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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료 20여명이 재기 밑거름…제주도 명소된 '브릭 캠퍼스'

중앙일보 2018.06.30 17:00
[더,오래] 이상원의 소소리더십(24) 
얼마 전 ‘효리네민박2’에 소개된 이후 제주도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곳이 있다. 280만 개가 넘는 브릭으로 만들어진 250여 개 작품이 전시된 ‘브릭캠퍼스’이다. 작년 12월 중순 문을 열었으니 이제 6개월 조금 지났을 뿐인데 벌써 제주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되었다. 단순히 작품만 둘러보는 갤러리가 아니라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는 체험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관람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제작진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어요. 가면서 방송에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죠. 방송 나간 후에 갑자기 많은 분이 찾아줘 기쁘면서도 얼떨떨합니다."

 
쑥스럽게 웃는 장현기(46) 대표의 모습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어떻게 제주도에 이런 공간을 만들 생각을 했어요?” 질문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장 대표의 입에서는 “그게요, 실패한 얘기부터 해야 하는데요…”로 시작해 한 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가 술술 흘러나왔다.
 

제주도 핫플레이스로 손꼽히는 ‘브릭캠퍼스’ 정원의 브릭 돌하르방과 장현기 대표. [사진 이상원]

 
장 대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위 잘 나가던 정상급 공연연출 기획자였다. 워커힐호텔 무대감독으로 출발해 2000년대 초 큰 인기를 끌었던 ‘팬 양의 버블쇼’의 연출을 맡아 국내에 소개했고, 월드투어에 이어 뉴욕 브로드웨이 전용관 공연(현재도 공연 중)으로까지 이끌었다. 
 
박효신, 박진영, 자우림, 박정현, 성시경, 김연우 등 당시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콘서트를 연출했고 30대 나이에 대기업 계열 공연기획사의 사업본부장을 맡아 다수의 공연장을 짓고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이 시절을 얘기하는 장 대표의 표정은 그다지 밝게 느껴지지 않았다.
 
잘 나가던 공연기획사 사업본부장 때 사표 던져

"전성기였죠. 정말 바빴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친구도 거의 못 만날 정도로요. 그러다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서 지쳤던 것 같아요. 가족과 동료 모두가 말렸지만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왔어요. 한숨 돌리기 위해 나왔는데 진짜 위기가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출연진 100명, 오케스트라 50명 등 초대형 콘서트로 큰 화제가 되었던 2009년 박효신 10주년 기념공연 무대(좌)와 연출가 자리의 장현기 대표(우). [사진 이상원]

출연진 100명, 오케스트라 50명 등 초대형 콘서트로 큰 화제가 되었던 2009년 박효신 10주년 기념공연 무대(좌)와 연출가 자리의 장현기 대표(우). [사진 이상원]

 
장 대표는 2014년 말 회사를 나와 예전에 설립해 뒀던 자신의 회사 ‘웨이즈비(WAYSBE)’를 통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시운영권을 따냈다. 쟁쟁한 회사들과 경쟁이 치열했지만 장 대표의 화려한 경력이 큰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 전시회로 인해 회사와 장 대표 모두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당시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작품도 워낙 좋았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던 콘텐트였기 때문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요. 전시회 오픈 얼마 전에 전시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오기 전까지는요.

전시관의 성격과 맞지 않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시회를 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글이었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오픈 이틀 앞두고 일방적으로 전시관 측에서 대관 취소 통보를 했습니다. 저희는 눈물을 머금고 이미 예매한 수 만명의 고객에게는 전액 환불해 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법원에 대관취소중지가처분 신청을 한 끝에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지요. 엄청난 빚만 남았어요. 1년이 지나 대학로에서 다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다른 전시관에서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더욱이 이전에 전시 준비하면서 만들어 뒀던 작품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 욕심을 냈던 거죠.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났습니다. 전시회 일정이 2015년 4월 4일부터 8월 30일이었는데, 5월 초 메르스 사태가 터졌습니다. 전시관은 물론, 대학로 일대에 아예 사람이 지나다니지를 않았어요. 오히려 더 많은 빚만 지고 10년을 유지해 오던 회사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차례의 전시 사업 실패로 수십 억 빚더미  
어려울 때부터 장현기 대표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브릭캠퍼스 스탭 및 작품 출품 작가들 모두와 함께 [사진 이상원]

어려울 때부터 장현기 대표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브릭캠퍼스 스탭 및 작품 출품 작가들 모두와 함께 [사진 이상원]

 
잠깐 사이에 수십 억원의 빚만 지고 실패를 맛봤던 시기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를 이어갔다.

"살던 집, 타던 차를 다 팔고 본가 처가 할 것 없이 돈을 구해 대출받아 급한 불부터 끄기 시작했습니다. 고생한 스태프들, 파트너 업체들에게 약속한 보상은 꼭 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제작비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주위에서는 파산신청을 하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저를 믿어주신 분들께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조금씩이라도 갚겠노라 약속을 했고, 감사하게 지금까지도 많은 분이 기다려 주시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제 어려움을 핑계로 신뢰를 저버리지 않은 것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요. 그때 포기했더라면 제 인생은 아마 거기서 끝이 났을 거예요."

