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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의 직격 인터뷰] "미·중 무역전쟁, 다자주의 붕괴 가속화시킬 것”

중앙일보 2018.07.13 00:31 종합 26면 지면보기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미국의 문제의식은 정당하지만 WTO를 거치지 않고, 무역수지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미국의 문제의식은 정당하지만 WTO를 거치지 않고, 무역수지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이 확전 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6일 미국이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출품에 25% 관세를 매기기 시작하자 중국도 즉각 같은 규모의 미국 상품에 보복 폭탄을 투하했다. 미국은 지난 10일 추가로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출 품목에 추가로 10% 관세를 매기는 추가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도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원칙을 고수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어 이번 ‘관세 전쟁’은 전면전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지난 2011년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미국이 중국의 잘못된 무역관행을 지적하는 건 좋지만 방식이 잘못됐다”며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개선하지 않고 대미 흑자액만 줄이는 ‘가짜 항복’으로 사태가 마무리되면 세계 무역질서가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미·중 무역전쟁 발발을 예상했나.
“설마 했다. 유수의 경제학자들도 그랬던 것 같다. 얼마 전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을 만났는데 본인도 한 달 전까진 발발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고 하더라.”
 
무역전쟁이 어떻게 진행될까.
“시간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해 강공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대규모 미국산 수입 확대와 같은 양보를 하지 않으면 더 확전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국내 물가 상승 등 관세 부과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양국 모두 어려워진다. 할리 데이비드슨의 해외 이전 등 미국에서 일부 영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은 미국 소비자가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 부정적 영향이 언제 본격화되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방식의 관세 부과로 미국이 쓴맛을 본 역사적 경험이 있지 않나.
“대공황 때인 1930년 미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평균 관세를 30%에서 60%로 올리는 스무트-홀리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국내 산업이 오히려 피해를 입자 4년 뒤인 34년 통상법을 처음 제정해 관세를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관세 전쟁은 승리자 없이 패배자만 만들 뿐이라는 게 역사적 교훈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세전쟁을 감행하는 이유가 뭘까.
“정치적 요인이 크다고 본다. 러스트 벨트(Rust Belt, 미국 북동부 5대호 주변의 쇠락한 공장지대)와 같은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에 먹힐 직관적 논리가 필요하다. 트럼프는 선거 전부터 ‘중국산이나 한국산 때문에 당신들 공장과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해오지 않았나. 나라 전체로는 손해여도 확실한 지지층만 붙잡으면 된다는 생각인 듯하다. 단세포적인 무리수다.”
 
트럼프의 통상정책은 양자 간 해결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안중에 없는 건가.
“유감스럽지만 그렇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모두 당사자 간 해결을 추구하고 있다. WTO의 다자주의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통상장관 회의가 있는데 2017년 회의에선 공동 선언문도 못 냈다. 미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WTO는 미국이 주도해서 만든 기구가 아닌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출범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대체한 게 WTO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중심이 이동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지적재산권과 서비스 분야의 무역질서를 크게 강화하려 했다. 하지만 ‘1국 1표 합의’ 의사결정 방식을 택하고 있어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하기 어려웠다. 2001년 시작된 도하라운드가 20년 가까이 공전한 게 대표적 사례다. 그래서 미국은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부터 WTO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미국은 WTO에서 그나마 잘 작동하고 있는 게 분쟁해결 기능을 사실상 마비시키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마비시키고 있나.
“분쟁해결 기능을 하는 상소기구는 7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4년간 재임한다. 하지만 미국이 임기가 끝난 위원들의 충원에 반대하고 있다. 올 9월이면 4명이 남게 되는데 한 사건에 대해 판정하려면 최소 3명이 필요하다. 지금도 수많은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 내년 12월이 되면 아예 2명만 남게 돼 기능이 정지될 판이다.”
 
미국이 생각하는 대안이 있나. 대놓고 약육강식으로 가자는 건가.
“오바마 전 대통령 때는 있었다. 미국의 서쪽으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동쪽으론 범대서양무역투자협정(TTIP)를 각각 추진했다.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서비스 산업 주도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TPP 추진을 철회하고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기로 하면서 두 개 모두 사실상 무산됐다. 미국이 제도를 통해 합리적 수퍼파워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추진한 대안이 모두 사라진 셈이다. 결국 남은 건 트럼프식 양자 해결뿐이다.”
 
트럼프 방식이 통할까.
“어렵다고 본다. 미국이 수퍼파워라고 해도 예전만큼의 힘은 없다. 더구나 동지도 없다. 80년대 미국이 일본에 대해 무역흑자 축소를 요구해 ‘플라자 합의’를 끌어낸 것도 사실 무리한 요구였지만 유럽과 공동보조를 맞췄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동지가 없다. 일방적인 철강이나 자동차 관세 부과와 NAFTA 재협상 등으로 오랜 동맹국들도 마음을 돌렸다.”
 
