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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가볍게

중앙선데이 2018.06.30 02:00 590호 27면 지면보기
WITH 樂: 보사노바
보사노바 음반 ‘Stan Getz With Guest Artist Laurindo Almeida’. 색소폰 연주자 스탄 게츠와 기타리스트 로린도 알메이다가 연주했다.

보사노바 음반 ‘Stan Getz With Guest Artist Laurindo Almeida’. 색소폰 연주자 스탄 게츠와 기타리스트 로린도 알메이다가 연주했다.

초여름 아침 바람에 파란 냄새가 묻어난다. 아기 손바닥만큼이지만 바다가 보이는 동네에 살아서 그런 듯하다. 창문을 열고 바다를 건너오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창밖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횡단보도를 바쁘게 건너가는 걸 바라본다. “아! 맞다. 나 오늘 휴가지!”  
 
혼자 손뼉을 치며 좋아서 떼굴떼굴 굴렀다. 남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니 하루 얻은 휴가가 더 실감이 났다. 카페 주인이라도 된 양 여유 있게 커피 내릴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음악이 빠졌다. 즐거운 기분의 완성은 음악 아니겠는가? 회사에서 월요일 첫 회의를 하고 있을 사람들은 듣지 못할 음악. 오늘 같은 여름날 아침에 가장 어울릴 만한 음악.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보사노바’가 정답이니까.  
 
보사노바는 브라질에서 1950년대 말 등장했다. 그전에 브라질에는 타악기를 중심으로 강렬하고 에너지 넘치는 ‘삼바’라는 리듬이 있었다. ‘삼바’가 빈민층 흑인들이 만든 것이라면 ‘보사노바’는 도시 중산층과 대학생들이 선호했다. 그 중심에 주앙질베르토나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같은 대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우아한 선율과 세련된 감성, 시적인 가사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남미의 장르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기에는 부족했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서부 백인 재즈연주자들이 보사노바에 관심을 갖고 협업하기 시작한다. 비로소 보사노바의 세계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흐름의 선두주자가 테너 색소폰 연주자 스탄 게츠다. 그가 63년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아스투르질베르토와 함께 연주한 ‘Getz/Gilberto’ 음반은 장르 역사상 최고의 걸작이다. 같은 해 녹음한 ‘Stan Getz With Guest Artist Laurindo Almeida’는 대중적인 관심은 덜하지만 숨은 보석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탄 게츠에 대해 “가장 재즈적인 삶을 살다간 아티스트”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40년 가까이 다양한 연주 스타일을 보여 왔으나, 아이스크림 같은 색소폰 톤과 보사노바를 결합했던 시기를 사람들은 가장 사랑한다.  
 
그와 연주한 로린도 알메이다는 브라질 출신으로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든 기타리스트였다. 그래미 클래식 부분에서 수상했을 정도의 실력파였고, 기존 재즈계에 ‘삼바’ 리듬을 도입해 보사노바의 세계적인 성공을 예견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앨범 ‘Stan Getz With~’는 ‘Menina Moca’로 시작한다. ‘젊은 아가씨’라는 뜻이다. 살랑거리는 기타 반주 위로 스탄 게츠의 솔로가 시작된다. 푸른 바다와 금빛 모래, 해변을 산책하는 아가씨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스탄 게츠의 색소폰이 젊고 잘생긴 청년처럼 씩씩하다면 중반부에 등장하는 로린도 알메이다의 기타는 세련되고 도도한 아가씨처럼 섹시하다. 후반부 게츠의 색소폰은 두 연인이 함께 산책하는 듯 정겹다.  
 
이어지는 ‘Once Again’과 ‘Winter Moon’이란 곡에서는 게츠의 전매 특허인 부드러운 톤이 돋보인다. 이음매 없는 실크처럼 색소폰의 멜로디가 매끄럽게 이어진다. 악기로 노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살짝살짝 애간장을 녹인다.  
 
음반 마지막의 ‘Samba da Sahra’와 ‘Maracatu-Too’는 모두 로린도 알메이다의 곡이다. 앞의 곡은 자못 비장미가 느껴지고 뒤의 곡은 보사노바보다 삼바의 느낌이 강하다. 게츠의 색소폰도 강렬하고 중반부 이후 알메이다의 기타도 현란하다. 멜로디보다 리듬이 강조된 곡들이다.  
 
어느덧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다. 누가 뭐래도 여름은 가벼워야 한다. 옷도 음악도 생각도 말이다. 스탄 게츠의 이 앨범과 더불어 조금씩 뭔가 덜어내는 날들이 되면 좋겠다. ●
 
글 엄상준 TV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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