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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한 표의 무게

중앙일보 2018.07.13 01:16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일하는 공무원인지 알아보는 간단한 식별법 하나. ‘눈 한 송이의 무게’ 우화(寓話)를 아는지 물어 보는 거다. 선관위 주변에선 ‘한 표의 중요성’을 호소할 때 이 우화가 인용되기 일쑤다.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이 시행하는 민주시민교육이나 고교생 대상 선거문화 교육 때도 등장하곤 한다. 이러니 선관위 직원이라면 십중팔구는 이 우화가 낯설지 않다.
 
우화는 비둘기에게 참새가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이다. 수백 만 송이 눈이 쌓여도 끄떡없던 나뭇가지가 마지막 눈 한 송이가 내려앉는 순간 부러지더란 얘기다. 요컨대 그게 ‘눈 한 송이의 무게’란 거다. 별것 아닌 눈 한 송이의 기적에 한 표의 영향력을 빗대려 끄집어낸 우화다. 투표 독려 메시지로는 그만인 셈이다.
 
한 표 차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뀐 숱한 해외 사례들을 보면 한 표에 담긴 무형의 가치까지 계량화하는 건 애초부터 당찮은 일이다. 그나마 형체가 있는 알래스카와 에펠탑조차도 그렇다. 1867년 미국이 러시아의 알래스카를 사들이는 협약은 팽팽한 대립 속에 단 한 표 차로 미 상원의 비준을 받았다. 1889년 완공돼 흉물 취급을 받던 에펠탑도 대법원에서 한 표 차로 보존 처분을 받았다. 그 한 표가 아니었다면 미국 지도는 지금과 달랐을 테고, 파리의 랜드마크 하나는 사라졌을 게다. 1645년 크롬웰에게 대영제국 통치권을 부여한 것도, 1923년 히틀러를 나치당 총수로 선출한 것도 단 한 표 차이로 이뤄졌다. 이 대목에 이르면 한 표의 가치는 상상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간 우리 지방선거에서도 한 표 차로 당락이 갈린 경우가 13번, 동일 득표가 7번 있었다. 한 표의 소중함을 각인시킨 사례들이다. 1995년 선거 때 장수군의원의 경우 956표 대 955표였다. 지난 6·13 선거에서 장수군 투표율이 82.7%로 전북(평균 65.3%)에서 압도적 1위인 게 우연만은 아닐 듯싶다.
 
충남선관위가 그제 청양군의원 선거 재검표를 통해 무효표 1표를 유효표로 인정했다. 그 바람에 한 표 차이로 승패가 갈린 당선인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득표수가 같으면 연장자가 당선되는 공직선거법에 따라서다. 다만 현 당선인이 선관위 결정에 불복해 ‘무효 소송’을 내면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직을 유지하게 된다. 한 임기에 두 사람이 군의원을 번갈아 맡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질 판이다. 그럼에도 소득이 없지 않다. 대법원이 ‘한 표’를 다툼에 따라 그 무게와 의미를 더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될 터이니 말이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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