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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화원들이 그려 몰래 판 작품이 민화"

중앙선데이 2018.06.30 02:00 590호 8면 지면보기
갤러리현대·현대화랑·두가헌의 조선 민화전을 미리 보다
 
갤러리현대에서 화조도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 민화(民畵) 전시가 시작된다. ‘민화, 현대를 만나다: 조선시대 꽃그림’(7월 4일~8월 19일, 성인: 8000원, 월요일 휴관)전이다. 신관인 갤러리현대 건물뿐 아니라 구관인 현대화랑, 부속인 두가헌 갤러리까지 전관에 걸쳐 열리는 대규모 전시다. 한국 현대미술의 간판 화랑인 이곳에서 고미술 전시가 열리는 이유가 뭘까. 갤러리현대 도형태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듣는 ‘한국 추상회화의 원류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민화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은 “1970년 인사동에 ‘현대화랑’을 개관할 때부터 사람들에게 복을 가져다준다는 길상도(吉祥圖)로서 민화의 아름다움을 접해왔다”며 “이름없는 천재 화가들의 화려하면서 창의적인 그림을 집중 소개하기 위해 3년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갤러리현대는 2016년 예술의전당과 공동주최로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전-문자도·책거리’ 전시를 성황리에 개최, 연장 전시에 이어 미국 순회전까지 마친 바 있다. 올해도 예술의전당과 함께 ‘조선 민화 걸작: 내일을 그리다’(7월 18일~8월 26일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을 마련했다.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및 광주은행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대표적인 민화 컬렉션인 김세종 소장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민화 전시 풍년을 앞두고 중앙SUNDAY S매거진이 전시장을 미리 둘러보았다.
 
추상적으로 패턴화된 꽃 그림, 놀랍도록 현대적  
'화훼도'(19세기·부분), 종이에 채색, 54 x 65cm, 개인 소장 사진 갤러리현대

'화훼도'(19세기·부분), 종이에 채색, 54 x 65cm, 개인 소장 사진 갤러리현대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볼 수 있는 것은, 추상적으로 패턴화된 꽃그림들이다. 갤러리현대 신관에 전시되어 있는 ‘화훼도’를 보면, 꽃들의 변형이 심해 정확히 무슨 꽃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지만, 그 색채와 형태가 마치 세련된 현대 그래픽 디자인을 보는 것 같다. 꽃과 줄기와 나뭇잎이 하나의 단위로 반복되고, 가지나 넝쿨을 얼개로 꽃잎이 일정하게 표현된다. 전시를 공동기획한 민화 전문가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지금까지 민화에서 한 번도 언급이 안 된 컨셉트”라며 “민화에 이같은 패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모란도'(19세기), 8첩 병풍, 종이에 채색, 85 x 47cm, 개인 소장

'모란도'(19세기), 8첩 병풍, 종이에 채색, 85 x 47cm, 개인 소장

전시장에는 50점이 넘는 높은 수준의 화조도와 모란도가 걸려 있어 우리나라 민화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다. 화조도는 19세기 후반부터 성행했던 민화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 받았던 장르였다. 복을 가져다주는 그림이라 여겨져 집집마다 걸려있었다.  
 
1980년 당시 체신부는 민화 9종을 선정해 5회에 걸쳐 우표를 제작했는데, 이 가운데 2종이 실려있는 개인 소장 ‘화조도’ 병풍을 볼 수 있다. 또 1986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우표전시회 ‘아메리펙스(AMERIPEX)86’에 출품하기 위해 만든 우표에 실렸던 ‘화접도’도 공개된다.  
 
두가헌 갤러리에서는 알록달록 아름다운 꽃그림으로 수놓은 배겟모 700여 점이 한쪽 벽면에 가득 쌓여 관람객에게 포토존 역할을 할 전망이다.  
 
기괴하면서 유머 넘치게 추상화된 동물들이 꽃과 함께 등장하는 작품들은 조선 시대 그림임에도 고리타분하기는커녕 파울 클레나 호안 미로 같은 현대 미술가들 못지 않게 창의적이다. 정 교수는 “궁중화나 문인화의 꽃그림과는 달리 민화의 꽃그림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기반으로 창출한 순수예술의 창의성, 즉 현대성에 있다”고 설명했다.  
 
갤러리현대는 올 가을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아트페어 ‘프리즈 마스터즈(Frieze Masters)’에 책거리와 꽃그림을 아우르는 조선 민화를 들고 나갈 계획이다. 도 대표는 “25평 가량 되는 전시 공간에 한국의 대표 추상화가인 김환기·정상화·이우환·이성자의 그림을 민화와 함께 전시, 한국 추상화의 뿌리가 민화와 공예에서 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화훼도'(19세기·부분), 종이에 채색, 각 54 x 65cm, 개인 소장

'화훼도'(19세기·부분), 종이에 채색, 각 54 x 65cm, 개인 소장

 
야나기 무네요시, 조선 민화에 빠지다
민화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은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60A6>·1889~1961)다. 그 전에 민화는 속화(俗畵)라고 불렸다. 야나기는 일제강점기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고려 청자에 비해 홀대받던 조선 백자와 민중 공예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여기 심취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민예운동을 벌이며 1936년 일본 민예관을 건립했다. 그는 한국의 미를 ‘선의 미’ ‘백색의 미’로 보고 이를 ‘비애의 미’로 규정했기에 오늘날까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그가 일찍이 조선 민예와 민화의 예술성을 알아보고 연구한 선구자임에는 틀림없다.  
'낙도(樂圖)'(19세기 말~20세기 초), 8첩 병풍 중 제 4폭, 종이에 채색, 91 x 38cm, 개인 소장

