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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세우면 소통에 지장, 회장 집무실 따로 없다

중앙선데이 2018.06.30 01:00 590호 17면 지면보기
[CEO 탐구] 윤재환 TJ미디어 회장 
TJ 미디어의 신형 노래방 기기 앞에서 윤재환 회장이 색소폰 연주를 연습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TJ 미디어의 신형 노래방 기기 앞에서 윤재환 회장이 색소폰 연주를 연습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윤재환 TJ미디어 회장(63)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산증인이라 부를 만하다. 국내 가요와 팝송 5만곡이 내장된 노래방 기기를 연 20만대씩 생산하는 데다 매달 150~200곡의 신곡 연주 음원을 전국 5만 곳의 노래방을 통해 방방곡곡으로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방 기기 연 20만대 생산 1위
VR 노래방 기기로 차세대 공략

기업인은 믿음을 주는 신뢰 중요
23억 하루만에 모아 위기 넘겨

TJ미디어는 1990년대 금영과 쌍벽을 이뤘던 노래방 기기제조업체 태진음향이 모태다. 1997년 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데 이어 국내 동전 노래방 기기의 90%를 차지하며 국내 1위 업체로 자리 잡았다. 2002년에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 반주기를 출시해 필리핀 반주기 시장 1위를 휩쓰는 동남아 시장을 석권하며 글로벌 종합 음악 플랫폼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27년째 이 회사의 CEO를 맡고 있는 윤 회장은 “음악과 정보기술(IT)이 접목된 가상현실(VR) 노래방으로 차세대 음악산업을 주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작곡가 박춘석 “잘해보라” 3곡 덤으로 줘
 
기업 회식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노래방 산업도 위기다.
“5년 전에 노래방 출입을 주저하는 젊은 층을 겨냥해 노래 1~2곡을 손쉽고 저렴하게 부를 수 있는 동전 노래방 기기를 개발해 내놓은 게 히트를 쳤다. 2015년 668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836억원으로 늘어났다. 올해부터는 버튼을 누르면 음악·영상·조명이 클럽에 간 것처럼 순식간에 바뀌는 ‘클럽 기능’을 내장한 신형 모델을 출시해 가라앉은 성인 노래방 시장을 공략 중이다.”
 
노래방 산업은 단순 기술에다, 사양산업 아닌가.
“노래방 기기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곡의 연주를 담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일종의 메모리인 음원 칩은 IT의 정수가 담긴 부품으로 최근 기술 추세와 다양하게 바뀌는 음악의 흐름을 동시에 맞춰야 하는 복합 산업제품이다. 음원의 원천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 야마하, 롤런드사와 함께 세계 3대 음원 칩 회사로 꼽히는 프랑스 반도체 부품회사 드림 S.A.S.를 2011년에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사업에 뛰어든 남다른 동기가 있어 보인다.
“원래 차량용 스피커 사업을 했었다. 1986년 ‘라디오 기술’이란 일본 잡지에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소개한 엔지니어의 기고를 읽은 뒤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그 원리를 이용한 기기 개발에 나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3년 만에 300곡용량의 국내 1호 반주기를 만들었다. 음원 확보를 위해 인기 가요 작곡가 박춘석 씨를 무작정 찾아갔다. ‘가슴 아프게’ 등 히트곡 15곡의 저작권료로 집을 담보로 빌린 300만원을 내놓고 통사정을 했다. 그랬더니 새로운 도전을 잘해보라며 3곡을 덤으로 더 주더라.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당시 계약서를 회사 금고에 보관해놓고 가끔씩 들여다 본다.”
 
윤 회장의 기록과 보관 습관은 독특하다. 95년부터 치기 시작한 골프 역시 스코어를 매번 메모로 정리해 스마트폰에 보관해놓을 정도다. 슬쩍 봤더니 지난해엔 총 43회 라운딩, 평균 타수 88.6, 평균 퍼팅 수 38.6이었다. 그는 “기록을 해두면 나중에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떠올릴 수 있다. 사업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영 일화는.
“90년대에만 해도 기기가 없어서 못 팔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날 갑자기 특별소비세 부과 대상에 노래방 기기가 포함되는 바람에 세금을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었다. 사업을 때려치울 생각까지 했다. 그때 한 지인이 내게 해준 말이 나를 돌려세웠다. ‘세종 대왕 지폐(1만원권) 위에 주인이 누구라고 찍혀 있더냐. 손해를 봤더라도 잠시 다른 데 맡겨놨다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서 되찾으면 된다.’ 그때부터 내가 밑지더라도 정직하게 일하자는 생각을 늘 명심하고 있다.”
 
 
세계 3대 음원 칩 생산 프랑스 회사 인수
 
수많은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신뢰라는 말 한마디다. 기업인은 항상 예측 가능하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 사업 초기에 자금 압박을 받아 위기에 몰렸었다.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도매상들이 나를 믿는다며 너도나도 나서서 돈을 빌려줘 하루 만에 23억의 현금을 모아주더라. 그때부터 신뢰를 자산이라 생각했다.”
 
TJ 미디어에는 윤 회장의 집무실이 따로 없다. ‘장벽을 세우면 소통에 지장이 생긴다’는 그의 지론에 따라 회장 이하 전 임원이 일반 직원과 한 공간에서 칸막이만 쳐놓고 근무한다.
 
앞으로의 경영계획을 소개해달라.
“미래에도 사람들은 노래를 부를 것이다. 노래방이라는 공간보다는 기능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뀔 것이다. 이에 맞춰 인기 가수와 함께 노래 부르는 경험을 주는 VR 노래방 기기와 휴대폰 반주기 시제품을 개발했다. 앞으로 그 안에 콘텐트를 어떻게 채워날 것인가가 과제다.”
 
노래방에서의 18번 곡이 궁금하다.
“언젠가 어설프게 무대 마이크를 한번 잡았다가 망신만 당했다. 그 후 보컬 트레이닝 개인 레슨까지 받아가며 두 달 동안 배운 전람회의 ‘취중진담’을 가장 잘 부른다. 대신 색소폰 연주가 취미다. 직원과 대리점 업주들과 함께 13인조 색소폰 연주단 ‘TJ앙상블’을 조직해 공연도 한다.”
 
사회 진출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천천히 가더라도 법을 지켜라. 법이 자주 바뀌더라도 빨리 가려고 이를 어기면 꿈이 깨질 수 있다. 조금 늦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글씨로 본 이 사람] 긴 가로선은 인내력 상징
윤재환 회장의 글씨

윤재환 회장의 글씨

윤재환 회장의 글씨(사진)는 그의 성격이 솔직하고 직설적임을 보여준다. 필적 분석 전문가인 구본진 변호사는 “비틀림 없이 글씨를 시작하는 것은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가로 선이 긴 것은 인내력을 뜻하며, 모음의 세로 선이 짧고, 전반적으로 모나지 않은 글체는 현실 감각이 있고 원만하고 사교적인 성격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로 선이 아래로 가면서 왼쪽을 향하고, 가로 선은 오른쪽으로 가면서 위쪽을 향하는 것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향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필압이 강한 편이 아니고, ‘ㅇ’자의 크기가 작아서 강단이 있거나 기가 센 인물은 아니라는 게 구 변호사의 분석이다.
 
홍병기 선임기자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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