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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식당 갈 때 재킷만 걸쳐도 대접 달라져 … 그게 스타일 힘

중앙선데이 2018.06.30 01:00 590호 24면 지면보기
[두 남자의 스타일 토크] 맞춤정장
이탈리아 남성은 색상의 조합, 옷의 길이 등을 어려서부터 교육받는다. ‘거지도 모델’이라는 농담이 생겨난 이유다. [사진 체사레아톨리니]

이탈리아 남성은 색상의 조합, 옷의 길이 등을 어려서부터 교육받는다. ‘거지도 모델’이라는 농담이 생겨난 이유다. [사진 체사레아톨리니]

원래 옷은 개개인의 체형에 맞게 맞춰 입는 물건이었다. 산업혁명과 함께 공장에서 의류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보편적인 크기가 정해지고, ‘몸을 옷에 맞추는 시대’가 왔다. 누구나 손쉽게 옷을 골라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옷을 찾기는 어려워진 시대.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옷을 찾아 세계를 헤매는 두 남자가 맞춤정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돈으로 슈트·재킷 살 순 있지만
때깔 소화하는 스타일까진 못 사
경험 통해 맞춤정장 안목 키워야

반맞춤복도 가격과 품질 괜찮아
자기 사이즈 정확히 아는 게 관건
양복점·편집숍 도움 받으면 좋아

 
신동헌(이하 신)=사실 ‘맞춤정장’이라는 게 크게 낯설지는 않다. 동네마다 맞춤정장집이 있는데, 가격도 백화점 기성복보다 더 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남훈(이하 남)=맞춤복은 그 속을 살펴보면 여러 종류로 나뉜다. 우선 개인의 패턴을 새로 떠서 그를 위한 유일한 옷을 제작하는 방법을 영어로 ‘비스포크(bespoke)’라고 부른다. 손바느질을 하거나 좋은 원단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당연히 가격도 비싸다. 영국 새빌로(Savile Row)와 이탈리아 나폴리의 맞춤복이 이런 스타일이다. 두 번째로 완전히 새 패턴을 제작하는 건 아니지만, 각 브랜드나 양복점의 고유한 패턴을 사용하면서 각 개인의 몸 사이즈에 맞게 조금 변형시키는 맞춤복도 있다. 영어로는 ‘메이드 투 메저(made-to-measure)’라고 하고, 이탈리아 말로는 ‘수미주라(Su Misura)’라고 한다. 이런 반맞춤복도 브랜드나 양복점의 명성에 맞는 가격과 품질이 담보된다. 최근 동네마다 들어선 맞춤정장집은 이런 시스템을 아주 염가에 도입한 것이다. 비싸지 않은 소재와 정해진 패턴을 대량으로 마련한 후 총장이나 소매들을 조정해서 개인에게 판매한다. 물론 수많은 맞춤정장집들이 몇 군데의 생산공장을 공유하기 때문에 완전한 맞춤복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도 있지만.
 
 
양복 장인, 손님 마음 읽는 정신과 의사 같아
 
맞춤정장 제작 과정. 맞춤이라고 해도 옷의 패턴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사진 체사레아톨리니]

맞춤정장 제작 과정. 맞춤이라고 해도 옷의 패턴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사진 체사레아톨리니]

=솔직히 동네 양장점에서 맞춘 슈트 치고 멋진 옷을 못봤다. ‘아저씨 양복’이라고 할 수 있는 건데, 그걸 ‘양복’이라고 알고 있으니 젊은 친구들도 관심을 갖는 대신 반감을 갖는 것 같다. 사회에 나오면 꼭 필요한 옷인데.
 
