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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 폐품으로 만든 분수대, 어떤 토목공사보다 뿌듯

중앙일보 2018.07.01 09:00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6) 
밤늦게 산막에 와 한잠 잘 잤다. 잠이 보약이란 말 그대로 가뿐한 마음으로 일어나 데크며 벤치며 원두막이며 쓸고 닦고 여름 손님맞이 채비를 한다. 분수도 틀고 오디오도 점검하고 곳곳에 쌓인 먼지며 낙엽이며 모두 모아 솔가지와 함께 태운다. 
 
장미꽃을 보고 어린 새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멀리서 울리는 천둥소리를 들으니 이제 바야흐로 여름이 왔음을 느낀다. 개울 건너 과수원에는 부지런한 농부의 손놀림이 재바르고, 곡우는 며칠 배운 가드닝으로 소나무 가지를 치니 머지않아 울긋불긋 열린 복숭아 자두의 향연을 볼 것이다. 나는 드디어 원두막에 오른다. 바야흐로 나의 여름이 온 것이다.
 
고물상의 플라스틱 통으로 만든 분수대  
산막을 수놓은 여름꽃들 [사진 권대욱]

산막을 수놓은 여름꽃들 [사진 권대욱]

 
여름이면 늘 13년 전 산속에서 홀로 살 때 등짐을 져 나른 경계석과 고물상의 섬유강화플라스틱(FRP) 통으로 만든 분수대를 보며 느꼈던 뿌듯함과 행복감이 생각난다. 내가 워낙 눈, 비 오는 것을 좋아하고 물소리를 좋아하다 보니 원두막 주변을 정리하는 김에 분수대 하나 만들 생각을 하게 됐다. 
 
이곳저곳 눈동냥, 귀동냥, 발품을 꽤 판 끝에 대략 가격을 알아보니 인도네시아산이 약 80만~200만원 선, 중국산이 약 200만~300만원 선이었다. 별것 없이 모양만 그럴싸한데 그 가격을 지불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대안을 모색하느라 원두막에 앉았다, 누웠다 하며 골똘히 궁리하던 중 문득 한 쪽 귀퉁이에 처박아 놓은 경계석이 눈에 들어왔다. 
 
일이 되느라 그랬던가, 얼마 전 보도석으로 깔까 하고 구매했던 맷돌까지 한눈에 척 들어왔다. 마침 구멍까지 두 개나 뚫어져 있으니 분수대 받침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싶었다. 곧장 설계에 들어가 1m짜리 경계석 4개를 우물 정(井)자로 배치하고 그 위에 지름 약 30cm의 맷돌을 얹은 후 고무호스로 물을 틀었더니 제법 시원한 물줄기가 하늘로 치솟으며 분수대 꼴이 잡혔다. 그럴싸했고 또 화강석 재료와 주변의 적벽돌 포장도 잘 어울렸다. 
 
이제 정식으로 분수대를 설치할 차례다. 분수대를 설치할 장소에 적벽돌 포장이 돼 있는 상태라 적절한 물받이와 자연 배수장치가 필요했다. 분수대의 물은 가장 근접한 상수관로를 잘라 쓰기로 하고 적절한 지점을 찾았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수압이나 유속 등 모든 것이 다 좋았지만, 밸브를 최대한 열었을 때 상당량의 물이 포장 면에 그대로 쏟아져 배수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번거롭지만 배수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강우 시나 분수대 완전가동 시 포장 면이 취약할 수 있으니, 5cm 자연 원류 관로 매설 시 파놓은 포장 면을 약간 낮추어 자연 배수를 유도키로 했다. 걱정 하나를 해결한 것이다. 
 
다음은 강제 퇴수 장치 문제다. 항상 물을 틀어놓고 있다면 별문제가 없겠으나 장기간 집을 비우거나 퇴적물이 쌓였을 때나 청소가 필요할 때는 필요한 장치다. 특히 자연수를 이용하는 우리 집의 경우 장시간 방치할 경우 해충이나 녹조가 생길 확률이 아주 높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수중 펌프를 설치해 강제 배수하려고 펌프를 사러 공구상에 들렀는데, 언뜻 눈에 들어온 물건이 있었다. 
 
