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디자인의 아이콘, 로싸나 오를란디 컨셉트 스토어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디자이너들의 기발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로싸나 오를란디
넥타이 공장으로 쓰이던 공간이 디자인 혼 가득한 아방가르드적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이곳의 주인 로싸나 오를란디 덕분이다. 작은 체구, 예전 한국의 여인처럼 앞가르마를 타고 단정히 빗어 묶은 희고 긴 머리, 얼굴의 반을 덮을 정도로 시원하게 큰 색안경, 그리고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가는 곳마다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여인. 디자인의 혼이 숨쉬는 로싸나 오를란디의 공간을 중앙SUNDAY S매거진이 찾아갔다.

루이비통 그룹이 만드는 루이나 샴페인을 위해 제작한 샹들리에 ?부케 드 샴페인? 앞에서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마르텐 바스와 함께한 로싸나 오를란디. 사진 타티아나 우츠로바
[Space] 디자이너들의 기발한 스토리텔링이 가득한 곳

2015년 밀라노 엑스포 기간 중 바레인 파빌리온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로싸나 오를란디. 사진 마르코 타바쏘

나비 전등

고릴라 전등
[Story] 각각의 물건들은 스스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
- 어떻게 이 멋진 컨셉트 스토어를 만들 생각을 했나.
- “아이디어를 준 것은 레오나르도 몬다도리(이탈리아 최대 출판기업 몬다도리의 전 회장)였다. 이 공간의 매력에 푹 빠진 레오나르도와 공동사업을 계획했지만, 불행히도 이야기가 나온 지 석 달 후에 그가 세상을 떠났고 결국 혼자 이곳을 오픈하게 되었다. 2년간은 평범하게 지내며 사진 작가들에게 공간을 빌려주곤 하다가 곧 전 세계의 전시회와 박람회를 방문하며 내 취향대로 공간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이곳에서 전시하기를 희망하는 디자이너들과 회사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

현란한 스타일의 전등이 천장을 가득 채운 1층 별관
- 컨셉트 스토어를 열기 전에 디자인 업계에서 경력을 쌓았나.
- “밀라노 마랑고니 패션학교를 나와 패션업계에서 종사했다. 당시 반 친구 중에 모스키노가 있었는데, 천재성을 발휘하던 모스키노는 낙제했고 난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했다. 하하. 어렸을 때 파리 캉봉가 스튜디오에서 코코 샤넬을 만난 적도 있고, 클로에에서 근무할 땐 칼 라거펠트를 위한 협업을 한 적도 있다. 니트 관련 일을 했고 또 이름도 날렸지만, 실험적인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답답한 적이 많았다. 관련업계 환경이 점점 더 감당하기 힘들어져 패션업계를 떠났다. 딸이 살 집을 찾던 중 우연한 기회에 넥타이 공장이었던 이곳을 발견해 2002년 인수했다.”
- 공간이 정말 멋지다. 구성과 디자인에 특별한 전략 같은 것이 있나.
- “무전략이 전략이다. 모두 내 직관과 취향만으로 공간을 꾸민다. 종종 기자들이 디자인 트렌드가 뭐냐고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트렌드 같은 건 없다’고 대답한다. 패션계의 트렌드는 6개월마다 바뀌는 시스템으로 가지만, 집을 위한 오브제들은 삶과 함께 간다. 지금 당신이 ‘금년 트렌드가 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모른다’이다. 좋아하는 것을 애정과 직관으로 구입해라. 그게 전부다. 가치가 있는 물건, 아름답고 좋아하는 물건에게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넥타이 보관함으로 사용되던 상자들이 이제는 로싸나 오를란디 스페이스를 대표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되 었다.
- 올해 디자인 위크 때는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큰 환경문제가 되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제로 ‘죄책감’이라는 타이틀 아래 이벤트를 진행했다. 성과는 어땠나.
- “디자인 위크를 준비하던 막판에 이벤트 진행이 결정됐다. 아티스트들에게 부랴부랴 연락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이들 중 불참자는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싶어해 큰 감동을 받았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디르크 판데르 코이, 누클레오, 마씨밀리아노 아다미, 알레산드로 멘디니, 펜타토닉, 알카롤, 두치오 마리아 감비, 안드레우 카루야 등 정말 많은 아티스트들이 와주었다. 이들은 플라스틱 재활용의 천재들이었다. 플라스틱 생선상자, 혹은 서프보드 등을 재활용해 제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작가들도 있다. 이들의 작품 덕분에 정말 멋지고 의미있는 정원을 만들 수 있었다.”

둥근 기 둥 형태의 서랍장
- 입구 옆에 있는 레스토랑을 리모델링해서 새로 오픈했던데.
- “원래 있던 레스토랑의 실내 디자인을 바꾸고 밀라노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아이모&나디아와 협업해 최고의 요리를 맛 볼 기회를 만들었다. 이름은 ‘비스트로(BistRo)’(러시아어로 빠르다는 뜻으로, 신속하고 저렴하고 가볍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을 말함)의 끝에 로싸나 오를란디의 로고인 Ro를 삽입해 지었다. 공식 오픈 전에는 남편과 매일 점심을 먹으며 고객들에게 제공될 음식을 미리 맛보았다. 벽지, 가구 등 인테리어 디자인은 홈 라인이 있는 패션브랜드 에트로의 스폰서십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뒷마당의 휴식공간
- 당신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다. 모두 무(無)에서 생겼다. 그 후에 훌륭한 디자인, 예술작품 등을 언급할 수 있다.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그 안에 담긴 하나하나의 요소들로 우리를 감동시킨다. 어떤 분야의 어떤 물건이라도 상관없다. 각각의 물건들은 스스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개개인이 다르게 느끼는 지극히 주관적인 아름다움이다. 그것이 디자인이다.”

입구 철창에 장식된 로고
- 디자인과 아트는 무슨 차이가 있나.
- “종종 화랑들이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예술작품으로 강력히 추천하기도 한다. 이들은 유일한 작품이거나 한정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자이너들이 만든 작품도 예술품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디자이너 본인이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그들의 창조물이 예술의 경지에 오른 것이지 이들이 예술품이 되지는 않는다. 개인적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다루기 민감한 문제다. 그런 까닭에 난 화랑들이 예술품이라고 소개하는 작품들에 동의하지 않을 때도 있다.”

뒷마당에 놓인 형형색색의 디자인 가구들.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 어떤 디자이너, 아티스트와 협업을 선호하나.
- “재능있는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것을 좋아한다. 젊은이들과 나누며 뭔가를 창조하고 기획하는 것은 정말 신난다. 초창기에는 유럽 전역에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젊은 신인들을 발굴해 작품과 함께 스스로를 소개할 기회를 마련하곤 했다.”
- 그래도 꼭 협업하고 싶은 디자이너나 아티스트가 있다면.
- “셀 수 없이 많지만 나로부터 언급되지 않아 섭섭하게 느끼는 디자이너가 있을까봐 이름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 내가 좋아하고 기회만 있었다면 꼭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물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불가능하지만.” ●
밀라노(이탈리아)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S매거진 유럽 통신원 sungheegioiell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