중국이 통 큰 양보를 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럴까 봐 걱정이다. 중국이 미국 상품의 대규모 구매 등으로 무역 흑자를 축소하겠다고 타협안을 내놓을 수 있다. 트럼프도 아마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가짜 항복’일 뿐이다.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작용이 커질 뿐이다.”
 
왜 그런가.
“중국 문제의 핵심은 무역수지가 아니라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다. 심각한 지재권 침해, 외국 기업에 대한 과도한 기술이전 요구, 정부의 지나친 보조금 지급 등이다. 중국이 무역흑자를 줄인다고 해도 이런 근본적인 원인이 해소되지 않으면 일시적인 처방일 뿐이다. 병은 안 고치고 상처에 밴드 몇 개 붙이는 식이다. 공정무역에 입각한 범 세계적인 합의가 아니면 장기적인 개선이 어려운데 양자 합의는 오히려 중국이 빠져나갈 구실을 주는 셈이다. 진단은 맞는데 처방이 틀렸다. 트럼프는 선거용 명분을 얻고 중국은 위기를 모면하겠지만 공정무역이라는 대의는 온데간데없게 된다. 어렵게 구축한 다자주의가 무너지면 국제 교역질서도 흐트러진다.”
 
그렇다고 이미 기능이 약화된 WTO 체제를 이대로 유지할 수는 없지 않나.
“WTO를 보편적 규범으로 하되 지역별 무역협정을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살려야 한다. WTO는 일반법, 지역별 무역협정을 특별법으로 해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주도해야 할 미국이 저러고 있으니 쉽지 않을 것 같다. 주요 강대국들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한국과 같은 나라가 더욱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역전쟁에 대해 미국 내에도 반대가 많지만 트럼프를 지지하는 그룹도 있는 것 같다.
“주로 80년대 팔 비틀기식 압박을 실행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트럼프 주변에 포진해 있다. 대표적으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꼽을 수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 당시 일본 자동차의 대미 수출을 억제하기 위해 쿼터제를 강요했던 인물이다. 이들은 30여년 전의 성공 경험이 지금도 통할 것으로 여긴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정책국장은 잘 알려진 중국 혐오론자다. 이 밖에도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전문가와 지도자 그룹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경제는 세계화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다자주의가 해체되거나 약화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우리는 세계화 없이 살지 못한다. 우리 국내총생산(GDP)이 전 세계의 1.9%다. 작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립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수출을 계속하기 위해 무역마찰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끊임없이 생산기지를 옮겨야 한다. 우리 무역 순위 1, 2위가 중국과 미국인데 중국을 통한 우회수출이 많아 양국 무역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대중 무역 구조도 바꿔야 한다. 지금은 가공생산을 위한 중간재 수출이 압도적이다. 그게 아니라 중국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상품, 화장품이나 인삼, 고급 식품과 같은 중국 내수 소비재를 육성해야 한다. 수출 품목과 시장 다변화도 물론 도모해야 한다.”
 
무역정책은 어때야 하나.
“우선 통상조직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길러야 한다. 통상교섭본부가 15년 동안 외교부 산하 반독립적 기구로 있다가 박근혜 정부 때 갑자기 산업부 산하로 편입됐다. 2013년 1월 당시 대통력직 인수위에서 결정해 발표했는데 나도 TV를 보고 알았다. 본부장인 내게도 정부에서 귀띔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인수위에 달려가 항의하니 자기들도 누가 결정했는지 모른다고 하더라. 통상을 모르니 얼마나 중요한지.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른다. 이후 사람이 바뀌고 조직이 흔들리며 그동안의 노하우를 상당 부분 잃었다. 또 우리가 강점이 있는 FTA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우리가 맺은 FTA가 15개, 대상 국가가 52개국에 이른다. 전 세계 GDP의 73.2%다. 미국과 EU와 동시에 FTA를 맺은 유일한 나라다.”
 
지금의 정부 대응에 문제가 없나.
“김현종 본부장이 워낙 전문가여서 잘 대처하고 있다고 본다. 한미 FTA 재협상만 해도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았다. 다만 ‘안에선 차관, 밖에선 장관’식으로 입지가 애매한데 좀 확고히 해주면 좋겠다.” 
 
박태호 교수는 …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제통상 전문가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지타운대에서 조교수를 하다 1987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귀국했다. 이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원장을 거쳐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했다. 2011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돼 막 발효된 한-미 FTA 이행과 한-중 FTA 협상 개시 과정을 지휘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와 법무법인 광장의 국제통상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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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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