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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에서 ‘비엔나 와인’과 함께 로맨틱 피크닉

중앙선데이 2018.06.30 02:00 590호 22면 지면보기
빈 아웃도어 즐기기
빈 시민의 휴양지 올드 다뉴브의 강물은 바닥이 비칠 정도로 푸르다.

빈 시민의 휴양지 올드 다뉴브의 강물은 바닥이 비칠 정도로 푸르다.

오스트리아 빈이 ‘예술의 도시’라고 하지만, 박물관과 공연장만 있는 건 아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머서(Mercer)의 전세계 230개 주요도시 삶의 질 비교 조사에서 9년 연속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된 빈은 토지의 절반이 녹지다. 오스트리아 9개 주 가운데 가장 작은 415㎢의 땅에 180만이 사는 대도시지만, 거리엔 자동차가 많지 않다. 전체 이동수단 중 39%가 대중교통으로, 유럽 최고 수준의 대중교통 이용률을 자랑한다. 요컨대 빈은 편리한 대중교통으로 잠시만 이동하면 드넓게 펼쳐진 유원지와 농장에서 쾌적하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레저의 도시’라는 얘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공원이 빈에 있다. 올해 252주년을 맞은 ‘프라터(Prater)’다. 도심에서 전철로 20분만 가면 다뉴브강을 따라 합스브루크 왕가의 광활한 사냥터 부지에 뉴욕 센트럴 파크의 2배 크기로 지어진 테마파크가 나온다. 이곳에 빈의 상징과도 같은 명물이 있는데, ‘비포 선라이즈’의 유명한 키스신을 비롯해 ‘제 3의 사나이’ ‘우먼 인 골드’ 등 빈을 배경삼은 영화에 꼭 등장하는 대관람차 ‘자이언트 페리스 휠(Giant Ferris Wheel)’이다. 1897년 프란츠 요제프 황제 즉위 5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전통의 랜드마크로, 정식명칭은 ‘리젠라트(Risenrad)’다.  
올드 다뉴브 유원지에는 11개 보트 대 여 업체가 각양각색의 보트를 구비하고 있다.

올드 다뉴브 유원지에는 11개 보트 대 여 업체가 각양각색의 보트를 구비하고 있다.

 
그런데 낭만적인 영화 장면과는 달리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길 분위기는 아니다. 흔히 보는 3~4인용 관람차가 아니라 15명은 너끈히 들어가는 대형 곤돌라에 피자 등 먹거리를 잔뜩 갖고 타는 사람도 꽤 많다. 특실에선 공중 결혼식이나 파티도 열린다. 지름 2400인치의 커다란 바퀴는 초당 75cm의 느긋한 속도로 돌아가는데, 정상에 도달해 잠시 멈춰 서면 빈 시내 전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전자동 보트에서 피크닉을 즐기 는 사람들

전자동 보트에서 피크닉을 즐기 는 사람들

프라터에는 마담 투소와 축구장, 롤러코스터와 유령 열차, 비행 시뮬레이터 등 250여 가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하지만, 워낙 광활한 부지에 맛집으로 손꼽히는 카페·레스토랑까지 도처에 자리해 여느 테마파크처럼 복닥대지 않고 여유롭게 어드벤처를 즐길 수 있다.  
 
프라터의 백미는 공원을 관통하는 산책로 ‘하우프트알레(Hauptallee)’다. 장장 6㎞의 산책로를 따라 5월에는 핑크색 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에는 숲의 터널이 되는 밤나무와 포플러나무 등이 장관을 이룬다. 모처럼 나들이를 가도 늘 교통지옥, 사람지옥에 시달려온 몸에는 이곳의 한가로움이 퍽 낯설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첫 키스 장소  
호이리거에서 햇와인을 즐기는 사람들 ⓒWienTourismus/Peter Rigaud

호이리거에서 햇와인을 즐기는 사람들 ⓒWienTourismus/Peter Rigaud

오스트리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지만 빈에서는 원없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중심가인 슈테판 광장에서 전철로 15분, 7정거장만 이동해 알테 도나우(Alte Donau=Old Danube)역에 내리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바로 여긴데, 볼가강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비만 오면 범람하던 다뉴브강의 물길을 틀어 ‘뉴 다뉴브’를 만들고 원래 다뉴브강이었던 이곳은 ‘올드 다뉴브’ 유원지가 됐다.  
 
매년 1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이 ‘도심 속 레저 천국’에는 요트&서핑 스쿨 3개와 보트 대여업체가 11곳, 야외풀장도 4개나 있어 다양한 수상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강바닥이 훤히 비치는 ‘푸른 도나우’에서 온가족이 강아지와 함께 수영을 즐기고, 연인들은 보트를 타고 로맨틱한 시간을 보낸다. 널찍한 선체에 와인과 과일이 담긴 소풍 바구니가 함께 서비스되는 ‘피크닉 보트’는 3시간 동안 빌릴 수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250m 높이의 다뉴브 타워도 랜드마크 중 하나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35초만에 170m 상공의 회전 레스토랑에 올라 360도로 시원하게 뚫린 전망대에 다가서니 살짝 아찔하다. 탁트인 풍광 속에는 가까이 UN본부 건물 등 현대적인 도시 경관과 다뉴브 강변의 목가적인 분위기, 저멀리 보이는 시내의 고전적인 건축물이 몽땅 담겨있다. 벨베데레 궁전, 성 슈테판 성당, 프라터 대관람차 등 멀리서도 튀어 보이는 빈 상징 명소들을 찾아보는 깨알같은 재미도 있다.
드넓은 포도밭으로 이어지는 선술집 호이 리거

드넓은 포도밭으로 이어지는 선술집 호이 리거

 
포도밭 선술집에서 맛보는 햇와인의 운치
빈 여행객들은 흔히 ‘비엔나 커피’나 ‘비엔나 소시지’를 찾지만, ‘비엔나 와인’도 꼭 맛봐야 한다. 대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와이너리가 있는데, ‘와인 생산지를 가진 세계 유일의 수도’가 빈이란다. 빈을 포함해 오스트리아의 와인 생산량이 전세계 1%에 불과한데다 그중 6%만 해외에 수출한다니, 그만큼 진귀한 와인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빈이란 얘기다.  
 