'낙도(樂圖)'(19세기 말~20세기 초), 8첩 병풍 중 제 4폭, 종이에 채색, 91 x 38cm, 개인 소장

일본 민예관이 소장한 '연화모란도'(19세기), 종 이에 채색 100.8 X 57.3 cm. 야나기 무네요시가 소장했던 작품이다

일본 민예관이 소장한 '연화모란도'(19세기), 종 이에 채색 100.8 X 57.3 cm. 야나기 무네요시가 소장했던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는 야나기 무네요시가 소장했던 민화 2점을 볼 수 있다. ‘연화모란도’는 당시 유명한 표구장이였던 오오하시 호사이에게 표구를 맡기고, 민예운동을 함께 했던 영국의 유명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Reach)에게 족자봉을 만들게 했을 정도로 보관에 정성을 기울였다(리치는 대영박물관의 유명한 조선 백자 달항아리의 원 소장자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한 점인 ‘화병도’는 야나기의 아들이자 디자이너인 야나기 소리(柳宗理)가 표장했다. 정 교수는 “그만큼 애정을 갖고 귀히 여기던 작품들”이라며 “이 과정에서 예술품과 이를 그린 이름 모를 화가에 대한 존중과 경의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모란도'(19세기), 8첩 병풍, 종이에 채색, 85 x 47cm, 개인 소장

'모란도'(19세기), 8첩 병풍, 종이에 채색, 85 x 47cm, 개인 소장

 
이번 전시에는 국내에서 온양민속박물관, 가회민화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 OCI미술관 소장품도 있지만, 대부분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던 개인 소장품이다. 운보 김기창 화백이 아끼던 작품도 나왔다. 정 교수는 “예전에는 공공기관에서 민화는 취급도 하지 않았다”며 “지금까지 전통 민화의 보전은 개인 소장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런 숨은 명품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 교수는 민화가 “김치처럼 맛깔스럽고 된장처럼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한국의 그림”이며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림이기 때문에 가장 질긴 생명력을 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선 말과 일제 강점기, 즉 나라가 힘들고 심지어 망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긍정의 에너지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주장이다.  
 
‘민화’라는 명칭은 과연 맞을까    
그런데 전시 작품을 보면 테크닉이 천차만별이다. 어린이가 그린 것 같은 ‘아르 브뤼(아마추어의 다듬지 않은 거친 형태의 미술을 가리키는 말)’적 매력이 넘치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궁중 화원의 솜씨가 아닌가 싶은 정교한 테크닉의 화조도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일반적인 ‘민화’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에 대해 전시를 공동기획한 고연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민화’라는 용어 때문에 민화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민화가 대중화 되는 데에 걸림돌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민화는 배우지 못한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라는 수많은 오해가 ‘포크 아트(folk art)’라고 번역된 민화라는 단어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화조도'(17~18세기), 8점 중 제 4번, 종이에 채색, 각 92 x 41cm, 개인 소장

'화조도'(17~18세기), 8점 중 제 4번, 종이에 채색, 각 92 x 41cm, 개인 소장

야나기 무네요시가 ‘민화’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또한 그가 상류층 출신이기에 자신과 비슷한 계층의 조선 집들을 둘러보며 거기 걸려있는 민화를 보고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본 민중의 그림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고 감동했다는 설명이다. 즉, 민화는 그 당시 고급문화였다는 것이다.  
 
기록을 찾아보면 19세기 후반 민화의 주요 고객은 양반과 신흥 부유층이었다. 그들에게 큰 인기를 누린 민화는 아무나 그린 그림이 아니라 궁중 화원들이 돈을 벌기 위해 남는 시간에 몰래 그린, ‘작품’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작처럼 예술성 높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 후 서민들도 그런 작품들의 본을 뜨고 베껴 그리면서 오늘날의 ‘민화’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우리가 민화라고 통칭하는 그림은 왕실과 대갓집을 장식한 전문 화가들의 채색화까지 포함한다”며 “이런 작품들은 절대 민간의 그림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의 고 퀄리티”라고 강조한다. 또 “20세기 초 서양 화단을 풍미한 모더니즘의 영향이 민화에도 미쳤기에 현대적 이미지가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조도'(19세기 말~20세기 초), 8첩 병풍 중 부분, 종이에 채색, 각 62 X 32 cm, 개인 소장

'화조도'(19세기 말~20세기 초), 8첩 병풍 중 부분, 종이에 채색, 각 62 X 32 cm, 개인 소장

 
고 교수는 “그동안 민화는 ‘전문 화가가 아닌 이들이 민간에서 그린 그림’이라는 편견에 싸여 있었고, 따라서 그에 대한 연구가 배제돼 왔다”며 “한국 근현대 회화의 뿌리를 찾을 때 문인화와 서양화의 맥락 사이를 관통하는 민화의 엄청난 잠재력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민화에 대한 심도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세미나도 진행된다. 갤러리현대 지하 1층 강의실에서 7월 5일 오후 2시에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와 고연희 성균관대 아시아문화학과 교수가, 7월 19일 오후 2시에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가 각각 강연한다. 신청료는 1만원이며 선착순으로 80명만 받는다. 관련 문의 02-2287-3527 ●
 
글 임승혜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sharon@joongang.co.kr  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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