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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등장한 ‘북한슈퍼마켓’…낯설지만 재밌다

중앙일보 2018.06.30 10:06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팝업스토어 '평양슈퍼마케트'. 브랜딩 전문가인 최원석씨가 통일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아이디어로 준비한 전시 겸 팝업매장이다.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팝업스토어 '평양슈퍼마케트'. 브랜딩 전문가인 최원석씨가 통일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아이디어로 준비한 전시 겸 팝업매장이다.

뚝섬역 부근의 서울숲길 43. 통유리 창으로 보이는 19㎡(6평) 남짓한 작은 공간 안은 온통 핑크색이다. 유리창에 붙은 작은 글씨에는 ‘북한슈퍼마케트’이라고 쓰여 있다. 젖캔디, 불알캔디, 우유과자, 손가락 과자, 룡성 맥주 등등. 진열대 위에 놓인 상품들에도 우리가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이름들이 보인다. 설마 진짜 북한물건을 파는 건가?

'평양 슈퍼마케트' 진열대에 놓인 상품들. 우리가 극장에서 팝콘을 먹는 것처럼 북한 사람들은 강냉이를 먹지 않을까, 가정하고 만들어본 제품이다.

'평양 슈퍼마케트' 진열대에 놓인 상품들. 우리가 극장에서 팝콘을 먹는 것처럼 북한 사람들은 강냉이를 먹지 않을까, 가정하고 만들어본 제품이다.

이곳은 브랜딩 전문회사 필라멘트의 최원석(41) 대표가 운영하는 팝업매장이다. 2년 전 디자인 분야의 통일부 민간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최씨가 당시 얻었던 아이디어로 전시를 겸해 보름간만 한정기한으로 문을 열었다.      “사실 진짜 북한 제품은 지인들을 통해 구한 전시용품만 있고, 실제로 판매하는 건 탈북자들이 수제로 만든 과자와 캔디들입니다.”  
지인들을 통해 구한 실제 북한 상품들. 포장지 뒷면에 있는 QR코드 사진을 찍으면 제품이 생산된 북한의 지역과 공장 이름을 알 수 있다.

지인들을 통해 구한 실제 북한 상품들. 포장지 뒷면에 있는 QR코드 사진을 찍으면 제품이 생산된 북한의 지역과 공장 이름을 알 수 있다.

북한 말 중에 재밌는 걸 몇 개 골라 상표처럼 최씨와 직원들이 리디자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딱친구’라는 말은 단짝, 색동다리는 ‘무지개’, 불알은 '전구'라는 의미예요.”  
북한에서 사용하는 재밌는 단어들을 활용해 상표처럼 리디자인한 제품들. 실제 캔디와 과자는 탈북민들이 수제로 만든 제품들이다.

북한에서 사용하는 재밌는 단어들을 활용해 상표처럼 리디자인한 제품들. 실제 캔디와 과자는 탈북민들이 수제로 만든 제품들이다.

최씨는 2년 전에도 광화문 광장에서 ‘평양커피’라는 이름의 팝업매장을 열었었다. 통일부 민간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실제로 북한의 이모저모를 공부하다보니 새롭게 알게 된 게 많았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 사람들은 인민복을 입고 로봇처럼 움직이는 모습뿐인데, 그곳에도 라이프 스타일이 존재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평양사람들도 엄청나게 커피를 좋아해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스타일 드립 커피를 즐기죠.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우리 일상의 아이콘인 커피를 똑같이 그들도 좋아하고 즐기고 있다는 거죠. 상위 1%만 산다는 평양은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 ‘평해튼’이라고 불릴 만큼 소비수준이 높다고 합니다.”  
최씨는 북한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그들의 삶은 어떤지만 알아도 막연하게 두려워하거나 미워할 이유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막연하게 통일을 바라는 건 정략결혼을 원하는 것과 같아요. 적어도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지는 알아야 호기심도 갖고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평양커피와 북한슈퍼마켓은 정치 이념은 배제하고 북한의 문화(라이프 스타일)를 알아보자는 일종의 캠페인이죠.”  
최씨는 두 번의 팝업매장을 진행하면서 우리의 인식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가 북한 관련 기획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너 그러다 잡혀간다’고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북한슈퍼마켓

“‘평양커피’는 좀 위험한 이름 아냐, 라고 물어보는 지인도 있었는데, 요즘 가장 핫한 게 평양냉면 아닙니까.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용어일 뿐 사용불가한 말은 아니죠. 게다가 통일부의 승인 하에 열었던 거니까 ‘잡혀간다’는 걱정은 옛날식 사고방식이죠.”    
실제로 북한수퍼마켓 매장 안의 상표와 제품, 장식 포스터 모두 인터넷에서 찾은 소스라고 한다. 이미 국내에서도 ‘프로파간다(정치·사상을 광고하는 선전)’ 포스터 전시가 여러 차례 열린 바 있다. 최씨는 북한에서 사용되는 프로파간다 포스터의 그림·서체 등의 요소들만 뽑아서 요즘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병맛(B급 유머)’ 문구로 바꿔놓았다. ‘지랄의 온도-유리모두 책을 읽어 상대방을 차근차근히 즈려밟아보자’ ‘술-우리의 적 마셔서 없애자’ ‘오늘도 삽질중-업무의 신’ 이런 식이다.  
영국 파이돈 출판사에서 출판한 북한 디자인 책 '메이드 인 조선'.

영국 파이돈 출판사에서 출판한 북한 디자인 책 '메이드 인 조선'.

매장 안에는 외국에서 출판된 흥미로운 책들도 전시돼 있다. 영국 파이돈에서 지난해 출판한 『메이드 인 조선』은 북한의 상품과 디자인 등만을 보아 놓은 것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현재는 품귀현상이 일어날 만큼 인기 있는 책이다. 일본인 사진작가가 출판한 『브라더 코리아』는 한국과 북한을 오가며 최대한 비슷한 상황에서 유사한 환경과 피사체를 찍은 것으로 마치 북한 풍경이 우리의 지방소도시 또는 10년 전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상표 색깔을 핑크 색으로 한 것도 이들 책을 보고 결정한 거예요. 북한, 하면 붉은 색만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인공기나 선전용 문구에만 쓰이고 실상에선 파스텔 톤 컬러를 더 많이 쓴다고 합니다. 『메이드 인 조선』 커버도 핑크잖아요.”
최씨는 “같은 민족도 아니면서 우린 일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한다”며 “라이프 스타일을 너무 많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과 우린 같은 말을 쓰는 사이임에도 서로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으니 일본 만큼만 알아도 일단 심리적 부담은 줄어들지 않겠냐는 게 최씨의 생각이다.  
“친해질지 말지는 그 다음 결정할 문제죠. 일단은 알아야죠. 소개팅 나가기 전에도 SNS로 사전 조사를 하잖아요. 현실을 왜곡돼지 않은 상태로 알아보고 그 후에 판단해 봤으면 합니다.”  전시는 오늘 저녁 7시에 문을 닫는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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