플라스틱 깔때기! 얼마냐고 물으니 단돈 1000원. 즉각 실험에 돌입한 결과는 대성공이다. 용량이 적어 배수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물은 잘 빠졌다. 게다가 물속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토사나 부유물 등을 보이는 대로 빼낼 수 있고 펌프도 전기도 필요 없으니 얼마나 좋은지! 
  
여름으로 가득 찬 산막의 모습 [사진 권대욱]

여름으로 가득 찬 산막의 모습 [사진 권대욱]

 
이런저런 곡절 끝에 그런대로 쓸만한 분수대 하나가 만들어졌다. 투입된 비용을 계산해보니 시중에서 살 때와 비교해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적은 비용으로 만들었다는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스스로 무얼 구상하고 만들었다는 성취감과 심리적 만족감일 것이다. 비록 작은 분수대 하나였지만 여기에는 토공, 설비, 배관, 포장 공사, 콘크리트 공사, 조경 등 토목공사의 전 공정이 망라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리학 역학을 바탕으로 한 설계와 자재구매, 시공, 사후관리에 이르는 공사의 전 과정이 녹아있다. 과거 30년을 건설에 전념해오며 세계 곳곳에 댐을 만들고 펌프장을 건설하며 수천 km의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던 그 시절에는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성취였다. 
 
제작비용은 시중 가격의 3분의 1 정도 
무엇이 다를까? 대답은 자명하다. 그때는 남의 일이었지만 지금은 나의 일인 것이다. 스스로 무얼 생각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며, 땀 흘린다는 사실이 주는 성취와 만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원두막에 누워 시원스레 물줄기 뿜는 나의 분수를 바라보며 산막의 한여름은 또 그렇게 하루가 갔다. 언제나 쉬지 않는 상상과 열정으로 푸르른 나래를 펴며.
 
오늘도 나는 눈을 감는다. 눈을 좁혀 산막 계곡 공사장에 초점을 맞추고 저긴 저렇게, 거긴 그렇게 마음의 청사진에 선을 긋고 색 입히고 그림을 그린다. 굴삭기 운전사가 되기도 하고, 측량기사가 되기도 하고, 목수에 벽돌공에다 때론 인부가 되기도 한다. 땅 파고 쌓고 고르고, 그 위에 들어설 온갖 구조물이며 집이며 기초공사에서 내부 인테리어와 조경공사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머릿속에 그려 넣고 하나하나 시행해본다.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우는 분수대 만들기 [사진 권대욱]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우는 분수대 만들기 [사진 권대욱]

 
버려진 나무는 잘 가공해 화목으로 쓰고 예쁜 돌들은 잘 골라 담장을 만든다. 여기는 연못, 거기는 아크로폴리스 광장, 저기는 야영장, 저기는 숙소, 저기는 목욕탕 이렇듯 하나하나 그려가다 보면 어느덧 나의 가슴은 뛰고 초점을 잃은 눈은 생기를 찾는다. 왜랄 것도 없이 나는 그냥 가슴이 뛰고 눈이 반짝이게 된다. 
 
때론 이 꿈이 다른 무엇일 때도 있지만 확실한 실체를 가진 구체적 꿈일 때라야 눈이 반짝이고 가슴이 뛴다. 삶이 무미하고 단조롭고 시들해질 때 그 생각만 해도 눈 반짝거리고, 가슴 뛰는 그런 꿈 하나쯤은 가져야지 않겠는가? 나만이 나를 위로할 수 있는 험한 세상, 그 꿈을 꿀 때 나는 행복하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갖게 된다. 그런 꿈 하나씩 가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돈 몇푼 더 벌고 의미 없는 허명에 목숨 거는 것보단 훨 낫지 않겠는가?  
 
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사장 totwkwon@ambat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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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욱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필진

[권대욱의 산막일기] 45년 차 직장인이자 32년 차 사장이니 직업이 사장인 셈이다. 일밖에 모르던 치열한 워커홀릭의 시간을 보내다 '이건 아니지' 싶어 일과 삶의 조화도 추구해 봤지만 결국 일과 삶은 그렇게 확실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애써 구분할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삶 속에 일이 있고 일속에 삶이 있는 무경계의 삶을 지향하며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강원도 문막 산골에 산막을 지어 전원생활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60이 넘어서야 깨닫게 된 귀중한 삶과 행복의 교훈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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