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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집안 일 끝내고 거울 앞에 서는 까닭

중앙일보 2018.07.05 07:02 종합 20면 지면보기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12)
[사진 pxhere]

[사진 pxhere]

 
거울 앞에서
 
나는 여인이 거울 앞에 앉아
화장하는 모습 지켜보기를 좋아한다
 
화장한 얼굴로 나서는 수줍음은
자기를 감추는 게 아니다
젖은 손 앞치마에 훔치고
울렁이는 마음을 진정이며
오늘을 다른 하루로 만들어
일상을 축복하듯
다가오는 여인을 사랑한다
 
나는 여인이 가꾸는 향기
코티 분 냄새를 좋아한다
어머니 품 내라서 더 좋다
 
요새 가끔 그녀도 화장을 잊는다
날이 갈수록 날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억울해하면서
뭐라 놀란 내색은 않았지만
대신 내가 군살 좀 빼야겠다
안팎에서 묻은 때를 덜어내야 하겠다
 
나를 비추는 거울 속에서
여인이 화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해설] 사랑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여인의 나이는 고정되어 있다. 남자보다 여인은 조숙하나 천천히 늙어 간다. 그래서 여인은 어릴 적에는 그의 누나였고, 그가 뒤늦게 사춘기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친구 대접을 해준다. 남자가 사랑할 준비를 하였을 즈음에야 여인은 연인이 되었다. 그리곤 꼭짓점에서 내려오지 않는 우상으로 오래 남는다.
 
여인이 거울 앞에서 세심하게 화장하는 건 겉꾸밈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여인이 매일 거울 앞에 서는 행위는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다. 하나의 전례 의식이다. 의식은 오늘이 어제와 같지 않음을 기억하고 축복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를 다른 날과 다르게 창조하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면까지 읽어보는 자신만의 시간, 화장하는 순간
여인이 거울 앞에서 세심하게 화장하는 건 겉꾸밈이 아니다. 하나의 전례 의식이다. [사진 bigsmile]

여인이 거울 앞에서 세심하게 화장하는 건 겉꾸밈이 아니다. 하나의 전례 의식이다. [사진 bigsmile]

 
하루를 자신의 아이들과 남자보다 일찍 시작하고 늦게 마쳐야 하는 여인의 일상. 그 지루하고 티 나지 않는 집안일은 자칫 여인을 무의미한 나락에 빠뜨릴 수 있다. 그럴 때 여인은 거울 앞에 다가간다. 자신을 살피는 전례 의식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읽어보는 자신만의 시간이다. 그 시간이 기쁨일 때 여인은 행복을 느낀다.
 
남자는 여인을 비추는 거울 곁에 서서 전례 의식을 돕는 복사가 되어야 한다. 하루를 축복하는 제사장의 몸짓에는 우아한 가락과 운율이 있다. 복사는 그 가락과 운율이 어긋나지 않게 협조해야 한다. 조용히 그러나 적극적으로 전례 의식에 참여해야 한다. 복사의 눈빛에는 사제를 향한 존경심과 감사가 담겨야 한다. 어깨와 허리에는 고요한 기다림이 담겨야 한다. 평소에 부풀어 올랐던 그의 어깨는 차분해져야 한다.
 
외출 준비가 다 됐더라도 남자는 시계를 들여다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추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녀가 볼 수 있도록 거울 한 귀퉁이에 자신의 모습을 자그마하게 등장시켜야 한다. 양복과 넥타이 색깔이 어울리는지, 머리칼은 단정한지, 셔츠는 깔끔하고 무엇 하나 튀지 않는지 검증을 받아야 한다. 슬쩍 뒷모습도 보여주는 연출도 해야 한다.
 
가끔 그녀가 요청하기 전에 여신을 향한 찬미가를 한 소절쯤 노래해야 한다. 여인은 남자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있기에 여신이다.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걸 능숙하게 하는 자에게 존경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 거룩한 이치를 받아들여야 찬미가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여인에게 사랑은 늘 현재진행형
여인에게 사랑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므로 여인들은 남자보다 자신이 더 사랑한다고 느낀다. [사진 freeqration]

여인에게 사랑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므로 여인들은 남자보다 자신이 더 사랑한다고 느낀다. [사진 freeqration]

 
남자에게 사랑은 시각과 더불어 찾아오지만 여인은 귀로 들어야 사랑을 완성하게 된다. 남자는 자주 자신이 시작한 사랑을 완성된 것으로 착각한다. 남자는 사랑이 너무 크고 갑작스럽게 선물처럼 찾아왔기에 더 키워야 한다는 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인에게 사랑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인들은 남자보다 자신이 더 사랑한다고 느낀다.
 
사람은 무엇인가 깨닫고 받아들여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누군가와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건 자신에 대해서는 객관적이 되고 남에게는 주관적이 되는 일이다. 타자의 시각으로 자신을 살펴보는 게 우정이며 사랑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랑만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사랑은 둘 사이에 다름과 차이가 있기에 빠지게 된다. 사랑은 영원한 다름과 차이를 받아들이고 그러나 순간순간 동일성을 발견하면서 기쁨을 얻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미세한 이끌림을 유지해야 한다. 다름과 차이를 그저 수수방관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도 하나로 무작정 일치시켜도 안 된다. 자칫 강요와 폭력이 된다.
 
거울은 대상이 다가오면 비추고 대상이 떠나면 동시에 떠난다. 동일성이 아니라 관계성을 유지한다. 사랑도 거울이다. 내가 곁에 있어야 비로소 비춘다. 사랑이 지닌 관계성을 잊지 말아야 사랑은 기쁨이 된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whata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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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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