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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보다 현실의 힘 믿는 트럼프, 김정은 손 기꺼이 잡다

중앙선데이 2018.06.30 01:00 590호 27면 지면보기
빠른 삶, 느린 생각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지난 4월 27일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동, 그리고 6월 12일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동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그러한 회동의 궁극적 목적이었던 북한의 비핵화 그리고 남북한, 북·미의 평화관계 수립은, 여러 논평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계속 진행될 실무적인 합의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판문점과 싱가포르의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커다란 의의를 갖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 의의가 쉽게 해독되지는 않는다.

남·북, 북·미 회담 스펙터클한 사건
과장된 면 있지만 불가피한 소명

오랫동안 기업가로 지낸 트럼프
냉전주의 이념의 틀 깨는 행보

남·북 체제 서로 다르면서도 협력
통일로 나아가는 길 열릴 수도

 
프랑스의 정치 이론가 기 드보르의 유명한 저서에 『스펙터클의 사회』(1967)라는 것이 있다. 그 주제의 하나는 ‘스펙터클’이 정치에서, 특히 자본주의의 정치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스펙터클은 여러 가지 것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일을 말하는데, 그것은, 존재를 소유로 바꾸고 그것을 다시 구경거리로 바꾸는 체제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것은 다분히 거짓을 만들어내고 허위의식을 조장하는 일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스펙터클도 나름대로의 진실 가져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거짓은 의도하는 것이기도 하고 체제에서 저절로 생산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 나름의 진실을 내포할 수 있다. 위에 말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일종의, 스펙터클에 속하는 정치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고 거기에 전적으로 진정성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인간 현실 자체가 많은 점에서 스펙터클로 구성되어 있고, 또 허상처럼 보이는 스펙터클은, 조금 전에 말한 대로, 그 나름대로의 진실을 갖는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시청각 매체의 시대에 있어서, 정치 연출은 현실적 공약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남북 그리고 북·미의 정치 지도자들의 회동은 화해와 평화의 가능성을 여러 지역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인데, 그것은, 위에 말한 바, 여러 차원의 의의를 갖는다.
 
연출은 공연자 자신의 마음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사적인 또는 공적인 협약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서로 만난다는 것은 왜 중요한가? 대면은 불가피하게 인간성의 개입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에 수반하여, 회동은 상대와 관계하여 호의나 악의 또는 선과 악 어느 쪽의 판단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다음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전략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략은 회동 이전부터 준비된 것일 수밖에 없다. 만남이 있기 전에 상대방이 소통 가능한 인간이라는 예비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인격적 판단을 허용할 상황에 대한 판단이다. 북과 남의 지도자의 경우, 여러 사정으로 보아 오늘의 시점에서 민족적 화해라는 지상 목표는, 쉽게 논의되지는 아니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소명(召命)의 정치 과제이다.
 
그러나 남북, 북·미를 포함하여 평화의 움직임에 기초가 되는 판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도 평화를 향한 의지가 작용하겠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보다 현실적인 고려이다. 우선하는 것은 힘의 관계에 대한 고려이다. 그러하여 무력 대결의 가능성과 평화 협약은 전략의 양면을 이룬다. 북의 핵무기 완성과 더불어 협상이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도 이것을 나타낸다.
 
정치 지도자는 권력 조직의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권력은 스스로 자기 팽창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오늘의 시대에 있어서 그 권력은 무한한 팽창을 지향하는 정복자의 권력일 수는 없다. 그리하여 그것은 다른 권력과 타협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국가 관계의  균형을 나타내는 말로 잘 알려진 것이 ‘힘의 균형’이다. 이것은 국가  간의 현실을 말하기도 하고, 군사력으로 대결하는 국가가 이룰 수 있는 평화의 현실 조건을 말하기도 한다. 평화와 관계하여 이것은 서구에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이념이지만, 그것이 참으로 평화의 기초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회의와 비판도 없지 않다. 정치 이념으로서의 ‘힘의 균형’을 트럼프 대통령이 믿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가와 국가, 집단과 집단 또는 개체와 개체 사이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것이 힘이라는 것은 그의 정치 신조의 중심을 이룬다는 인상을 준다.
 
