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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맛있다는 관념을 파는 뉴욕의 식당

중앙일보 2018.07.12 10:21
뉴욕의 베스트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일레븐 매디슨 파크. [사진제공=월드50 베스트 레스토랑]

뉴욕의 베스트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일레븐 매디슨 파크. [사진제공=월드50 베스트 레스토랑]

 

김사과의 맨해튼 리얼리티 
 
음식이라는 환상

 
소설가 sogreenapple!@gmail.com 
 
1975년 출간된 앤디 워홀의 책 『앤디 워홀의 철학』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한 나는 크게 안도했다. “유럽에서는 뒤뜰에서 차를 마시는 것조차 근사하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간단하지가 않다. 식당이 괜찮으면 음식이 별로다. 음식이 좋으면 조명이 별로다. 조명이 괜찮으면 환기가 나쁘다.”  
 그렇다. 내가 뉴욕 식당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좌절과 실망은 나 혼자만의 망상이나 콤플렉스가 아니었다.
 뉴욕에 대한 기본적인 이미지에는 풍요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돈이 많고 잘 나가는 도시이니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사려 깊게 들여다본다면 뉴욕만큼 풍요와 정반대의 실체를 가진 도시도 드물다. 솔직히 그 점에 있어서 매일 깜짝깜짝 놀란다. 특히 음식에 대해서 그렇다. 뉴욕에는 온갖 나라의 사람들이 있고, 그러니까 다양한 음식이 있고, 그들이 각자의 풍미로서 식욕을 돋울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뉴욕에서 파는 음식이란 과장하자면 국적기에서 제공되는 기내식의 느낌이다. 오스트리아 항공에서 나오는 비엔나슈니첼, 대한항공에서 나오는 비빔밥, 이탈리아 항공에서 나오는 파스타…. 물론 일등석과 이코노미석의 차이는 분명하고, 바로 그 차이를 200달러짜리 고급식당과 20달러짜리 대중식당에서는 확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운행 중인 비행기처럼 엄청나게 시끄러우며 또한 사람들이 항상 이동 중이기 때문인 걸까?  
 
 그렇다면 뉴욕의 세계적으로 소문난 식당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서도 앤디 워홀이 이미 말해 놓았다. “요새 뉴욕 식당가에는 새로운 경향이 생겼다. 음식이 아닌 분위기(atmosphere)를 파는 것.” 그렇다. 까다로운 뉴욕의 미식가들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에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실제로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근사한 식사라는 모호한 관념이다. 그 모호한 관념적 이미지에 대한 총체적인 체험이다. 그래서인지 뉴욕의 잘나가는 식당에 가보면 테마파크에 가까운 인상이다. 입구에서 환한 미소로 맞이하는 것은 미모의 라틴계 여자, 안내원은 축구 선수 풍의 헤어스타일을 한 백인 남자, 접시를 나르는 것은 잘 차려입은 인도인, 빵을 가져다주는 것은 푸근해 보이는 멕시코인,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등장하는 연예인인지 정치인인지 헷갈리는 비주얼의 요리사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긴장한 듯, 즐기는 듯, 혹은 고문당하는 듯, 살짝 히스테리컬해 보이는 주위의 손님들이다. 상상 속의 코네티컷에서 온 듯한 중상류층 백인들, 공산당 고위직처럼 보이는 예의 바른 중국인들, 그리고 카다시안 패밀리를 연상케 하는 남미에서 온 대가족…. 우리의 식욕을 자극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저 직원들과 손님들,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접시에 담겨 나오는 음식은 무엇인가?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소설가 김사과 [사진작가 수진]

소설가 김사과 [사진작가 수진]

 
 뉴욕에서 식사의 관념화는 식당들을 넘어서 커피숍, 빵 가게, 슈퍼마켓 등으로 무차별 확산된 지 오래다. 커피라는 관념을 마시고, 빵으로서의 관념을 뜯어먹고, 주말 장보기라는 즐거운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값비싼 유기농 슈퍼마켓에 방문한다. 그렇게 잠깐의 흥분이 식고 난 뒤 남는 것은 놀라운 가격이 찍힌 영수증과 정체불명의 식품들. 나는 정말 궁금하다. 뉴요커들은 대체 뭘 먹고 지내는 것일까? 렌틸콩과 로제 와인? 헤로인과 과카몰리?
 길지도 않은 뉴욕에서 지낸 시간, 많은 맛집들이 문을 닫았고 또 많은 맛집들이형편없어졌다. 미국이 경기호황이라고 하는데, 뉴욕에는 계속해서 더 많은, 더 멋진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왜 맛있는 것은 점점 더 찾기가 어려워지는 것일까?  
 뉴욕이 활력이 넘치는 도시라고 한다. 그 활력이라는 것의 실체가 식물인간에게 전기충격을 줬을 때 나타나는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에 가까워 보이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자본주의가 원래 그런 것인가? 혹시 치솟는 부동산가격 때문인가? 이렇게 투덜대는 소리를 하게 된 것은 물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카페의 커피와 베이글이 맛이 없기 때문이다. 
 
김사과 2005년 단편 '영이'로 등단. 장편 『미나』 『0 이하의 날들』. 2016년부터 미국 맨해튼에서 글 쓰며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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