=슈트나 재킷은 사회적인 경험과 신체적인 나이와 함께 서서히 숙성되는 복장이다. 현금이나 크레디트카드만 있으면 옷을 살 수 있지만, 그 옷을 소화하는 스타일까지 같이 살 수는 없다. 그건 적절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습득해야 한다. 따라서 이제 막 스타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젊은이들이 최고급의 맞춤복부터 사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 비싸지 않은 맞춤복, 혹은 적절한 가격의 기성복을 통해 양복의 기초를 몸에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아저씨 양복’으로 불리는, 트렌드도 체형도 고려하지 않은 옷을 파는 양복점은 어떻게 생각하나.
 
=높은 임대료나 경기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작고 소박한 양복점을 운영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다만 동네 양복점에서도 가능한 수준에서 남성복의 기본적인 원칙들, 이를테면 블랙 슈트가 매일 입는 것이 아니라 파티나 장례식용이라는 걸 고려한다든지, 키가 작아서 콤플렉스가 있는 분들에게 상의와 하의의 비율 같은 걸 조언해줄 수 있는 전문성은 갖춰야 한다고 본다.
 
= 그렇다면 옷을 잘 아는 사람이 적절히 주문하면 동네 양복점에서도 저렴하게 괜찮은 양복을 맞출 수 있나?
 
체형에 맞게 테일러링을 하는 과정. [사진 체사레아톨리니]

체형에 맞게 테일러링을 하는 과정. [사진 체사레아톨리니]

=옷은 가격만으로 그 가치를 모두 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너무 비싸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양복도 누군가에겐 안 어울릴 수 있고, 저렴한 기성복이 어떤 분에겐 완벽한 스타일을 선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맞춤복에 관해서라면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 중에는 원단, 메이킹 외에 옷과 사람의 궁합 같은 것이 있다. 인간의 몸은 신비하게도 인류학적으로 비슷한 점과 개인으로서 다른 점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매일 입을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양복이라면 여러 패턴 중에서 자기 몸에 잘 맞는 걸 찾는 게 키포인트다. 따라서 동네 양복점에서도 가격 이상의 품질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본다.
 
=비스포크로 유명한 롤스로이스의 주문 과정을 보면, 구매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고려할 수 있도록 대화를 많이 나누더라. 구매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하는 것도 테일러의 일인가?
 
=‘각 개인의 체형에 적합한 복장을 만든다’는 맞춤복의 사전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양복점에서 만든 옷은 한 사람을 위한 것일지라도 모두 스타일이 다르게 마련이다. 다만 그 간격을 메우는 것은 옷을 만드는 사람과 입는 사람 간의 솔직한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옷을 입으려는 남자의 마음 속에 있는 솔직한 의도가 중요하다. 날씬하게 보이고 싶은지, 젊어 보이고 싶은지, 휘어진 다리를 감추고 싶은지, 혹은 숙명적인 아랫배를 가리고 싶은지 등등. 훌륭한 테일러들은 그런 마음을 부담없이 불편함없이 잘 이끌어내고 치유법을 설명하는 정신과 의사와도 같다.
 
=‘이탈리아에 가면 거지도 모델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건 꼭 외모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자신을 꾸미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겠지?
 
체형에 맞는 정장을 입기 위해선 제대로 디자인할 줄 아는 곳을 찾는 게 중요하다. [사진 체사레아톨리니]

체형에 맞는 정장을 입기 위해선 제대로 디자인할 줄 아는 곳을 찾는 게 중요하다. [사진 체사레아톨리니]

=요즘 유럽으로 여행 많이 가시니까 느껴 보셨겠지만 ‘이탈리아는 유럽의 중국’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뭔가 좀 불안정하고 어수선한 면이 있다. 과거의 유산으로 오늘까지 먹고 산다는 비판도 강하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문화와 스타일에 민감하고, 그것을 가업으로 만들고 대대로 이어가는 데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처음 본 사람이라도 옷을 잘 입는 누군가에게 찬사를 보내고, 자신이 사지 못하더라도 좋은 브랜드에 대해서 감탄을 하며, 편하게 입을 때와 제대로 갖춰 입는 장소를 구분해서 옷을 선택한다.
 
