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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g ‘사랑이’의 기적 … 쑥쑥 자라 3㎏, 이제 집에 가요

중앙일보 2018.07.13 01:08 종합 2면 지면보기
12일 이충구·이인선씨 부부가 딸 사랑이에게 젖병에 담은 모유를 먹이고 있다. 302g으로 태어난 사랑이는 이날 건강하게 퇴원했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12일 이충구·이인선씨 부부가 딸 사랑이에게 젖병에 담은 모유를 먹이고 있다. 302g으로 태어난 사랑이는 이날 건강하게 퇴원했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지난 1월 25일 서울아산병원 신관 6층에 위치한 분만장에 비상이 걸렸다. 체중 302g, 키 21.5㎝, 어른 손 한 뼘 크기의 여자 아기가 태어났다. 산모 이인선(42)씨는 이날로 임신 24주 5일째였다. 예정일이 석 달 이상 남아 있었지만 임신중독증 증상이 심각했다. 의료진은 임신 상태를 더 유지하면 산모와 아이 둘 다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출생 당시 아기의 생존 확률은 1%가 채 안 됐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는 5개월간의 힘겨운 사투 끝에 ‘기적’이 됐다. 302g의 초극소 저체중 미숙아(이하 초미숙아)는 이사랑 양이다. 사랑이는 169일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신생아팀(이병섭·정의석 교수)의 집중 치료를 받고 12일 3㎏의 건강한 상태로 퇴원했다. 302g은 국내 최저다. 세계 26번째다. 초미숙아는 500g 미만, 미숙아는 임신 34주 이전에 태어나거나 체중이 1.5㎏ 미만인 아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몸무게 1㎏ 미만의 미숙아는 호흡기·신경·위장·면역계통의 장기가 성숙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난다. 호흡곤란, 심장병, 태변이 장을 막아 장이 썩는 질환, 전신 혈액감염, 미숙아 망막증 등 각종 중증의 합병증이 따른다.
 
태어난 지 이틀 된 사랑이가 인큐베이터에서 집중 치료받는 모습. 안대를 차고, 인공호흡기·수액관을 달고 있다.

태어난 지 이틀 된 사랑이가 인큐베이터에서 집중 치료받는 모습. 안대를 차고, 인공호흡기·수액관을 달고 있다.

사랑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태어나자마자 위기였다. 폐포(허파꽈리)가 완전히 생성되기 전에 태어나는 바람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의료진은 출생 직후 급히 기관에 관을 연결해 사랑이의 폐에 압력과 함께 산소를 불어넣어 줬다.  미숙아 전용 고빈도 진동 인공호흡기를 연결해 숨을 쉬게 했다. 일반적 호흡기와 달리 덜덜 떨면서 일정하게 호흡을 유지하게 도와준다. 기관지 내로 폐표면활성제(폐 기능을 돕는 약)도 투여됐다.
 
그대로 두면 망막 손상이 생길 수 있어 두달 간 안대를 차고, 광선 치료를 했다. 자궁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인큐베이터 안에 습기가 생기게 해 뿌옇게 만들었다.
 
위기가 계속됐다. 생후 7일 몸속의 양수가 빠지면서 체중이 295g으로 떨어졌다. 엄마의 모유, 수액 치료 등으로 위기를 넘겼다. 수액 주사도 고난도 작업이다. 가장 작은 주삿바늘의 길이가 사랑이의 팔뚝 길이와 비슷해 주사 놓을 때도 신중해야 했다. 체내 혈액량이 적어 피를 몇 방울만 뽑아도 빈혈이 생길 수 있었다.
 
생후 100일 되던 날 엄마는 인큐베이터 속 사랑이와 기념 사진을 찍었다.

생후 100일 되던 날 엄마는 인큐베이터 속 사랑이와 기념 사진을 찍었다.

괴사성 장염을 예방하기 위해 엄마가 매일 모유를 유축했고, 아빠가 한 달 넘게 날랐다. 덕분에 장염이 없었고 수술 한 번 받지 않았다. 두 달 만에 몸무게가 600g으로 늘자 인공호흡기를 뗐다.
 
사랑이 엄마 이씨는 “사랑이는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첫 아이인 데다 아빠의 생일에 운명처럼 찾아왔다. 한 순간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며 “의료진이 헌신적으로 보살펴 준 덕분에 건강하게 퇴원했다”고 말했다. 아빠 이충구(41)씨는 “아기가 잘 버텨 줘 희망을 잃지 않았다. 두 달여 만에 사랑이 눈을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벅찼는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1.5㎏ 미만 미숙아가 한 해 3000여 명 태어난다. 20여 년 전은 약 1000명이었는데 고령 산모 증가 등으로 세 배가 됐다. 2014~2016년 500g 미만의 초미숙아가 163명 태어나 28%만 생존했다. 서울아산병원만 보면 최근 5년간 33명이 태어나 17명이 살아났다.
 
정의석 교수는 “처음에 한 뼘도 안 되는 아이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걸 보니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났다. 초미숙아가 수술 한 번 받지 않는 일은 드물다. 미숙아들에게 발생하기 쉬운 뇌출혈 등 합병증 없이 온전하게 성장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위기마다 사랑이가 스스로 극복하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5개월간의 사랑이 치료비는 건강보험 덕분에 1000만원이 채 안 된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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