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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환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중앙선데이 2018.07.07 02:00 591호 14면 지면보기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주연 이지훈·최우혁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1)의 마지막 독백이다. 돌고 도는 말이지만 마치 사랑에 관한 단 하나의 진실처럼 들리는 명대사다. 17년 전 스크린 너머로 가슴을 적신 이 속삭임을 무대에서 들을 수 있다. 극중 17년 만에 나타난 사랑의 환생처럼,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8월 2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로 돌아온 것이다. 2012년 초연 이래 관객들에 의해 꾸준히 ‘다시 보고 싶은 뮤지컬’로 꼽혀왔지만, 제작사 사정으로 공백이 길었다. 세종문화회관의 제작 참여로 오랜만에 빛을 본 새로운 무대의 주인공 이지훈(39)과 최우혁(25)을 만나 이 ‘징한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형이 마흔이라니 깜짝 놀랐어요.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웃음)”(최우혁)


“제가 그렇게 안 보이니까요. 우리 둘이 같이 있으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죠.(웃음)”(이지훈) 


일터에서 만난 지 두어달 된 열 네살 터울의 두 남자 사이엔 어떤 공기가 흐를까. 무대에선 심각한 사랑 연기로 팽팽하게 긴장된 커플이지만, 일상에선 격의없는 수다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제가 감성이 올드한 편이라서요. 20대 친구들이 좋아하는 게임이나 운동을 잘 못하고 오히려 30~40대 형님들과 잘 맞아요. 지훈이 형 특유의 개그가 있거든요. 준비 안한 척 툭 던지지만 웃으면 되게 좋아하는. 덕분에 연습실 분위기도 아주 좋았어요.”(최)
 
“첫날엔 내숭을 좀 떨더군요.(웃음) 딱 보니 까불 것 같은데 예의차리는 척 하는구나 싶었죠. 아니나 다를까, 하루 지나니 바로 장난 치고 엉겨 붙더라구요. 저도 어릴 때 스무살 이상 차이나는 형들을 잘 따랐는데, 꼭 옛날 제 모습 보는 것 같아 좋아요.”(이)  
 
최우혁과 이지훈

최우혁과 이지훈

1996년 고교생 가수로 데뷔해 2006년부터 뮤지컬 배우를 겸하며 다양한 작품을 섭렵해온 이지훈에 비해 최우혁은 2015년 ‘프랑켄슈타인’으로 대번에 뜬 신예다. “신인인데 큰 작품 주역을 맡았길래 관심있게 지켜봤는데, 멀끔하게 잘생기고 노래도 잘하더군요. 스타트 잘 끊은 뒤 밑으로 내려와 차근차근 밟아가는 모습도 보기 좋구요. 아직 어린데 참 잘해요. 저는 20대 후반에 뮤지컬 데뷔했을 때 친구들이 못한다고 놀렸거든요.(웃음)”(이) 
 
중극장이고 색깔이 독특한 작품이라 망설이지 않았나요.  
화려하고 웅장한 대극장과 달리 배우가 많은 걸 채워야하죠. 소박하고 미니멀한 전혀 다른 성격의 뮤지컬이라 선호 관객도 다른데, 이런 공연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도 다가가고 싶어요. 인우 캐릭터의 순수한 모습을 여성 팬들이 봤을 때 ‘나도 저런 애 하나 키웠으면 좋겠다’는 느낌도 받지 않을까 싶구요.(웃음)

사실 저랑 좀 안맞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색이 진한 편이고 선이 굵은 작품을 했었는데, 이건 너무 잔잔한 색깔이니까요. 그래도 지금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역할이고 따뜻한 것을 해보고 싶어서 용기 냈는데, 이렇게까지 따뜻하고 뭉클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이지훈

이지훈

 
영화 원작이니 노래로 승부한다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넘버가 많지 않고 여백이 있는 느낌이에요.  
통상적인 뮤지컬은 아리아적인 노래들이라 ‘노래합니다’ 하고 시작하잖아요. 멋있고 웅장하게 하면 되는데, 이건 그렇게 하면 절대 안 되요. 드라마를 노래 안에서 정확하게 표현해야 전체적인 흐름을 끌고 갈 수 있거든요. 대신 드라마 안에 백그라운드 음악이 많아요. 언더스코어들이 많이 깔려있는데, 인물들 감정 흐름을 음표 안에 다 넣어놓았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인 것 같아요.  