 
2016년, 그를 오래 전부터 도와주던 공연계의 한 선배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유명 캐릭터의 전시를 제주도에서 해 보라고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가족·동료들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 전시는 점차 자리를 잡아갔고 제주도에 대해 조금 알게 됐을 때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예전에 전시회 준비를 하던 중 우연히 브릭아트를 알게 됐어요. 백방으로 전문가를 찾아다니다가 국내 유일의 LCP(Lego Certified Professional, 레고공인전문가) 김성완 씨를 만났어요. 레고사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레고 전문가입니다. 한 마디로 공인받은 최고의 브릭 아티스트죠.

새로운 세계에 흥미를 느껴 연락하고 지내던 중 제가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못 만나고 있었는데, 제주도를 점차 알게 되니 ‘제주도에 상설로 브릭아트 뮤지엄이 생기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거의 1년 만에 전화를 드렸어요. 이때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부지와 건물 문제가 해결되고, 어렵사리 투자유치에도 성공했습니다.

계속 곁을 지켜주던 동료들에 더해 과거 오랜 기간 함께 했던 각 분야 최고의 전문 스태프가 하나둘 제주도로 모여들었어요. 기적 같았습니다. 이처럼 지금의 ‘브릭캠퍼스’는 제가 만든 것이 아니에요. 주위에서 만들어 주신 겁니다."

 
4월 중순 ‘효리네민박2’에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던 브릭캠퍼스 장면. [사진 효리네민박2 방송캡처]

4월 중순 ‘효리네민박2’에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던 브릭캠퍼스 장면. [사진 효리네민박2 방송캡처]

 
브릭캠퍼스에서 가장 자랑하고 싶은 점 하나만 소개해 달라고 했다.

"브릭 아티스트의 작가 세계가 관람객들에게 잘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작품 전시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체크해 본 아티스트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습니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입장하자마자 ‘와~’ 하면서 크게 감탄합니다. 얼마 전 어느 분께서 ‘아날로그의 혁명’이라며 극찬을 해 주시더라고요."

 
포기하기 쉬운 어려운 상황에서 다시 힘을 내 재기할 수 있던 비결이 궁금했다.
 
다시 모인 옛 동료들과 재기 시동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너무 힘들던 시절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면서 스마트폰을 비행 모드로 바꿔 놓으면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빚 독촉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까요. 너무 힘들 때는 그냥 이대로 비행기가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이제껏 고마운 분들 생각하면서 버텼습니다.

가족, 가장 어려운 시절 도와준 공연계 선배와 프로듀서 친구, 제주도에서 만난 큰 도움주신 분들, 무엇보다 저희 회사에서 끝까지 남아 버텨준 동료와 제주도로 날아와 브릭캠퍼스에 합류해준 옛 동료들, 그리고 멋진 작품들 기꺼이 출품해준 최고의 브릭작가들까지 제게는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더군요. 일이 안 풀릴 때 제가 참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탄도 많이 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저는 진짜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힘들 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가족과 함께 브릭캠퍼스 준비하던 중 제주도에서. [사진 이상원]

힘들 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가족과 함께 브릭캠퍼스 준비하던 중 제주도에서. [사진 이상원]

 
미안하지만 말을 잠깐 끊었다. 가만있으면 고마운 사람 소개가 끝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이제 겨우 재기에 성공했는데 앞으로의 꿈이 궁금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아직 남은 빚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분들인데 무슨 일이 있던 꼭 책임을 질겁니다. 빚을 갚는 것은 당연하고 저에게는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좀 막연한 생각이었다면, 브릭캠퍼스를 만들고 난 지금은 보다 선명해진 꿈입니다. 저에게 좋은 회사란 첫째,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 둘째, 동료들과 비전과 보상을 함께 나누는 회사. 셋째,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회사입니다. 브릭캠퍼스를 그렇게 만들고 싶습니다. 반드시."

 
장 대표의 꿈이 머지않은 미래에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 기대한다. 말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오면서 보여줬던 행동에서 느껴지는 마음 덕분이다. 어려울 때 주위를 떠나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많은 사람이 그 마음의 증거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장현기 대표와 잘 어울리는 말 한마디가 기억났다.
 
두 가지가 그 사람을 말해 준다. 아무것도 없을 때의 인내심과 모든 것을 다 가졌을 때의 태도.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몸이 전부다』 저자 jycy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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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이상원 중앙일보 사업개발팀장 필진

[이상원의 소소리더십] 인생의 하프타임을 지나며 성공보다 성장이 행복의 열쇠임을 알았다. 소탈한 사람들의 소박한 성공 스토리 속에서 그들의 성장을 이끈 소소한 리더십을 발견해서 알리는 보람을 즐긴다. “애송이(이탈리아어로 ‘밤비노’)들의 성장을 돕는다”라는 비전으로 ‘밤비노컴퍼니’를 운영 중이다. ‘몸을 바꾸려고 했는데 인생이 바뀐’ 성장스토리를 담은 『몸이 전부다』를 출간(2017년)했다. 학교, 군부대, 기업 등에서 ‘성장의 기회와 비결’에 대해 강연을 한다. 성장을 위해서는 양질의 연습을 통한 실력축적과 함께 생각, 말, 행동 등의 좋은 습관으로 키워지는 셀프이미지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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