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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지친 그대에게 전하는 꽃과 나무의 메시지

중앙일보 2018.06.30 11:00 종합 20면 지면보기
[더,오래] 한순의 인생후반 필독서(10)
나무생각 아뜰리에. 일주일에 이틀이나 사흘을 묵는 양평 나무생각 아틀리에 근무는 나에게 불가침 영역이다. [사진 한순]

나무생각 아뜰리에. 일주일에 이틀이나 사흘을 묵는 양평 나무생각 아틀리에 근무는 나에게 불가침 영역이다. [사진 한순]

 
일주일에 이틀이나 사흘을 묵는 양평 나무생각 아틀리에 근무는 나에게 불가침 영역이다. 화급을 다투는 일이 아니면 나는 이 일정을 절대 타협하지 않고 시골 아틀리에를 지킨다. 아마 나에게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고집스러운 일정에 서운함이나 불만을 가진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5~6년 이 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는 주변에서 “양평 가야지?”하고 인정한다.
 
이곳에서 뭘 하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뭐, 별로 하는 일은 없다. 죽으라고 잡초를 뽑거나 수건을 목에 두르고 면장갑을 끼고 나가 가지를 자르거나 돌멩이를 주워다 땅을 파고 심어 넣기도 한다. 4m가 되는 호스를 끌고 다니며 식물들에 물을 주고 거미줄과 먼지를 닦아내기도 한다. 누구도 시킨 적이 없는 일을 매일 하고 있다.
 
그러다 표지를 봐달라고 하면 스마트폰으로 디자인을 체크하기도 하고, 업무에 도움이 될 것을 전달하기도 한다. 도시에서와 같은 ‘근무 시간’ 대신 일과 삶이 뒤섞여 흐른다. 그러다 마을 사람들이 밥 먹으러 가자면 호미를 던지고 따라나서기도 한다.


조경전문가가 자분자분 들려주는 생명 이야기
『정원생활자』, 오경아 글ㆍ그림, 궁리, 2017.

『정원생활자』, 오경아 글ㆍ그림, 궁리, 2017.

 
최근에 친구 같은 책을 만났다. 『정원생활자』(오경아 글·그림, 궁리)다. 이 책 작가의 말에는 내가 왜 아틀리에 근무를 고집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더도 덜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정원을 좋아하는 분 중에는 유난히 빠듯하고 바쁜 시간을 보내온 분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잠재력이 깨어났기 때문일 거라고 믿습니다. 일상 속에서 온몸의 진이 다 빠져나갈 정도로 최선을 다했기에 그 에너지를 다시 축적할 장소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이기도 한 것이죠.”
 
이 책은 방송작가 출신인 오경아 작가가 영국 에식스 대학교에서 7년 동안 조경학을 공부하고 세계 최고 식물원인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의 인턴 정원사로 일하면서 배운 지식과 지혜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고 있다. 178꼭지의 글이 들어 있는데, 작가 자신이 그린 식물 그림도 실사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오경아 작가. 『정원생활자』는 방송작가 출신인 오경아 작가가 영국 에식스 대학교에서 7년 동안 조경학을 공부하고 세계 최고 식물원인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의 인턴 정원사로 일하면서 배운 지식과 지혜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고 있다. [중앙포토]

오경아 작가. 『정원생활자』는 방송작가 출신인 오경아 작가가 영국 에식스 대학교에서 7년 동안 조경학을 공부하고 세계 최고 식물원인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의 인턴 정원사로 일하면서 배운 지식과 지혜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시절 나는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손은 싱크대에서 빠른 속도로 설거지를 하며 발은 싱크대 밑으로 떨어지는 물을 걸레로 문지르고, 다용도실에서는 세탁기가 돌아가고, 아이들 학교 준비물은 없는지, 진행하는 책의 편집 방향을 고민하며, 뭔가 새로운 기획이 있어야 하는데…를 마음속으로 외치는 식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뺑뺑이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과부하가 걸려 의욕이 없었다. 이렇게 가라앉은 몸과 마음은 쉽게 튀어 오르지 못했고, 사람들과 식사를 할 때도 나는 밥알을 세고 있었다.
 
그때 막연히 숲속 시골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의 장애물은 셀 수 없이 많았으나 양평에 나무생각 아틀리에를 차렸다. 주변에서는 바보 같은 짓이다, 그곳에서 뭐 하는데 하고 남 속사정 모르는 이야기를 해댔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그곳에 가야 살 것 같으니까 숲으로 온 것뿐이다. 그사이 통신기술도 빠른 속도로 발전해 사무실 일을 보는 데도 어려움이 거의 없다.
 
이곳에서 꽃과 나무를 사다 심고 키우고 물 주다가 배우는 것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나무와 꽃들이 침묵하는 겨울, 고요한 흰 눈 속에 내가 홀로 나무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너른 정원 안 부러운 베란다 화분 하나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오경아의 정원학교. [중앙포토]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오경아의 정원학교. [중앙포토]

 
『정원생활자』는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꽃과 나무에 관한 이야기다. 옆에서 식물에 박식한 지혜로운 친구가 자분자분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양평 나무생각 아틀리에 식물에 둘러싸여, 비로소 나는 내가 그 많은 자연 생물체 중 하나임을 깨닫는다. 이 지구는 모든 생물체가 주인이고, 나는 그중 아주 작은 생물체라는 것이 나를 편하고 자유롭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못 보았던 내 친구들의 모습을 찾아보면 좋겠다. ‘정원? 나에겐 그림의 떡이라오!’라고 말씀하실 분들에게는 다음 구절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
 
“땅이 없는 도시에서도 정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작은 화분 하나만 있어도 식물들은 예쁘게 그 멋을 잘 내주니까요. 삭막한 아파트라고 해도 베란다 한편에서 키우는 화분 하나가 남의 집 너른 정원보다 더 많은 기쁨을 줍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화분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정원’이라고 말하죠.”
 
이 책 한 권과 화분 하나만 있어도 그 누구 못지않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당신을 치유해 줄 제 숲속 친구들과 인사하시겠어요?
 
한순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ree3339@hanmail.net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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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 한순 시인,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필진

[한순의 인생후반 필독서] 노후에 들어선 사람은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게 필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예전에 밑줄 치며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어보는 것이다.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 인생 후반부에 제2의 사춘기를 겪게 될지 모른다. 흔들리는 대로 나를 맡겨보자. 또 퇴직하게 되면 만나는 사람의 범위가 좁아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외로움과 고독이 밀려온다. 이럴 때 책 읽기는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이 돼 줄 수 있다. 출판사 대표가 인생 후반부의 필독서는 어떤 게 있고 책 읽기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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