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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 준 기술 통째 달라" 中, 177조 들고 반도체 사냥

중앙일보 2018.07.02 00:55 종합 1면 지면보기
한국 반도체산업이 호황을 맞았지만 중국의 빠른 추격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직원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한국 반도체산업이 호황을 맞았지만 중국의 빠른 추격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직원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장비업체 ‘쎄믹스’의 유완식 대표는 최근 중국으로부터 합병 제의를 받았다. 쎄믹스는 반도체 검사 장비인 ‘웨이퍼프로버’에서 세계 3위 안에 드는 강소기업이다.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중국에 공장을 짓고, 장비를 구입하고, 연구개발(R&D)에 드는 모든 비용을 내겠다는 것이다. 지분은 중국 업체 51%, 쎄믹스 49%를 제안했다. 유 대표는 “합작하면 중국 시장을 확보할 수 있어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몇 년 뒤 기술만 빼앗기고 허수아비가 될 가능성이 있어 고심 끝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불안한 호황’에 놓였다. 중국의 거센 도전이 본격화되고 있는 데다 반도체의 호황이 막바지로 향해 간다는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오면서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堀起)’ 정책의 일환으로 2025년까지 1조 위안(약 177조원)을 투자해 13.5%(2016년)인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중국이 한국 반도체 수출 물량의 40%를 사들이고 있어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은 직격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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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반도체 업계를 향한 중국의 손길이 치밀하고 대담해지고 있는 것도 반도체 굴기의 일환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연말 메모리 반도체를 양산하겠다고 선언한 중국이 한국의 기술과 인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며 “기업 합병은 이 둘을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제조 공정 관련 업무를 맡은 한모(41)씨는 최근 중국 반도체 업체로의 이직 제안을 받았다. 현재 연봉의 5배를 더 주고, 외국인만 사는 고급 빌라와 초등학생인 자녀의 국제학교 학비를 5년간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한씨는 “대개 5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는데 그 전에 해고한다는 얘기도 들려서 일단 고사했지만 아직도 고민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삼성전자를 퇴사한 A씨는 같은 해 11월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제조) 업체 SMIC에 입사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14나노 핀펫 공정을 개발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SMIC는 A씨 영입 이후 14나노 핀펫 공정을 완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에 노골적인 주문도 넣고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 중국 시안 공장에 납품한 장비를 그대로 공급하라는 식이다. 삼성전자의 노하우를 거저 가져가겠다는 의미다.
 
최재성 극동대 반도체장비공학과 교수는 “기술과 인재를 빼앗긴다면 거의 유일하게 세계 정상에 있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은 한순간”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은 하반기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상반기(42.5%)보다 크게 둔화한 15.9%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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