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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고산자가 산다 <상>

중앙선데이 2018.06.30 02:00 590호 34면 지면보기
김하나의 만다꼬
가족들 사이에서 나의 오빠는 ‘고산자’로 불린다. 고산자는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의 호다. “고산자는 주말 계획이 꽉 차 있을 테니…” 또는 “이 녀석 또 고산자 병이 시작됐군” 등으로 쓰인다. 왜 오빠가 그런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 설명하자면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릴 적부터 오빠는 지도를 좋아했다. 지도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는 게 소문이 나 아빠의 지인으로부터 세계 지도를 선물로 받은 적도 있는데, 착착 접힌 걸 다 펴면 꽤 큰 양면 지도였다. 그걸 방바닥에 펴 놓고 나랑 지명 맞추기 놀이도 하고 오빠 혼자 들여다 보기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그 지도는 가장자리가 나달나달해져서 펴고 접을 때면 조심해야 했다.  
 
예상 가능하듯 오빠의 교과서 중에도 비슷하게 나달나달해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회과부도였다. 오빠는 사회과부도를 사랑했다. 지도뿐 아니라 통계 자료도 많이 들어 있어 오빠의 성향에 딱 맞았다. 오빠는 자신의 관심분야를 차트로 정리해두는 취미가 있었다. 매주 빌보드 차트와 배철수의 음악캠프 차트에 자신의 가중치를 더해 본인만의 순위를 매긴 뒤 반듯한 글씨로 정리해둔 두꺼운 노트는 아직도 부모님 댁에 여러 권 쌓여 있다. 오빠와는 각 나라 수도 맞추기 놀이도 곧잘 했는데 ‘세네갈은 다카르’ ‘레바논은 베이루트’ 같은 걸, 나는 그 나라가 어디 붙었는지도 모른 채 오빠 따라 줄줄 읊곤 했다.  
 
나이가 들어 부산에 사는 오빠와 서울에 있는 나는 각자 사느라 바빠 가끔 안부를 묻고 식사를 하는 정도의 관계가 되었다. 오랫동안 오빠의 고산자 성향도 특별히 드러날 계기가 딱히 없었다. 그러다 오빠가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의 아빠가 되자, 그동안 숨어 있던 오빠 안의 고산자 선생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밖으로 나오셨다. 아내와 아이 둘을 태우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기 시작한 것이다.  
 
주말이면 새벽같이 출발해서 어딜 찍었다가, 어딜 가서 어떤 걸 체험하고, 어느 식당에서 뭘 먹고, 어디서 기념 촬영을 하고, 어느 시장 어느 가게에서 간식을 사 먹을지 오빠가 미리 빼곡하게 정리해둔 일정표에 따라 움직였다. 그야말로 전국구여서 서울 경기권에도 여러 번 다녀갔다는데, 너무 바빠 나를 만날 겨를도 없었다고 한다. 한 번은 서울에 온 오빠네 가족과 만났다가 하루에 고궁 여러 곳과 명동 남산 이태원 강남 등을 훑었다는 얘기에 기함한 적이 있다. 새언니와 아직 어린 아이 둘은 그렇게 빽빽한 일정으로 다니는 데 익숙해져서, 지치지도 않고 재미있게 잘 다녔다.  
 
더 놀라웠던 건, 그런 촘촘한 일정의 전국여행 와중에도 오빠는 이른 새벽 등에 따로 짬을 내어 근처의 산에 올라갔다 온다는 것이었다. 등산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거길 찍고 와야 하는 ‘사회과부도 덕후’ 기질 때문이었다! 오빠는 실로 대동여지도를 쓰고 있었다. 전국 곳곳뿐 아니라 부산 안에서도 권역을 나눠서 “이번엔 ‘동래’ 투어다”라는 식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다닌다고 한다. 하긴 가족끼리 이곳저곳 열심히 다니면 재미있기도 유익하기도 할 터였다.  
 
고산자는 부모님께 연락해 몇 달 뒤에 있을 문중 행사 일정을 체크하곤 했는데, 문중 행사가 중요해서라기보다 가족여행 일정에 차질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빠의 고산자스러움은 전해 듣기만 할 때는 재미있었다. 그런데 내게도 대동여지도 투어의 놀라움을 체험할 기회가 왔다. 지난해 엄마의 칠순맞이 제주도 여행에 오빠네 가족과 함께하게 된 것이다. 그 얘기는 다음 지면에서 이어가겠다. ●
 
랜드라이터.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자.『 힘 빼기의 기술』을 쓴 뒤 수필가로도 불린다. 고양이 넷, 사람 하나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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