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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너무 서둘러가는 종전선언

중앙일보 2018.07.12 01:08 종합 30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갑자기 먹구름이 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문 대통령은 오늘 싱가포르 방문을 앞두고 가진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등 항구적 평화정착을 견인할 이정표”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체결 65주년인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을 정부 목표로 삼아 북한과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기대를 모았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세 번째 방북에서 별 소득이 없었던 건 북한이 종전선언을 줄기차게 요구한 탓이라고 한다. 그러니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던 종전선언을 실현함으로써 꽉 막힌 북·미 관계의 혈맥을 뚫고 싶어하는 문 대통령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현 상태에서 서둘러 종전선언을 매듭짓는 건 여러모로 문제다. 무엇보다 이렇다 할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종전선언을 하면 북한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은 이제 전쟁 위협이 사라졌으니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할 게 뻔하다. 이를 빌미로 퍼주기식 대북 지원이 이뤄져 김정은 정권의 위협만 키워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섣부른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미국과의 협력에도 커다란 틈이 생길 것이다.
 
게다가 종전선언은 북한과의 관계개선 등에서 협상 카드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별다른 양보도 받아내지 못한 채 선심 쓰듯 북한 측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오죽하면 대표적인 대북 대화파인 문정인 대통령 특보마저 어제 방송에 나와 “(65주년인) 오는 27일 종전선언을 하려면 북한도 구체적인 비핵화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했겠는가. 그러니 정부는 지나친 조바심에 종전선언을 너무 서둘러선 안 된다. 성급하지 않고 신중한 행보가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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