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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친박 없애는 것보다 보수의 가치부터 정립해야 한다
김진국이 만난 사람

친박 없애는 것보다 보수의 가치부터 정립해야 한다

중앙선데이 2018.06.30 01:11 590호 12면 지면보기
김진국 기자 사진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26일 본사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지방선거에서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참패한 이유는 ’지금도 친박·비박이 다투는 양상인데 ... 문제의 원인은 역사를 놓쳐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26일 본사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지방선거에서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참패한 이유는 ’지금도 친박·비박이 다투는 양상인데 ... 문제의 원인은 역사를 놓쳐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보수가 죽어간다. 6·13 지방선거는 보수의 사망을 선고했다. 보수를 다시 세우기 위한 조언들이 넘친다. 보수를 조롱했던 진보 인사들까지 처방을 내놓는다. 보수가 사라지는 건 진보에도 좋은 일이 아니다. 견제와 균형이 없으면 일탈하기 쉽다. 한국 정치의 건강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수의 몰락
한쪽 날개가 완전히 꺾여버리면
나머지 한쪽도 혁신 안 하게 돼

한국당 문제
당신이 뭘 바꾸겠는가? 냉소 강해
아직 멀어, 더 고생하고 더 무너져야

외부서 수혈
버리기 힘들고 자르기 힘들 때는
새로운 깃발을 세워서 녹여내야

문재인 정부
말로는 자율·지방분권 얘기하며
실제론 권력으로 사회 바꾸려 해

 
자유한국당이 한국의 보수를 대표하느냐도 논란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바뀌어야 산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밖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아직 멀었다”는 냉소가 더 많다. 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김병준(64) 전 교육부총리. 26일 본사에서 그를 만나 보수의 위기에 대해 들어봤다.
 
 
시장과 국가 조화 이루며 자율권 살려야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참패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홍준표 전 대표는 마지막 막말로 나쁜 사람을 발표하고, 지금도 친박(親朴·친 박근혜)·비박(非朴) 다투는 양상인데… 친박이 다 빠지면 답이 될까요. 문제의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역사를 놓쳐버린 겁니다. 민주당은 실현 가능성이 있든 없든 가치를 말하지 않습니까. 인권·환경·평화, 이런 가치를 말합니다. 그런데 소위 보수라고 하는 집단, 자유한국당은 무슨 가치를 내세우고 있습니까. 그나마 가지고 있던 안보라는 가치도 놓아버렸습니다. 안보는 평화를 위한 것인데, 평화도 현 정부가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철저한 논쟁이 있어야 하는 데, 없습니다.”
 
보수의 가치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보수·진보 모두 양립할 수 없는 가치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보수는 아직도 ‘박정희 성공신화’를 굉장히 중시합니다. 사회 모든 부분을 정부가 주도하고, 시장에 개입하고, 인권을 좀 억누르더라도 성장을 가져오는 국가주도주의 모델 아닙니까. 그런데 보수라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자유시장 경제를 보수라고 그러거든요. 도대체 국민 입장에서는 헷갈린단 말이에요. 진보는 대체로 국가계획주의 모델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시민사회를 중시하는 공동체 중심의 진보적 성향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 둘이 부딪히는데….”
 
‘사람 정리’보다 ‘이념의 정리’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죠?
“사람 정리도 반드시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당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명확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기치가 분명히 섰을 때 ‘나는 그 기치와 가치를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당을 떠나야죠. ‘어느 것이 우선이냐?’ 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친박이니까 떠나라’고 말하는 게 맞는가? 아니면 새로운 깃발과 가치에 따라 ‘당신은 우리 당에 맞지 않으니 떠나라’고 하는 게 맞느냐 하는 겁니다. 저는 후자라고 봅니다.”
 
지금 보수, 야당은 어떤 깃발을 들어야 합니까?
“보수와 진보를 떠나 시장과 국가의 조화로운 관계에서 자율권이 살아나면서도 상생의 문화나 구조를 놓치지 않는 그런 방향으로 정리해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시대의 흐름을 놓고 양당이 경쟁해서 국가가 단단한 기반 위에 올라서는 것이지, 지금처럼 한쪽 날개가 완전히 꺾여버리면 나머지 한쪽도 혁신을 안 하게 되거든요.”
 
 
한국당 내부 권한 내려놓을수록 신뢰 높아져
 
아직도 계파 갈등인데, 이걸 넘어설 방법이 있습니까?
“버릴 수 없고, 자를 수 없을 때는 세워야 합니다. 사람이 잘라서 쉽게 없어집니까. 사람의 생각이 잘 안 버려지거든요. 버리기 힘들고 자르기 힘들 때는 새로운 것을 세워서 덮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세우면 그 안에 모든 게 녹아듭니다.”
 
