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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충” 과격한 공격에 “페미나치” 역풍도

중앙일보 2018.07.09 00:46 종합 5면 지면보기
지난 7일 열린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열린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혜화역 시위에 나온 여성들은 서로를 ‘성님(형님)’이라고 불렀다. 분노를 상징하는 빨간색 옷을 입고 시위 장소로 입장할 때는 “자이루!”(자매와 인터넷 인사말인 하이루의 합성어)라고 인사했다.

뉴페미니스트<상> 또다른 시선들
몰카 관련 “편파수사 없었다” 발언한
문 대통령 비판 퍼포먼스도 등장
전문가 “남녀 대결로 번지면 안 돼”
뉴페미 측은 “남성 개인 공격 아니다”

 
지난 5월 초에 있었던 홍익대 미대 누드모델 불법 촬영(몰카) 사건은 혜화역 시위의 도화선이었다. 경찰은 수사 의뢰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20대 여성 피의자를 붙잡아 구속했고, 이 과정에서 피의자는 다른 몰카 사건과 달리 언론에 노출됐다. 이를 계기로 성차별 수사 논란이 제기됐다.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편파수사가 아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자 7일 시위에는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을 규탄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곰’(글자를 거꾸로 돌리면 ‘문’)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로 얼굴을 가린 이가 대통령의 발언을 흉내 내면 관중이 야유를 보내는 식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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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광화문 광장에서도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가 열렸다. 여성이 대부분인 5000여 명의 참가자는 ‘독박처벌 독박책임 낙태죄가 웬 말이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낙태죄 위헌 소송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 방면으로 행진했다. 서울 시내 두 곳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잇따라 울려퍼진 것이다.
 
이들은 최근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뉴 페미니스트’(뉴페미)들이다. 주축은 20~30대 여성이고 최근엔 10대들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같은 여성이라는 '자매애' 하나로 뭉친다. 혜화역 시위를 주최한 다음 카페 '불편한 용기' 운영진 100여 명의 경우 서로 여성이라는 것 외엔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대기업 직원 윤모(29)씨는 자칭 '트페미'(트위터+페미니스트)다. 윤씨는 3~4년 전쯤 온라인에서 '김치녀' '개념녀' 등 'OO녀'라는 표현이 유행처럼 번지는 걸 보며 조금씩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져 트위터에 하나 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윤씨는 "여성을 아무렇지 않게 평가·희롱하는 사회의 모습에 점점 지쳐가고 있던 찰나 '5·17 페미사이드'라 불리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터졌고 이후 미투 운동 등을 거치며 '페미니즘은 곧 나를 위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됐다"고 말했다.
 
뉴페미의 가장 대표적인 운동 방식 중 하나는 ‘미러링(Mirroring)’이다. ‘여성 전체를 싸잡아 조롱하던 남자들의 언어를 반대로 비추는 거울처럼 비틀어 보자’는 취지다. “이래서 남자는 밖에 다니면 안 돼” “조신한 남자가 최고” 등 평소 여성이 흔히 듣던 말에서 성별만 바꾼 일종의 반격이다. 
 
일각에서는 ‘한남충’(한국남자+벌레), ‘재기해’(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을 비하한 표현) 등 일부 뉴페미들이 사용하는 미러링 표현을 불편해하기도 한다. 대학생 김모(26)씨는 “혜화역 시위에 나온 취지는 공감하지만 ‘경찰도 한남충’과 같은 발언은 과하다”고 말했다. 7일 혜화역 시위에 참여했던 한 20대 여성은 “불법 촬영을 규탄하는 시위에서 문 대통령을 조롱하는 듯한 퍼포먼스를 한 건 본질을 흐린 행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전복적 방법은 필요하지만 이 방법들이 성 대결 양상으로 번져버리면 출구가 없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에서는 페미니즘을 향한 어긋난 혐오 정서도 커지고 있다. ‘페미나치’(페미+나치), ‘메퇘지’(메갈리아+멧돼지) 등은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스트들을 싸잡아 비하하는 표현들이다. 대학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회사원 김모(24)씨는 “가끔 온라인에서는 일부의 모습만 보고 페미니스트와 여성을 싸잡아 폄하하곤 한다”며 “페미니즘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방법론에 대해선 지금도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혜화역 시위를 주도한 ‘불편한 용기’ 운영진은 “미러링이 거울처럼 비추던 본래의 혐오 표현들이 사라진다면 미러링 표현들도 자연스럽게 퇴색될 것”이라며 “페미니즘은 여성이 겪고 있는 성차별 구조에 대한 저항이지 남성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약자의 운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의 토대를 건드리는 거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만큼 부조리한 부분들이 이미 보편화했다는 의미고,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시위의 파장은 작지 않았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이날 시위를 멀리서 지켜봤다. 여성인권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께 송구스럽고 마음이 무거웠다”고 썼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도 페이스북에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몰카 단속과 몰카범 체포, 유통망 추적 색출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상지·여성국·성지원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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