=아는 이탈리아 친구가 “양말에 주름이 생기면 엄마에게 등짝 맞았다”고 하는 걸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양말은 주름 하나 없이 종아리에 착 달라붙어있어야 하는 거라고.
 
 
스타일도 성품, 이탈리아 일찍부터 가정교육
 
3피스 정장은 조끼와 재킷, 바지의 균형이 신체와 잘 맞아떨어져야 태가 난다. 사진을 보면서 황금비율을 스스로 구분할 줄 아는 눈을 키우는 것도 좋다. [사진 남훈]

3피스 정장은 조끼와 재킷, 바지의 균형이 신체와 잘 맞아떨어져야 태가 난다. 사진을 보면서 황금비율을 스스로 구분할 줄 아는 눈을 키우는 것도 좋다. [사진 남훈]

=이탈리아 친구들은 복장과 스타일, 매너에 대한 많은 걸 집에서 교육을 받는다. 그게 정말 부러운 점인데,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이 훈육의 거의 전부였던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나는 문화가 교육과 경험으로 더 성숙하게 된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집안 교육에서부터 다르면 이건 출발점이 차이나는 게임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각 도시에 포진한 전통적인 양복점과 유수한 브랜드들이 모두 시민들을 문화적으로 교육하는 학원 같은 기능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색깔 안 어울리게 옷을 입으면 ‘감각 없다’고 놀림을 받기 때문에 언제나 신경 써서 옷을 입는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그런 걸 ‘쓸데없는 짓’이라거나 ‘사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옷에 관심을 두면 “커서 뭐가 되려고”란 소리를 듣고, 장년 세대들은 철이 없거나 바람이 났다고 오해받는 시대가 길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시대는 진화하고 우리 사회의 문화도 깊어지고 있다. 무조건 외국 브랜드를 숭상하는 흐름도 약해지고, 가성비 좋은 물건을 보는 안목도 높아졌으며, 젊은이들이 열정적으로 만드는 브랜드도 생기고.
 
=이탈리아 남자처럼 멋진 남자가 될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이 있을까?
 
=옷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우리가 좋은 스타일을 갖추려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성품과 문화를 가꾸는 활동의 일부다. 그러므로 자신의 스타일이 성품의 일부라고 믿는 것이 우선이겠다. 그 다음엔 자신의 예산에 맞는 적절한 양복점, 편집숍, 매장을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찾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론 자신의 사이즈를 정확하게 아는 것. 사이즈에 맞는 옷만 입어도 즉시 개선 효과가 나타난다.
 
=개인적으로는 좀 분위기 있는 식당에 갈 때는 재킷을 하나 챙겨가는 걸 신경써서 하고 있다. 반팔 티셔츠 입고 들어갈 때보다 재킷 하나 걸치면 응대가 훨씬 달라지는 걸 느낀다. 문제는 일행들이 안 지키는 경우가 많다는 건데, 호텔 레스토랑에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가는 걸 창피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 그분들의 자유를 비판할 순 없다고 본다. 다만 좋은 식당에 갈 때 재킷을 자발적으로 걸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그분들도 그런 흐름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직접 옷을 만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풍속을 단속하는 경찰이 되어선 안 된다. 오래 걸리더라도 문화와 복장, 그것이 사회와 개인에게 기여하는 바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또 그렇게 해보고 싶은 분들을 도와드리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신동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左), 남훈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 대표(右)

신동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左), 남훈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 대표(右)

신동헌·남훈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남성복 편집숍 알란스 대표
신동헌 스포츠투데이·에스콰이어 기자를 거쳐 남성패션지 레옹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온갖 놀거리를 섭렵한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패션뿐 아니라 카메라·오디오·전자기타·자동차·모터사이클에 이르기까지 광폭의 취미를 자랑하는 순혈 마초다.
 
남훈 남자의 복장과 패션에 대한 연구를 삶의 목표로 삼은 클래식 슈트 매니어. 패션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여러 기업과 협업해서 브랜드와 편집숍을 함께 만들었다. 자신만의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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