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주연 이지훈·최우혁
사랑이란 누군가에 대한
순간적 감정이 아니라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볼 때까지
진득하니 기다리는 것
“형이 마흔이라니 깜짝 놀랐어요.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웃음)”(최우혁)
“제가 그렇게 안 보이니까요. 우리 둘이 같이 있으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죠.(웃음)”(이지훈)

“첫날엔 내숭을 좀 떨더군요.(웃음) 딱 보니 까불 것 같은데 예의차리는 척 하는구나 싶었죠. 아니나 다를까, 하루 지나니 바로 장난 치고 엉겨 붙더라구요. 저도 어릴 때 스무살 이상 차이나는 형들을 잘 따랐는데, 꼭 옛날 제 모습 보는 것 같아 좋아요.”(이)

최우혁과 이지훈
- 중극장이고 색깔이 독특한 작품이라 망설이지 않았나요.
- 이 화려하고 웅장한 대극장과 달리 배우가 많은 걸 채워야하죠. 소박하고 미니멀한 전혀 다른 성격의 뮤지컬이라 선호 관객도 다른데, 이런 공연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도 다가가고 싶어요. 인우 캐릭터의 순수한 모습을 여성 팬들이 봤을 때 ‘나도 저런 애 하나 키웠으면 좋겠다’는 느낌도 받지 않을까 싶구요.(웃음)
최 사실 저랑 좀 안맞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색이 진한 편이고 선이 굵은 작품을 했었는데, 이건 너무 잔잔한 색깔이니까요. 그래도 지금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역할이고 따뜻한 것을 해보고 싶어서 용기 냈는데, 이렇게까지 따뜻하고 뭉클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이지훈
- 영화 원작이니 노래로 승부한다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넘버가 많지 않고 여백이 있는 느낌이에요.
- 이 통상적인 뮤지컬은 아리아적인 노래들이라 ‘노래합니다’ 하고 시작하잖아요. 멋있고 웅장하게 하면 되는데, 이건 그렇게 하면 절대 안 되요. 드라마를 노래 안에서 정확하게 표현해야 전체적인 흐름을 끌고 갈 수 있거든요. 대신 드라마 안에 백그라운드 음악이 많아요. 언더스코어들이 많이 깔려있는데, 인물들 감정 흐름을 음표 안에 다 넣어놓았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인 것 같아요.
최 뮤지컬치고 노래가 적은 편이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요. 미세한 감정까지 다 보여주는 영화에 비해 뮤지컬은 관객이 잠깐 눈 비비는 순간에도 흐름을 놓칠 수 있잖아요. 무대 전환이나 앙상블로 분산되는 시점들이 있는데, 이렇게 부서질 듯한 감성들로 이뤄진 세밀한 드라마는 그래서 더 절제가 필요하고 적막이 요구되는 것 같아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중에서
기다림이 주는 설렘과도 같은 무대
- 82학번의 슬로우 템포 사랑이야기가 이제 보니 시대극처럼 느껴집니다.
- 이 답답하긴 하죠. 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중간세대라 이해는 되요. 중학교 때만 하더라도 삐삐시대였거든요. 전화하는데도 한참 걸리고, 시간 약속을 해도 늦으면 1시간 이상 기다리기도 하고. 근데 기다림이 줬던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왜 안와’라는 짜증이 아니라 ‘곧 올 것’이라는 설렘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공감이 되는데, 93년생인 얘는 안 될수도 있겠네요.(웃음)
최 공중전화 박스부터 낯설죠. 어릴 때부터 전화도 거의 안하고 채팅으로 바로바로 소통하는 세대라, 고백 못해서 빙빙 맴돌고 그런 건 잘 없는 것 같아요.

- ‘다시 태어나도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나요.
- 최 심지어 여자가 남자로 다시 태어난 걸 다시 사랑한다니, 생각만 해도 힘들죠. 현실에서 있기 힘든 판타지인 것 같아요.
이 첫 눈에 반하고 영원을 약속하고 이런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어찌됐든 다시는 못할 것 같으니까 극에서라도 해보자 하고 덤비게 됐죠. 작품에서나마 한 사람을 향한 지독한 사랑을 하고 있는데, 한두살 더 먹으면 그런 감성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 커튼콜 때까지 감정 몰입이 풀리지 않는 것 같던데.
- 이 막판에 감정들이 몰려 있거든요. 동성애자라 비난받으며 모든 걸 다 잃고, 현빈을 만나서 왜 나를 못 알아보느냐고 울며불며 매달리다가 놓치고, 또 교통사고 장면에서 태희를 만나기까지 감정의 폭풍이 몰아치는데, 그걸 바로 털어내기 힘들어요. 공연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보다 태희를 다시 만난 벅참이 커튼콜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요.
최 엔딩을 둘이 같이 하기도 하고, 혹시 현빈이 여운을 못 받고 감정을 털어버리면 태희를 비롯해 모두가 털리게 되거든요. 마지막 키를 제가 쥐고 있는 셈이라 저는 현빈의 감정보다 태희와 인우의 감정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커튼콜도 그런 마음으로 나가는 거죠.

최우혁
- 마지막 대사가 여운이 긴데요.
- 이 직접 해보니 감격스럽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교차하더군요. 요즘 사람들은 3개월도 못 넘기는 인스턴트 사랑을 주로 하잖아요. 사랑이란 게 누군가에 대한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의 진정한 모습 볼 때까지 진득하니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대사인 것 같아요.
최 저도 그 대사를 좋아해요. 내레이션 나올 때마다 항상 집중해서 듣게 되는데, 매번 진짜 이런 사랑 할 수 있을까 기대감이 드는 순간이에요. 지금껏 보거나 해봤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인데, 언젠간 저도 이해할 수 있겠죠.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기자·세종문화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