교관은 나라의 흥망성쇠, 그 역사적 흐름의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일하는 직군이다. 내가 만난 외교관들도 대개는 직(職)의 엄중성을 마음에 담고 일했다. 그러하다 해도, 역대로 안보 철학을 달리하는 정권이 들어서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정책을 펼쳐도 이를 거부하고 직을 던지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청와대가 ‘코드 인사’로 내치기 전까지는, 대부분 순응한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 국무부 분위기는 다르다. 미 외교관협회(AFSA)에 따르면 지난해 이후 고위 외교관 60% 이상이 줄사표를 냈다. 데이비드 랭크 중국 대리대사, 로베르타 제이컵슨 멕시코 대사, 톰 섀넌 차관 등 베테랑들이 떠났다. 기후협약 탈퇴, 남미 국가 공격 등 트럼프의 몰가치 외교에 대한 반발이 주 배경이다.
 
최근엔 33년 경력의 제임스 멜빌 에스토니아 대사가 은퇴를 예고했다. ‘포린폴리시(FP)’가 전한 사퇴 변(辯)의 핵심은 “동맹을 욕하는 대통령 아래서 일할 수 없다”는 거다. 그는 “외교관의 DNA는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이고, 그럴 수 없게 될 때 명예롭게 물러나라고 배웠다. 미국은 위대한 나라다. 언젠가 옳은 길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전후 미국이 구축한 자유민주 진영의 안보결사체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트럼프가 폄훼하고 그 질서를 흔드는 데 대한 거부다. 미국의 위상 추락을 방조·조력했다는 불명예를 안고 가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는 11일 브뤼셀 나토정상회담에서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회원국의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4%로 올리라고 했다. 독일의 러시아 가스전 협력사업을 두고선 “독일은 러시아의 포로”라고 공격하며 나토 무용론까지 언급했다. 미국의 국방비 지출이 GDP의 4%대(지난해는 3.57%, 분담금의 67%)다. 나머지 회원국은 ‘2024년까지 GDP의 2%에 도달한다’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증액 중이다.
 
긍정적(positive)인 국제사회 개입이 국익과 부합한다는 전후 미 외교정책의 원칙에서 출발한 게 나토다. ‘개별 회원국에 대한 무력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조약 5조)는 집단방위 원칙을 바탕으로 소련의 유럽 진출과 독일의 재무장을 억제하면서 이른바 ‘서방’(The West)의 토대를 닦았다. 트럼프가 1년간 보인 패턴은 동맹을 치고, 잠재적 적국 칭송하기다. 지난달 캐나다 G7(주요 7개국) 정상회담에선 공동성명을 철회하고, 캐나다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에게 “부정직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이후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존경’을 표하고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밝혔다. 트럼프는 나토 정상회담 참석 뒤 영국을 거쳐 16일 헬싱키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사임설도 나온다. 매티스의 부하로 일한 적이 있는 리언 파네타 전 국방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본능에 따른 외교를 하면서 매티스의 역할도 줄고 있다”고 했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물러날 즈음 매티스도 함께 자리를 내놓을 것이란 전망(FT)도 나온다. 트럼프는 한·미훈련 중단도 매티스에게 알리지 않았다.
 
미국 외교관들의 사임은 70년 동맹을 ‘한물갔다’고 보는 트럼프의 외교가 부를 파장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게임의 승자는 분명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힘을 빼는 게 목표인 중국과, 유럽내 파워를 회복하려는 러시아다. 당장 국내 실업률은 떨어져도 국위가 추락하는 건 미국이다.
 
나토 동맹국들은 미국의 훈련 중단과, 병력·장비 배치 지연 가능성 등 트럼프발 안보 혼돈에 공동 대처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는 제자리를 맴돌고 추가 핵물질만 쌓고 있는데 우리는 한·미 해병대 훈련, 을지훈련까지도 중단했다. 북핵 폐기가 진전이 없는데 주한미군 철수 요구의 구실만 줄 수 있는 종전선언은 성급하게 추진하는 분위기다. 한·미동맹의 가치를 외면하는 트럼프가 중간 선거만 바라보다 김정은의 덫에 빠진 사이, 북·중이 쳐놓은 더 큰 구덩이 속으로 우리가 서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김수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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