깃발을 새로 세우려면 외부에서 수혈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 그렇게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내부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상처를 입었습니다. ‘당신이 뭐라고 해도 나는 못 믿겠다. 당신이 뭘 바꾸겠는가?’ 냉소가 너무 강합니다. ‘저 사람 정도면 뭘 좀 바꿔놓지 않을까’ 하는 사람이 필요하겠죠. 안에 있는 분들이 스스로 가진 권한을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국민적 신뢰는 높아집니다.”
 
한국당 쪽에서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있었습니까?
“많은 사람이 이야기는 합니다. 전화도 하고, 만나자고도 하고…. 그런데 제가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공식적인 채널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저도 국가를 위해, 우리 사회의 균형을 위해 역할이 있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럴만한 조건과 상황이 되느냐도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선거 직후 많은 사람이 ‘자유한국당이 비대위원장을 제안하면 무조건 당신이 맡아서 바꿔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최근 한 이틀 동안은 10명이 전화하면 9명은 ‘그 근처에도 가지 마라’고 해요. ‘아직도 더 고생하고, 더 무너져야 한다. 아직 멀었다’는 겁니다. 민심이 이래서 무섭다고 하는 걸 느낍니다.”
 
여의도 정치 경험이 없어서 잘 헤쳐 나갈 수 있겠습니까?
“여의도 정치에서 제가 피해자죠. 끝없이 공격을 당하면서 많은 것을 봤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원망해 본 적도 없고요. 저는 맞아야 할 위치에 있기에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큰 흐름은 결국 ‘국민의 마음’을 가지고 만들어야 하는데, 그 흐름을 만들면 의원들이 따라올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199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 때 소장을 맡은 지방분권 전문가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급인 정책실장과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아 임기 내내 같이했다. 2006년 7월 교육부총리에 지명됐으나 당시 한나라당이 논문표절 의혹과 딸 편입을 문제 삼아 보름 만에 낙마했다. 그런데 2016년 11월 최순실 사태로 궁지에 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를 ‘중립내각’ 총리 후보로 지명해 정치적 상처만 입었다.
 
본인의 정체성이 뭡니까?
“저는 시장과 공동체의 자율을 중시합니다. 시장은 되도록 좀 자유로워야 하고, 또 고치는 것도 자율적으로 고칠 수 있는 그런 메커니즘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거기서 못하는 것들, 시장의 자율이 커지면 그만큼 불평등도 심화할 것 아닙니까? 이것은 국가가 보충적으로 바로 잡아 줘야 한다. 사회정책을 통해서 상생의 구조를 만들고, 복지를 통해 균형을 맞추고,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이것이 국가의 역할인 것이죠.”
 
한국당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제의했을 때, 처음에는 검토하다가 “너무 늦었다”면서 거절했는데.
“저한테 필요한 것은 언제나 ‘권력’도 아니고 ‘자리’도 아닙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은 ‘마이크’입니다. 그런데 임박해서야 저보고 나가라고 하니까, 마이크를 들 시간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건 아니라고 본 겁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대중영합주의’를 경고했죠?
“제 생각이 거의 맞았다고 봅니다. 말로는 자율, 연방제에 가까운 지방분권,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국가권력을 쥐고, 감독기구나 검찰 기구를 강화해서 우리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국가주의적 경향이 상당히 강합니다. 그 에너지를 대중의 지지에서 가져오려 하죠. 그 과정에서 대중영합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손을 안 댑니다. 산업구조 개혁 같은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부분은 안 나오잖아요? 노조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구조 개혁, 노조가 걸려 있어 손 안 대
 
실업률, 최저임금도 포퓰리즘과 관계있다고 보는 건가요?
“연관이 된다고 봅니다. ‘소득주도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걸 ‘모른다’고 한다면 거짓말입니다. 당연히 알죠. 그것을 왜 모릅니까? 고용이 줄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죠. ‘내수경기 살리면 경제가 산다’는 발상이 수출 주도형 경제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알면서도 손을 못 대는 것은 이해관계가 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적 지지를 이 정도 확보한 정부라면 건드려야죠. 지금처럼 좋은 때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 점을 걱정합니다.”
 
노무현 정부하고는 차이가 있는 겁니까?
“노무현 정부가 시장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크다고 봐야죠. 종합부동산세도 언론에서는 ‘참여정부 때 하던 것’이라고 하는데 참여정부는 돈의 흐름을 더 걱정했습니다. 유동성 자금이 부동산 쪽으로 가지 못하게 종부세라는 막을 치면서 산업 쪽으로 돈이 흐르게 하는 데에 더 신경을 썼단 말이에요. 같은 것 같지만 속은 굉장히 다릅니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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