뮤지컬치고 노래가 적은 편이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요. 미세한 감정까지 다 보여주는 영화에 비해 뮤지컬은 관객이 잠깐 눈 비비는 순간에도 흐름을 놓칠 수 있잖아요. 무대 전환이나 앙상블로 분산되는 시점들이 있는데, 이렇게 부서질 듯한 감성들로 이뤄진 세밀한 드라마는 그래서 더 절제가 필요하고 적막이 요구되는 것 같아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중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중에서

기다림이 주는 설렘과도 같은 무대
젊은 날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첫사랑이 동성으로 환생해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지만, “동성애 코드는 전혀 아니”라는 게 이들의 이구동성이다. “시각적으로 보이기에 남자일 뿐, 현빈이 곧 태희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연습실에선 좀 부담스러웠죠.(웃음) 처음 만나는 사이에 얼굴 맞대고 손을 잡는데, 보통 남자끼리 그럴 일이 없으니까요. 근데 무대에서 마지막에 현빈과 손잡고 노래할 땐 정말 태희가 환생한 것 같아요. 가슴이 뭉클하고 이제 정말 놓치고 싶지 않고, 다시 시작하고픈 기분이 들죠.”(이) 


82학번의 슬로우 템포 사랑이야기가 이제 보니 시대극처럼 느껴집니다.  
답답하긴 하죠. 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중간세대라 이해는 되요. 중학교 때만 하더라도 삐삐시대였거든요. 전화하는데도 한참 걸리고, 시간 약속을 해도 늦으면 1시간 이상 기다리기도 하고. 근데 기다림이 줬던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왜 안와’라는 짜증이 아니라 ‘곧 올 것’이라는 설렘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공감이 되는데, 93년생인 얘는 안 될수도 있겠네요.(웃음)  

공중전화 박스부터 낯설죠. 어릴 때부터 전화도 거의 안하고 채팅으로 바로바로 소통하는 세대라, 고백 못해서 빙빙 맴돌고 그런 건 잘 없는 것 같아요.    
 
‘다시 태어나도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나요.
심지어 여자가 남자로 다시 태어난 걸 다시 사랑한다니, 생각만 해도 힘들죠. 현실에서 있기 힘든 판타지인 것 같아요.  

첫 눈에 반하고 영원을 약속하고 이런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어찌됐든 다시는 못할 것 같으니까 극에서라도 해보자 하고 덤비게 됐죠. 작품에서나마 한 사람을 향한 지독한 사랑을 하고 있는데, 한두살 더 먹으면 그런 감성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커튼콜 때까지 감정 몰입이 풀리지 않는 것 같던데.
막판에 감정들이 몰려 있거든요. 동성애자라 비난받으며 모든 걸 다 잃고, 현빈을 만나서 왜 나를 못 알아보느냐고 울며불며 매달리다가 놓치고, 또 교통사고 장면에서 태희를 만나기까지 감정의 폭풍이 몰아치는데, 그걸 바로 털어내기 힘들어요. 공연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보다 태희를 다시 만난 벅참이 커튼콜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요.

엔딩을 둘이 같이 하기도 하고, 혹시 현빈이 여운을 못 받고 감정을 털어버리면 태희를 비롯해 모두가 털리게 되거든요. 마지막 키를 제가 쥐고 있는 셈이라 저는 현빈의 감정보다 태희와 인우의 감정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커튼콜도 그런 마음으로 나가는 거죠.  
 
최우혁

최우혁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극단적 엔딩이지만, 마지막 대사처럼 “뛰어내려도 끝이 아닐 것 같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다시 사랑하기 위해 다시 태어나는 과정일 뿐이란 것이다. “죽음이라는 느낌은 없어요. 다시 만나 사랑하겠구나 싶지 않나요.”(이) “우리들만이 살 수 있는 세상, 우리같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으로 가는 느낌이랄까요. 그저 장소 옮기듯이 가는 거죠.”(최)  


마지막 대사가 여운이 긴데요.  
직접 해보니 감격스럽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교차하더군요. 요즘 사람들은 3개월도 못 넘기는 인스턴트 사랑을 주로 하잖아요. 사랑이란 게 누군가에 대한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의 진정한 모습 볼 때까지 진득하니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대사인 것 같아요.  

저도 그 대사를 좋아해요. 내레이션 나올 때마다 항상 집중해서 듣게 되는데, 매번 진짜 이런 사랑 할 수 있을까 기대감이 드는 순간이에요. 지금껏 보거나 해봤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인데, 언젠간 저도 이해할 수 있겠죠.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기자·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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