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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탕 도박장서 검거한 중년여성이 열어준 소설가의 길

중앙일보 2018.07.01 07:00 종합 20면 지면보기
[더,오래] 인생환승샷(2) 경찰에서 작가로, 장연진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내가 30대 초반에 삶의 노선을 바꾸게 된 건 어쩌면 첫 직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예정돼 있었는지 모른다. 대입 재수를 하기 위한 경제적 자립의 방편으로 경찰 공채시험을 봤으니 말이다. ‘재수 기간까지 합쳐 5년 후 대학을 졸업하면 꼭 내 길을 찾아 떠날 거야.’ 운 좋게 첫 시험에 합격해 경찰종합학교로 교육을 받으러 가면서 한 다짐이 이러니 철딱서니도 이런 철딱서니가 없다.
 
그런데도 조직은 이렇게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내게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교통 내근 및 외근, 홍보 활동, 경호, 대민 봉사, 심지어 형사 업무까지. 그런데 여자형사기동대 근무가 내 퇴직을 재촉했다. 부서 자체가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탓도 있지만, 형사 업무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을 발령 낸 게 문제였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집필 공간인 포란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 [사진 장연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집필 공간인 포란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 [사진 장연진]

 
한번은 쑥탕에서 중년여성들이 도박한다는 신고를 받고 대원들과 출동했는데 검거가 된 이들 중에 이미 전과가 있는 사람이 있었다. 법규상 누범은 구금하게 돼 있어서 내 눈앞에서 바로 유치장에 수감이 됐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를 범법자로 보기 이전에 나와 같은 한 인간으로만 보고 내가 한 사람의 신체를 구속했다는 생각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저 사람은 법을 몇 차례나 어겼고 우리는 정당한 법 집행을 한 거라고 자신을 아무리 설득해도 유치장에 수감되던 그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쓴 채 펑펑 우는데 신임도 아니고 아직도 경찰 본연의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직업의식에 근본적인 회의가 일었다. 그 끝에 더 방황하지 말고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날 채비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초심보다 5년이 더 걸려 10년 만에 마침내 인생 환승을 시도했다. 뒤늦게 찾은 소설가의 꿈을 좇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잠시 대학원에 들어가 소설을 배우고 쓰는 행복한 시절도 있었지만, 마치 내 의지를 바닥까지 시험하겠다는 듯 가정사가 번번이 내 발목을 잡아 부러뜨리려 했다. 예정에 없던 둘째가 들어서는 바람에 시작부터 차질이 빚어진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경찰 공무원 시절 미아 보호 활동 홍보용으로 찍은 사진. [사진 장연진]

경찰 공무원 시절 미아 보호 활동 홍보용으로 찍은 사진. [사진 장연진]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집필실까지 얻었는데 이혼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설상가상으로 이혼한 지 7개월 만에 둘째가 뇌출혈을 일으켜 대수술까지 받았을 땐 내 운명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냥 빌 뿐이었다. 평생 아이 뒷바라지만 해도 좋으니 그저 살려만 달라고.
 
두 아이가 아침마다 회사나 학교에 가면, 나는 매일같이 세상 가까운 곳으로 출근한다. 여느 직장인처럼 머리를 감고 기초화장을 하고 옷까지 깔끔하게 갖춰 입은 채 바로 내 서재, 포란실(抱卵室)로.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둘째가 돌아오기까지 불과 네댓 시간. 그 한 줌의 시간이 주어지기까지 몰아친 폭풍우를 생각하면 천금보다 소중해 그렇게 나만의 의식을 치르며 책상 앞에 앉았던 게 버릇이 됐다.
 
그러고는 한 편의 소설을 부화하기 위해 주제를 담을 얼개를 짜고 그 안에서 각각의 인물이 살아 꿈틀거릴 수 있도록 착상의 몸살을 끙끙 앓는다. 내가 창조한 작중 화자가 상황에 맞게 문장을 구성하고 적확하게 단어를 구사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쉴 새 없이 사전을 뒤지기도 한다.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나도 모르게 해찰을 피우기 일쑤다. 덤으로 우리말을 되새기고 퍼뜨리는 지킴이 노릇을 하는 것 같아 스스로 기꺼워하면서.
 
천생이 미욱해 그렇게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소설들이 번번이 감별의 문턱을 넘어서진 못했지만, 나는 오늘도 묵묵히 그 고독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세상 누구의 간섭도, 통제도 받지 않는 오직 나만의 시간! 나는 왜 이 무급의 시간이 이토록 좋은 걸까.
 
[더,오래] 인생환승역 개통 이벤트
 
인생 환승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더,오래]가 새 홈페이지 오픈 기념으로 독자 여러분의 인생 환승 사연을 공모합니다.
 
인생 환승을 통해 여러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무엇이 힘들었고 어디서 보람을 찾았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눠주세요.  
인생 환승에 도전한 본인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지인도 응모할 수 있습니다. 한달 동안 공모한 사연 가운데 4분을 뽑아 가족 여행상품권을 드립니다.  
 
▶보내실 내용: 과거와 현재 달라진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상세한 사진 설명 포함)과 1000~1500자 분량의 사연 글  
▶보내실 곳: 중앙일보 시민마이크 인생환승샷 이벤트 페이지(http://peoplemic.joins.com)  
▶응모 기간: 6월 30일(토)~7월 31일(화)  
▶시상:    
1등 여행 상품권(1명, 300만원)  
2등 여행 상품권(1명, 100만원)  
3등 여행 상품권(2명, 5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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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더오래 더오래팀 필진

인생환승을 꿈꾸는 사람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더,오래'를 만듭니다. 물리적인 환승은 물론, 정신적인 환승까지 응원합니다. 더,오래와 함께 더 나은 삶을 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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