 
무력대결 가능성과 평화협약은 전략의 양면
 
여기에서 힘은 물론 이해관계의 대결과 교환을 포함한다. 많은 인간관계는 주고받음으로 이루어지지만, 이것은 상업의 거래에서 특히 기본적인 인간관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힘의 협상을 중요시한다면, 그것은  기업가로서의 그의 오랜 체험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내세운 정치 구호 ‘미국 제일주의’는 국제 관계에서 원만한 관계보다는 국가적 이익을 앞세우겠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의 정책들의 호소력은 계층이나 인종의 차이에 기초한 원한을 북돋는 데서 왔다고 이야기된다. 분노는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중요한 사회적인 힘이다. 그는 사회를 나누고 있는 분열의 요소가 되는 분노를 강조하고 다시 그것을 경쟁적 국제 대결을 통하여 하나로 묶어 낸다.
 
‘힘의 균형’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에 서는 사상의 흐름은 대체로 인간 가치를 높이 내세우는 보편주의이다. 그것은 국가 질서 안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보편적 인간 이념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그것을 위한 계획은 여러 나라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국제 질서에서, 적어도 아메리카와 서구를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일 수도 있고 사회민주주의일 수도 있는- 이념이다. 자유, 인권, 행복의 추구, 사회 복지 그리고 경제발전 등을 사회적 이상으로 하는 나라들이 밀접한 연계관계를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다른 이념으로 연결된 세력에 대항하는 방편이기도 하였다.
 
6월 초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보인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분명하게 이들 서방 국가와의 연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단적으로 그것은 이들 국가와의 상호 무역 관계에서 관세 폭탄을 던지겠다는 결정으로 나타났다. 또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를 제거한 것에 대하여 그는 불만을 표현하였다. (러시아가 제거된 것은 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점한 일로 인한 것이었다.)  국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한 터키 대통령 등 독재적이거나 반(半)독재에 연결시켜서 보고자하는 견해도 있다.
 
다시 말하여 그에게 중요한 것은 군사적, 경제적 힘이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많은 요소를 하나가 되게 하고 다르게 하는 이념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힘의 정치관이 반드시 사실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G7회담이 끝나면서 발표된 공동성명은 규칙에 기초한 국제 질서, 무장해제, 인권, 양성평등 등을 언급하면서, ‘열린 경제, 열린 정부’를 지지한다. (공동성명에는 위에 언급한 것 외에 여러 조목의 입장 천명이 있지만, 북한의 제재강화와 비핵화에도 강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정상회의 주최국가인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발표가 있기 전에 싱가포르로 떠났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공동성명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겠다고 하고, 트위터에서 트뤼도 총리를 “부정직하고 연약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캐나다가 미국의 농민과 노동자와 기업에 엄청난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에 이것은 공동성명에 언급된 ‘열린 경제, 열린 국가’의 이념에 맞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리하여 성명서 자체가 현실을 떠나 있는 허위라고 본 것일 것이다. (‘평화를 위한 글쓰기’를 주제로 한 대산문화재단의 국제문학포럼(2005년)에서, ‘평화선언’을 공동으로 내기로 한 일이 있는데 독일의 가인(歌人) 볼프 비어만은 서명을 거부하였다. 동독에서 서독으로 망명한 경험이 있는 그는 모든 거창한 구호는 허위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른 휴머니즘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것은 현실이고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군사력 이외 이념은 거짓으로 보일 것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경제와 군사력에 관계되지 않은 이념은 거짓으로 보일 것이다. 그가 다른 서방지도자와는 다르게 러시아, 헝가리, 터키의 지배자에 대한 우호적인 관계도 그의 이러한 현실주의롤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가 기꺼이 김정은 위원장과 회동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같은 현실주의적 관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현실주의적 사고가 오늘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뿐만 아니라 냉전시대의 틀-한편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공산주의와 독재정치라는 냉전시대의 이념적 그분의 틀을 넘어 서게 한 것이다.
 
그렇다고 물론 현실주의적 거래가 정치 행위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치하에서 소수자들은 근래에 드물게 차별을 감수하여야 한다. 필자는 한국 교민들로부터도 그전과는 다른 차별과 혐오의 표현에 맞부딪치게 된다는 사정을 들은 바 있다. 어찌 되었든 한편으로 인간은 정치를 힘의 현실로 파악한다. 그러면서 보다 인간적인 이상의 실현은 정치를 추진하는 동력이 되어 마땅하다. 이 현실 인식과 이상의 확인은 쉼 없는 변증법 속에 움직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현실주의는 우리의 남북관계에서도 역사적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미 시사한 바와 같이, 그의 현실주의를 배경으로 하여, 한반도의 남과 북의 관계는 냉전시대의 극단적 대결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적 선택의 가능성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서로 다르면서도 협의하고 협동할 수 있는 정치 단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우여곡절이 없을 수는 없지만, 화해와 평화 그리고 통일로 나아가는 일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과 이념 또는 이상의 새로운 변증법의 시작에 정상회동의 스펙터클이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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