빈의 와인 제조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기원전 1세기 이 지역을 정복한 로마인이 다뉴브강 근처에 포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니 2000년이 넘었다. 17세기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빈에서 물러간 이후 지금의 농가들이 대대로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대문에 솔가지가 걸려 있으면 햇 와인을 팔고 있다는 표시다.

대문에 솔가지가 걸려 있으면 햇 와인을 팔고 있다는 표시다.

와이너리도 멀지 않다. 빈 중심가에서 승용차로 30분 가량 교외로 향하니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이 한 폭의 그림이다. 다뉴브강에 인접해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카렌베르크, 누스버그 지역 200만평의 밭에 150개 포도농장이 있는데, 레드 와인을 생산하기엔 다소 쌀쌀한 기후라 80% 이상이 화이트 와인 품종이다.  
 
빈 특산 혼합 와인 ‘비너 게미스터 자츠’

빈 특산 혼합 와인 ‘비너 게미스터 자츠’

빈티지 와인보다 프랑스의 ‘보졸레 누보’처럼 올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햇와인 ‘호이리게’(Heurige)를 즐기는 것도 독특한 문화다. ‘호이리게’를 파는 포도밭 선술집을 ‘호이리거(Heuriger)’라고 하는데, 와이너리에서 직접 운영한다. 대문에 소나무 가지를 걸어놓으면 직접 생산한 그 해의 호이리게를 팔고 있다는 표시란다.  
 
소나무 가지를 기다란 봉의 한쪽 끝에 매달아 왠지 운치있어 보이는 선술집 대문을 밀고 들어서니 너른 마당에 초저녁부터 손님이 가득하다. 2016년 리슬링과 ‘비너 게미스터 자츠(Wiener Gemischter Satz)’ 부문에서 챔피언에 오른 와이너리 ‘푸어가슬-후버(Fuhrgassl-Huber)’다. 격식을 차린 고급 요리를 파는 게 아니라 슈니첼·소시지·족발 등 소박한 오스트리아 가정식을 뷔페식으로 떠다 먹는 캐주얼한 시스템이다.  
 
와인 테이스팅도 할 수 있다. 4종류는 10유로, 7종류는 12유로다. 리슬링·무스카토·피노 블랑 등 낯익은 품종도 있지만, 빈에서 맛봐야할 화이트 와인 간판스타는 고유 품종인 ‘그뤼너 벨트리너(Gruner Veltliner)’와 빈의 시그니처 와인인 ‘비너 게미스터 자츠’다.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푸어가슬-후버의 젊은 주인장 토마스도 “수많은 문화가 섞여 빈 문화를 만들어냈듯 다양한 품종이 섞여 하모니를 이루는 게미스터 자츠를 맛보는 게 의미가 있다”며 추천했다. 빈의 와인 제조업자들은 오스트리아 타 지역과의 차별화를 위해 리슬링(Riesling)·로트기플러(Rotgipfler)·바이스버건더(Weissburgunder)·트레미너(Traminer) 등 질 좋은 포도 재배에 집중하고 있는데, 같은 포도밭에서 혼합 재배한 여러 품종을 섞어 만든 게미스터 자츠는 풍부한 과일향이 특징이다.  
빈의 상징물인 대관람차 ‘리젠라트’ ⓒWienTourismus/Christian Stemper

빈의 상징물인 대관람차 ‘리젠라트’ ⓒWienTourismus/Christian Stemper

 
빈 와인 조합은 자부심을 걸고 게미스터 자츠의 품질 관리를 하고 있다. 100% 빈 포도밭에서 생산된 3~5종류의 포도로 만들어야 하고, 특정 품종이 혼합 와인의 50%를 초과하거나 10% 미만이어도 안된다. 생물 다양성을 위한 슬로우푸드 재단의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됐고, 2013년부터 원산지를 보증하는 봉인 실이 부착되는 등 귀하신 몸이지만 10~20유로 안팎의 착한 가격이라 더욱 정이 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마파크 ‘프라 터’는 뉴욕 센트럴파크 2배 규모의 광활 함을 자랑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마파크 ‘프라 터’는 뉴욕 센트럴파크 2배 규모의 광활 함을 자랑한다.

포도밭을 한아름 끌어안고 있는 선술집 마당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오후의 무더위와 쌓인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준다. 기름진 슈니첼, 소시지의 비주얼이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산뜻한 뒷맛의 게미스터 자츠가 오스트리아 가정식의 참맛을 더해 주었다. 해가 늦게 지는 탓에 하나둘 천천히 떠오르는 별을 헤아리며 깊어가는 빈의 여름밤, 테이블은 빈 곳이 없고 사람들은 떠날 줄 몰랐다. ●
 
빈(오스트리아) 글·사진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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